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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May 08. 2023

일상에 감사합니다.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었다면...

선현들의 글에서 보았고 이해하고 공감했던, “일상에 감사해야 함”을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최근에서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몇 년 전에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2년 정도 지속된 그 사건은 깨어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 사건의 결과로 나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불행의 크기는 매일. 매시. 매분. 매초 상상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만 갔다. 내 온 정신을 휘감아 쥐어짜는 그 고통에 머리를 흔들어 깨웠다가도 어느새 또 그 꼬리를 좇아가고 있었다.

 

길었던 통속에서 고통으로 다가온 것은 가족생활의 파탄에 대한 걱정이었다. 만약, 가족생활은 이 사건과 무관하게 유지되어질수 있다면, 내가 이만큼은 희생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해달라는 거래의 기도를 하였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제안하는 희생의 크기를 점점 키워야 했고, 그래야 그 고통과 바꿀수 있는 딜(Deal)이 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간의 진심을 담아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었지만, 그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위로와 격려는 공허했다. 심지어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또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정으로 위로가 되어준 것은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였다. 받는 위로는 주는 사람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표현의 기술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공감과 진심이 느껴진다면 부차적인 사항이다.

 

오랜 고통의 시간 끝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 기도에서 제안했던 희생의 크기와 이에 따라 각오했던 고통보다는 훨씬 더 좋게 그 사건은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나는 행복해졌다.

현재의 어느 순간이라도, 그 때의 그 고통의 시간과 비교하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망이 좋은 기업에 바로 취업하여 개인적인 성장에 좋은 부서에 배치받아 상사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다. 또한 필라테스. PT 등 개인의 건강도 열심히 챙기면서 의욕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아들은 초. 중. 고 생활의 5년을 해외에서 보냈지만 재외국민 대입특례조건에 맞지 않았고, 대입 컨설턴트들이 부정적인 검토결과를 내놓았지만, 그럼에도 좋은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합격하였다. 더군다나 최근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공식발표하여 가족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며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RJ와 나는 세속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들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행복하다.

 

과거의 나는 별일 없는 평온한 일상을 피곤하고 지루하다고 치부했고, 사소한 부정적인 일을 필요이상으로 부풀려 생각하며, 행복할 수 있었던 나의 일상을 스스로 평가절하하며 살았던 것 같다.

열심히 놀기만 하면서도 지루하다고 생각한 대학생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세상 불행을 다 끌어안은 것 같았던 나의 첫사랑…

일에 치이며 “인정받지 못할까” 고민하고 진급에 누락되어 방황하기도 했던 나의 30년 회사생활…

해외를 떠돌아다니며 정착하지 못하고 늘 낯선 환경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해외생활…

잘 때와 일어나서 잠깐 동안만 귀여워했던, 귀찮고 힘들었던 육아생활…

하지만

성적이 개판이었지만 쉽게 취직하였고,

그 첫사랑과 결혼하여 지금도 살고 있고,

우여곡절에도 30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며 가족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고 있고,

해외에서 좋은 추억과 회사생활의 장점으로 개발할 수 있었고,

아이들의 육아생활에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 훨씬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From Facebook]

나의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고, 나는 현재의 이    없는 일상 하나하나에 충분히 감사하며 얼마나 넘치게 행복한 일인지 항상 되뇌며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모든 것을 포용할 것 처럼 적어놓은 이 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족들과 또는 지인들과 말싸움을 하기도 하며 화를 낼 때도 있다.

이는 내 깨달음의 정도가 이기적이며, 온전하게 순수하고 절대적이지 않고, 또 나의 욕심과 남과의 비교에서 느끼는 세속적인 부분이 크게 반영된, 불완전한 작은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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