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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Nov 04. 2022

우렁각시

독거 중년이 꿈꾸는..

독거한 지 6년, 이혼한 지는 20년이 넘었다.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이혼 사실을 숨기고 처와 한 지붕 밑에 살았다. 주위의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게 가능하냐고 했는데, 가능하더라.      

아침, 저녁 아이들과 같이 한식구로 밥 먹고 밤 되면 따로 자고, 여름이면 같이 휴가 가고, 아이들 문제는 가족으로써 대처하고, 처와 단둘이 술도 먹지만, 각자 외박을 하건 말건 사생활 간섭 안 하고, 남도 아닌 부부도 아닌, 뭐 그런 관계로 대충 살아지더라. 아이들이 머리가 크면서 슬슬 눈치를 채고 이것저것 물어봤을 때 차근차근 이해시켰고 아이들이 이해한다고 했을 때 나 혼자 독립해 나왔다. 그런지 올해로 딱 6년이다. 어쨌든, 지난 시간으로 따져보니 대충 ‘혼자된’지가 26년 이상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무리 사생활 간섭 없이 산다한들 아이들이 엮여있는 데다, 어쨌든 공동생활이므로 눈에 보이는 불만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사랑 내지 애정으로 감싸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폭발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꿈꾸던 ‘분리 독립’을 했을 땐, 해방감에 도취됐다. 내일은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만 같은 희망을 품고 잠들었으며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런데 그 해방감이 몇 개월을 못 갔다. 언제부턴가 집에 가기가 싫어졌다. 어두컴컴한 방문을 열 때마다 엄습하는 고독을 실감할 쯤부터는 불을 켜 놓고 출근을 했다. 보지도 않는 TV도 켜놓고 집을 나서 봤지만 퇴근 시간이면 ‘너 집에 아무도 없어’라는 자각이 알람처럼 울렸다. 슬슬 퇴근을 주저하게 되더니 집 가는 길목에서 혼술 하는 날이 늘었다. 나, 아내, 아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허구한 날 지지고 볶는, 그런 복작거리는 소음에서 해방됐더니 이젠 정적이 싫었다. 혼자된 지 그렇게 오래됐지만, 진짜 혼자는 아니였던 것이다. 집에 여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이 탓인지 여자는 사귀고 싶지만, 구애하고 밀당하고 확인하고 안달하고.. 그런 과정은 또 귀찮았다. 

          

언제부턴가 우렁각시를 꿈꿨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몰래 밥상 차려주고 사라지는 그런 각시 말고, 퇴근 후 집 문을 열었을 때 사귄 지 한참 된 듯 날 반기고, 속이 꽉 막혀 있을 때 같이 얘기하며 풀 수있고, 같이 영화 보며 낄낄대고, 답답해서 드라이브할 때 옆에서 재잘대고, 욕심 좀 부리자면, 외로운 밤 같이 있어주면 더 좋고. 크흠. (쓰고 보니 애인이네?) 결국, 사귀기는 귀찮고 필요할 때 스르륵 나타나 곁에 있어 주길 원하는 거니 결국 우렁각시를 바란 거다.

         

20대 초반, 제대 후 부모님과 같이 살 때다. 복도식 아파트 4층에 살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좌회전한 후 오른쪽 돌아 세 번째 집이 우리 집이었다. 현관을 열고 오른쪽 첫 번째 방이 내방, 안쪽으로 들어가면 부모님이 계신 큰 방이 있었다. 확인은 못했지만, 내가 살던 동 전체가 똑같은 방 구조일 거라고 짐작한 계기가 생겼다. 어느 날, 새벽 한 두시쯤 달그락거리며 현관문 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처음엔 도둑이구나 싶었다. 현관을 열고 복도까지 들어오길 숨죽이고 기다렸다. 들어오기만 하면 곧바로 제압해버릴 생각이었다. 막 제대한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그런데 현관이 열리자 여자 구두 소리가 났다. 시집간 누난가? 매형과 싸우고 집 나왔나?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내 방문이 열렸다. 시커먼 형체는 누나보다 날씬했다. 그리고 휘청거렸다. 순간적으로 웬 술 취한 여자가 집을 잘못 찾아들어왔다는 판단이 섰다. 그녀가 불을 켜기 전에 얼른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여자는 내 예상과 달리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냥 멈칫하더니 죄송하다는 말만 남기고 휘청거리며 돌아나갔다. 그녀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고 나자 갑자기 뭔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어서 이 동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못 누르는 순간, 남의 집과 남의 방을 제집, 제방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똑같은 구조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남의 집 현관을 열었을까 하는 궁금함은 그 뒤에 들었다. 부모님도 잠결에 무슨 소릴 들으셨는지 다음 날 아침, 새벽에 어딜 갔다 왔느냐고 물으셨다. 난 담배 사러 갔다 왔다고 했다.   

        

며칠 후 비슷한 시각 또 내 방문이 그렇게 열렸고 내 반응과 그녀의 반응도 똑같았다. 다만, 그녀가 나가고 난 후 남은 내 아쉬움만 훨씬 컸다. 그래서 아파트 복도까지 그녀를 따라 나갔다. 그리고 무슨 재주로 우리 집 현관을 따는지 물었다. 그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주먹만 한 열쇠 뭉치를 찰랑찰랑 흔들어 보였다. 그녀는 여기 살다가 일 년 전에 6층으로 이사했다고 술에 취한 눈으로 말했다. 그리고 90도 각도로 꾸벅 인사를 하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왜 아직 이 집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뒤로 두어 번 더 그런 일이 있었고, 그때부터는 현관문 따려는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미리 현관을 열어 조심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그녀 역시 90도 각도로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그때마다 난 6층까지 바래다주고 싶은 충동이 막 일었었다. 매번 비슷한 새벽 시각 술에 취해 들어오는 걸 보니 술집 종업원이겠거니 했지만 어떤 노여움이나 귀찮음도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뭐, 좀 기다리기도 했다. 막 제대한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아마 이때부터 우렁각시에 대한 기대의 싹이 텄나 보다. 그 뒤 결혼하고 살면서 죽은 줄 알았던 그 싹이 중년이 돼서 다시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렁각시를 만났다. 이 우렁각시도 툭하면 내 집 문을 두드린다. 깎은 과일을 예쁘게 접시에 담아 건네고, 내가 목감기로 밤에 기침을 좀 한 다음 날엔 생강에 배 즙을 타 따뜻하게 데워다 준다. 나를 직접 못 만난 날엔 손으로 정성껏 쓴 편지도 담아 문고리에 걸어둔다. 내 부엌살림을 보여준 적도, 말한 적도 없는데도 야채를 다듬어다 주고, 듣도 보도 못한 양념을 만들어다 준다. 지난 명절엔 잡채에, 나물, 생선까지 구워 한 상 차려줬다. 참으로 눈물 나게 고맙고 감격할 일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바라던 우렁각시가 아니다. 난 이 우렁각시가 귀찮다.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두드리는 게 싫다. 화장실 불이 켜져 있으면 화장실 창문에 대고 날 부르는 그 센스 없음이 싫다. 샤워 중에도, 똥을 싸는 중에도 말을 걸어 놓고는 내 민망한 사정을 얘기해도 제 할 말을 끝까지 다 하고 가는 게 싫다. 내가 바랐던 우렁각시는 같이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영화를 토론하고, 드라이브를 할 우렁각시, 거기다 조금 욕심내서 외로운 밤...... 에휴~ 관두자. 

     

눈치챘겠지만, 옆집 우렁이는 칠순이 훨씬 넘은 할머니다. 이 분이 이사 오신 날, 내가 돌아가신 영감님과 성씨가 같다고, 아들과 비슷한 나이라고 반가워할 때부터 말 많은 이 할머니가 불안했다. 중년 남자가 혼자 사니 옛날 분으로써 걱정이 많으시겠고, 또 옛날 분이라 사생활이니 뭐니 하는 개념이 없으시리라 예측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날 화장실 불을 끄고 일을 보는 생활을 하게 됐다. 복도에서 만나면 붙들고 서서 별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한참 동안 하신다. 내가 아무리 바쁜 척을 해도 소용없다. 당신 할 말은 다 하고야 만다. 내가 집에 있는 날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영화도 크게 틀어 놓지 못한다. 볼륨을 높인 날엔 여지없이 현관을 두드리신다. 끼니부터 해서 전날 물어본 안부를 또 물어보고 얼른 집에 들어가 뭔가를 들고 나오신다. 그동안 나는 내 집 현관을 연 채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한다. 슬쩍 집으로 들어가 버리면 몇 배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뭔가가 나는 쓸 일 없다고 극구 사양해도 기어이 현관 안으로 홱 던져놓으신다. 샤워 중이라 하면 샤워 후 방에서 옷을 입을 때까지 현관 앞에서 기다리실 만큼 집요하시다. 이런 식으로 받은 야채며 먹을 음식들은 냉장고에서 썩기 일쑤라 이것들을 몰래 버리는 것도 스트레스다. 복도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비워주시는 덕에 아무렇게나 버릴 수도 없다. 한 번은 토막 낸 파를 봉지에 담아 버렸다가 음식 함부로 버리면 하늘이 욕한다고 한참 혼났다. 그 뒤로 만져도 형태를 알 수 없도록 잘게 썰어 버리고 있다. 해 먹기 귀찮아서 파도 안 써는 내가 남이 준 걸 버리려고 칼질을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다니. 


사실, 이 할머니를 두고 우렁각시란 말을 떠 올린 건 내가 아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푸념했더니 뒤로 자빠져 일어나지 못하다가 겨우 꺼낸 말이 이거였다. ‘너 우렁각시 생긴 거야.’ 그 말에 묘한 화가 치밀었다. 할머니가 ‘각시’라니, 뭔가 끔찍했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며 동화 속 우렁각시는 나이가 비슷한 연배 아니냐며 따졌더니 또 자빠졌다. 지난 명절엔 큰 누나의 안부 전화에 옆집 할머니 덕에 잘 챙겨 먹었다고 했더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내 걱정 때문에 옆집 할머니가 돼서 돌아오신 거라는, 이번엔 동화가 아닌 무슨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길 진지하게 해서 한참 우울했다. 진짜 그렇다면 살아 계실 때도 걱정만 끼친 놈이 돌아가신 후에도 걱정만 끼칠 뿐 아니라 기껏 챙겨줬더니 몰래 썰어 버리기나 하니, 나란 놈은 영원한 불효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들어 사는 집은 10월이 계약 만료였다. 집주인은 계약 연장을 원했고 나도 주차 문제만 해결되면 딱히 이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주차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안보였지만, 그거야 동네 몇 번 도는 수고만 들이면 될 일인데, 옆집 할머니가 은근 마음에 걸렸다. 할머니가 문고리에 걸어 둔 음식을 들고 들어 올 땐 한숨이 나오지만, 막상 그 안에 있는 편지를 읽을 때는 또 할머니의 따뜻한 정에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하지만 화장실 불을 켰다가 혹시 싶어 다시 끄고 들어갈 때마다 한숨이 나와 변기에 앉아 해결할 궁리를 해봤다. 내 머리로는 묘안이 없었다. 이러쿵저러쿵 불편함을 할머니께 얘기해봤자 서운해만 하실 게 뻔했다. 그래서  매번 생각했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이사를 할까? 

     

당연히 할머니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난주에 이사를 했다. 한 달 가까이 물색했던 집들 중 독립된 주차 공간과 화장실이 깊숙이 처박힌 집을 골랐다. 집을 고르고 나서 잠깐 기대해봤다. 이번 옆집엔 먹을 거 챙겨줘 놓고 똥 싸는데 말 거는 우렁이 말고, 젊은 우렁이가 살기를. 역시나 이사하던 날 내 헛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설상가상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생겼다. 경황이 없어 할머니께 인사도 못 드리고 온 데다 미리 사놓은 꽃무늬 식기세트도 못 드리고 와서 대충 짐만 옮긴 후 할머니 집을 찾았다. 접시 채 받은 후 씻어 드린답시고 깨 먹은 게 서너 개 됐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집에서 아리따운 처자가 문을 여는 게 아닌가? 몇 달 전에 할머니께 근처 한식집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해 드렸을 때, 할머니는 돌아가신 영감님과 자식들 얘기를 한참 했었다. 그땐 지루해서 흘려들었는데, 그때 하신 말씀 중 혼자 사는 딸 얘기가 퍼뜩 떠올랐다. 황급히 나를 끌고 들어가신 할머니는 딸을 인사시키며 이제 당신 연세도 있고 해서 곧 같이 살기로 했다고 했다. 아오~ 이사고 뭐고 다 물리고 싶었다. 그 딸과 맞인사를 하는데 한숨이 나왔다. 고마운 마음 따로, 귀찮은 마음 따로 인 나란 놈이 하는 짓이 그럼 그렇지 싶었다. 할머니는 나를 앉혀놓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아이고, 아이고' 하셨다. 이사 날인 줄 알면서 딸 마중 나갔다 와보니 그새 가버려서 영영 못 보나 하셨단다. 나도 눈물이 날 뻔했다. 이렇게 어머니 같이 고마운 할머니께.. 썩을 놈 같으니라구. 


요즘은 변기에 앉아 무슨 핑계로 할머니 집을 찾을까 궁리를 하고 있다.    


-할머니의 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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