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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May 11. 2023

"차도남의 계보"

다양한 변주로 살아남은 순수남 혹은 사이코패스


순수남 혹은 사이코패스


'차도남'이라고 간단하게 정의 내리긴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차가운 감성의 남자 주인공'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은 얼핏 로봇처럼 보일 정도다. 보통 반대 성향을 가진 여주인공이 남자 옆에 배치되는데, 거의 감성과 감정의 덩어리로 묘사된다. 남자가 철두철미 하다면 여자는 실수 투성이. 그런 식으로 여자의 인간미를 강조하려는 게 흔한 경우다.



이런 남자 캐릭터들은 알고 보면 상처받은 내면을 가지고 있거나 마음 깊은 곳에 여린 면을 숨기고 있는 순수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핵심은 여주인공이 이 남자에게서 따뜻한 인간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 남자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하는 데에 여자 주인공의 임무가 있다. 그리고 차도남을 소비하는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면도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화가 덜 된 미개인이나 미숙한 어린아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처럼 보인다.




다양한 변주


드라마 속 차도남은 흔하게는 재벌 2세, 혹은 실장님 캐릭터에서 시작해 각종 사극 속 조선시대 왕으로 변주되거나, 심하게는 외계인(〈별에서 온 그대〉), 북한군 장교(〈사랑의 불시착〉) 등으로 겉모습을 바꾼다.

최근에는 ‘나이스한 개새끼’로 널리 알려진 〈더 글로리〉의 하도영으로 그 변주의 폭을 넓혔다. (문동은 옆을 지키고 있는 '주여정'도 또 다른 변주의 예가 아닐까 의심된다)




아몬드와 러브 몬스터


소설에서의 변주를 생각해 보면 단연 손원평의 『아몬드』가 떠오른다. 주인공인 열여섯 살 소년 선윤재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이 캐릭터를 청소년 소설 버전의 차도남으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여기서도 남자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르러 공감 능력을 배우게 된다. (동성 친구에 의한 것이었지만 죽은 엄마와 할머니 등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아몬드』가 청소년 소설임에도 성인 독자들에게까지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차도남 코드에 있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서 차도남을 좋게 그리는 건 아니다. 최근에 읽었던 이두온의 『러브 몬스터』에 나오는 차도남은 여자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이코패스로 그려진다. 그는 여자에게 사랑을 받아도 전혀 변화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 추한 인간이 된다. 그에 답하기라도 하듯 작가는 캐릭터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차도남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소설이다.




『러브 몬스터』의 표지는 『아몬드』와는 다르게 강렬한 여자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무감각한 소년의 얼굴로 장식된 『아몬드』의 표지와 정면으로 대비되는 모양새다. 차도남 변주의 끝은 차도남 혐오가 아닐까. 그렇게 독자는 둘로 나뉜다. 차도남을 소비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으로. 어떤 소설 유형의 극과 극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어쨌거나 차도남을 향한 수요는 언제나 일정 부분 존재해 왔다. 왜 그런 요구가 계속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주를 통해 계속해서 등장할 거라 예측해 볼 수 있겠다. 앞으로 얼마나 다른 외피를 뒤집어쓴 차도남이 등장할지 흥미롭다.



블로그에도 놀러 오세요 :)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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