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도로를 달리는 차창에 올망졸망 맺힌 물방울들이 흘러내려 서로 합쳐졌다가 이내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는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대로 증발해 버리고 싶다.’
왜, 그런 날 있잖아요.
모든 걸 다 팽개치고 딱 하루만 어딘가로 휙 사라져서 바위처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
나는 밀레니엄 시대의 지구멸망설 따위는 쌈 싸 먹고 무럭무럭 자라 무려 2020년도를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Y세대 워킹맘입니다. 집, 차, 남편, 아이, 부모님, 시부모님, 직장 모든 걸 다 가졌고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린 시절 나는 왜 드래곤볼을 좀 더 열심히 보지 않았던가’ 하는 것입니다.
손오공이 하던 분신술을 유심히 보고 익혔더라면 오늘 ‘내 몸이 열개쯤 되면 소원이 없겠어’를 주문처럼 외는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비록, 분신술을 익히지는 못 했지만 그동안 나름대로의 기술이 생겨 몸뚱이 하나로 엄마도 되었다 아내도 되었다 또 회사원이 되었다 며느리가 되었다 딸로 돌아왔다 최대의 효과를 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그 최대의 효과라는 것이 각각의 역할에서의 최대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고 어떤 시각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눈 뜨면 이내 눈 감을 시간이 되는 숨 가쁜 하루가 차곡차곡 열심히 쌓이다 찰나의 여유라는 것이 생기면 ‘딱 하루만 어디로 사라져서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다 오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들이차는 겁니다.
이쯤 되면, 그냥 역할을 하나 정도 줄여보면 어떨까 하는 실험 정신이 빛을 발하여 8년을 다닌 회사에 장렬히 사표를 던집니다. 결과는요? 자폭에 가까운 처참한 패배로 돌아왔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부분의 시간에 오롯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이른바 ‘누구의 누구’로서의 삶이 펼쳐지면서 ‘우리 엄마, 아빠가 이러라고 나를 낳은 게 아닌데, 이럴 거였으면 내가 왜 그 고생을 하고 공부를 했나. 나는 엄마의 꿈을 내 손으로 짓밟았어.’와 같은 생각과 자괴감으로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상당한 내상을 입고 나서야 결국 다시 회사원의 역할을 복원시켰습니다. 그나마도 운이 좋아 원상복귀가 가능했지요. 요즘 같은 시국에.
어리석게도 애초에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제 팔을 도려내려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특히나 나는 일에서의 성취감과 자존감을 상당히 크게 얻는 사람이었죠. 말이 나와 말인데, 언제이고 사표를 던지고 떠나고 싶은 우리들의 그 회사는 사실 취준생 때의 우리가 얼마나 갈망하던 그곳인가요. 분명히 나를 위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 시부모님, 남편, 아이 모두가 실은 내가 있어 존재하는데 역할과 의무라는 함정에 빠져 자꾸 주객이 전도되고는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분명히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한데 더러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나는 일 년에 한 번 공식적인 외박을 합니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 회사원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88년생 000이 되어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며 전국 각지, 해외에 이르기까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자면 이 정도의 결단은 필요했기에 가족들에게 이해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이윽고 기혼, 미혼 따질 것 없이 그저 어렸을 때의 우리가 되어 서로를 마주합니다. 10여 년 전 본인 앞가림만 잘하면 되던 그때 걷던 그 길을 함께 걷고, 그때의 우리를 추억합니다. 20살의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 아스라이 머물렀다 걷힙니다.
‘우리 엄마가 너는 딸이 없어서 참 좋겠대.’
‘그거 우리 엄마가 하는 말인 줄 알았어. 푸하하’
‘그래, 우리 엄마 봐. 결혼 다 시키고 내 나이가 30 중반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나 키우느라 고생이잖아’
나이가 들수록 더 의지하게 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 시작해 갱년기로 툭하면 삐지는 아빠 이야기, 요즘 들어 부쩍 예쁜 짓만 골라하는 아이가 예뻐 죽겠지만 체력이 달린다는 이야기, 예전의 남편과 요즘의 남편에 대한 소감 내지는 연애 중인 친구의 남자 친구 이야기, 회사에서의 고충 그리고 피날레로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서 차마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요즘의 내 속마음과 아니꼬운 호르몬 현상 이런 소소하지만 중차대한 것들을 실컷 나눕니다.
그렇게 털어낼 것들은 털어내고 채울 것들은 채워가면서 온전한 ‘나’로 돌아오는 사이 '띠링' 남편이 보낸 메시지는 신나게 밥을 먹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먼저 눈을 맞추며 나를 안심시키고, 이어서 “어깨 아프던 건 좀 괜찮아? 리아는 계란밥 해 달라고 해서 치킨 너겟이랑 줬더니 너무 잘 먹고 리필까지 했어!! 우리는 아주 잘 놀고 있어. 내일 몇 시에 도착이지? 데리러 갈게.”라는 따뜻한 남편의 마음을 담뿍 전해줍니다.
훈훈한 그 순간, 이어서 하나의 메시지가 더 도착합니다.
“다음 주말은 내가 학교 때 동아리 OB 모임 좀 다녀와도 되지?”
하하하 시원하게 웃으며“응 재밌게 잘 다녀와!!”라고 답장을 보냅니다.
그렇게 잠시 잊었던 나, 제쳐뒀던 나 그리고 가족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꽁꽁 움켜쥐고 ‘온전한 나’를 되찾아 집으로 들어오면, 눈에 넣으면 아프기는 하겠지만 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우리 집 꼬맹이가 우다다 뛰어나와 “엄마다!!! 잘 갔다 왔어? 이모들 만나고 왔어?” 하며 폴짝 뛰어 와락 내 품에 안깁니다.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러라고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낳아서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지. 아 진짜 행복하다. 나 잘하고 있네.”
눈에 넣으면 아프기는 하겠지만 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들과 '남편, 아빠, 아들, 사위, 회사원'으로 살고있는 나의 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