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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10. 2024

의사와의 악연 4화

늦가을 서늘한 날씨에 S병원에 입원한 후 꼼짝없이 누워만 있다 나와 보니 이미 세상은 겨울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가을 옷을 입고 입원했다가 옷가지 한 벌 갖다 줄 보호자가 없어서 그 옷 그대로 입고 퇴원한 세상은 무척 쓸쓸했다. 한 겨울 강추위에 인적도 없어 가슴팍을 파고드는 바람이 더 매서웠다. 제대로 걸을 힘조차 없어 줄지은 택시의 앞줄을 포기하고 바로 앞에 있는 택시에 백팩과 양팔에 걸친 쇼핑백과 하나가 된 몸을 쑤셔 넣었다. 병원 정문에서 택시를 타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게 기사님은 뭔가 불안했던지 힘들어도 마스크는 절대 벗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고통에 신음하는 동안 잠잠해졌던 코로나19 대 유행이 다시 시작되고 겨울의 한 복판에 있다는 사실이 마치 시공간 이동을 한 것 같아 몸서리를 쳤다.      

두 달 전 119에 실려 도착한 K 대학병원 응급실에선 간과 신장 모두를 이식해야 한다고 당직의사가 법석을 떨었다. 의사들, 특히 응급실 의사들의 호들갑에 익숙한 나도 어쩌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팠다.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도 버거웠다. 처음에 간 명색이 대학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니 아마 이번엔 제대로 죽을병에 걸렸구나 싶었다. 서울에서 둘째라면 서운해 할 병원으로 전원 된 후 굳이 이식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는 담당 의사의 말에 깊은 안도감이 들면서도 먼저 도착한 K 대학병원의 응급실 의사들의 호들갑스런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안도감이 든다고 고통이 상쇄 되지는 않아서 신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녹초가 된 몸은 호흡 곤란 때문에 숨을 몰아쉬는 것도 큰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마시멜로처럼 탱탱 부은 팔다리는 움직여지지 않아 침대에 다리를 올리기 위해 간호사에게 압박 붕대를 부탁해 발을 묶고 손으로 잡아끌어 겨우 올려놔야 했다. 내 사지인데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니.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올라와서도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내 상태와 달리 담당 소화기 내과 의사는 참으로 태연했다. 자신의 소관 장기인 간수치는 금방 내려가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문제는 신장인데 그쪽은 협진 중이라고.. 소변만 잘 나오면 된다고..     


70Kg을 유지하던 내 체중은 불과 사나흘 만에 이미 80Kg을 넘어서고 있었다. 온 몸이 물먹은 스펀지 같았다. 화장실조차 갈 수 없어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내 모습은 만두처럼 탱탱 부은 팔다리뿐이었다. 그러나 그깟 부은 몸이 주는 통증 따위는 고통이 아니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도 이놈의 호흡이 제대로 안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시시때때로 가슴을 찌르는 통증까지 겹치면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드문드문 나타나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주치의와 담당 의사는 나 같은 환자를 하도 많이 봐서 무뎌졌다기보다 본인 실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지켜만 보는 무능력한 의사들 같았다. 뭘 좀 어떻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도 혈액 투석을 하면 나아질 거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결국 누워서는 호흡이 이뤄지지 않아 앉은 채로 꼬박 이틀을 버티다 침대 옆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마도 잠깐 기절했나 보았다. 그제야 주치의를 비롯한 담당의사의 액션이 취해지고 다시 중환자실로 긴급히 옮겨졌다. 산소마스크가 벗겨지고 목구멍으로 기도 삽관이 이뤄졌다. 그리고 혈액 투석이 시작됐다. 몸에서 물이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18Kg의 체중이 빠져 나갔다.     

 

몸에서 물이 빠지자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내 몸의 어디가 어떤 문제인지, 어떤 조치를 취할 건지 의사에게 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코를 통해 목구멍으로 이어진 영양제 호스와 더 굵은 인공호흡 호스가 보태지자 이젠 아예 말을 못하게 됐다. 어디가 불편하고 어디가 아픈지 말을 못하니 간호사와 표정과 눈빛과 손짓으로 대화해야 했다. 나름 눈빛 연기를 하지만 눈치 둔한 간호사는 엉뚱한 대답을 보낸다. 수어를 배워두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손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니 휴대폰 액정에 내 말을 써 보지만 이노무 손꾸락도 내 맘 같지 않아 자꾸만 오타 투성이다.  '엉제’ ‘오애’ ‘대발’ ‘재병’ ‘돈’ ‘동’ ‘똥’      

너무 자연스러워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 원활한 호흡이 얼마나 큰 고마움인지, 말을 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마움인지를 한꺼번에 느껴야 했다. 그중 ‘똥 쌌다’란 말을 전달하기 가장 힘들었다. 오타 때문보다 한참 어린 여자 간호사한테 내가 싼 똥을 치워달라는 부탁이 수치스러워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안 싸겠다고 괄약근에 있는 힘을 다해 참아보지만 묽은 영양제는 항문을 조이기도 전에 물똥이 되어 기저귀를 적셨다. 소변줄처럼 대변줄은 왜 개발이 안 될 걸까. 기저귀를 차고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내 똥과 내 고추를 본 여자만도 열 명은 넘을 거였다.      

  

호흡기 내과 의사가 회진을 왔다. 그리고 말했다. 폐에 물이 많이 찼다고. 그 여파로 심장에도 이미 무리가 가서 심장 검사도 해야 한다고. 열불이 터졌다. 뚜껑이 열리자 없던 힘이 쥐어짜졌다. 신장이 기능을 못하면 몸에 물이 차는 건 상식 수준인데, 폐에 물차는 걸 왜 미리 막지 못했냐고 쏘아 붙였다. 물론 강렬한 눈빛 연기로 말이다. 내 매소드급 눈빛 연기가 먹혔는지 의사는 그래도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면피성 위로로 얼버무렸다.(고 생각했다.) 이로써 나는 신장 내과, 소화기 내과, 심장내과, 호흡기 내과 다섯과가 협진을 해야 하는, 우스갯소리로 ‘종합 병원’ 이 됐다. 내 몸에 붙어 있는 많은 장기 중 아직 멀쩡한 장기는 무엇이 남았을까?    


“우리 심장 검사 왜 안했지?” 

“한줄 알았는데?”     


회진이 끝나고 잠시 후, 목구멍 한가득 호스를 꽂고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만 응시하고 있으니 나를 듣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으로 여겼을까? 신장내과, 소화기 내과 레지던트 두 여자가 내 앞에서 버젓이 나눈 대화다. 그러나 이미 난 꼭지가 돌 힘도 남아 있지 않아 허탈한 기분으로 허공만 응시했다.     

      

일주일 후 다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번엔 신경외과 의사가 왔다. 그리고 폐에 찬 물 때문에 심장뿐 아니라 뇌에도 부정적 영향이 간 것 같으니 MRI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급성 신장염으로 입원해 폐부종, 심장질환을 2+1으로 진단받고 이제 뇌 질환까지 서비스로 받게 됐다. 나를 위해 협진씩이나 하며 고군분투하는 과를 다시 추려보았다. 신장내과, 소화기 내과 심장내과, 호흡기 내과, 신경외과...  

    

처음 간 K 대학병원에서 신장 기능의 심각한 저하와 간수치가 너무 높은 탓에 두개 장기를 이식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응급실 당직의사가 호들갑을 떨 때부터 이상했다. 코로나19로 응급실은 도떼기시장이었고 가능한 입원실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호들갑을 떨며 날 전원 시킨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면 S병원 응급실에서 몇 시간 만에 CT 판독 결과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사회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니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한국 빅5라는 이곳 S병원에서 병명이 랜덤으로 늘어났다. 정신을 부여잡고 기저귀에 똥을 지리며 곰곰이 돌이켜 보았다. 애초 중환자실에서 혈액 투석을 하다말고 일반병실로 올려 보낼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혈액 투석 일정이 오락가락 하더니 한창 투석 중 갑자기 중단하고 다음날 다시 일정을 잡자고 하질 않나, 그 일정도 어긋나 다시 일정을 잡고, 갑자기 중환자실로 옮겨 투석을 하다 말고 일반 병실로 옮겼다가 투석실로 침대를 이송하고. 이런 식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폐에 물이 차고 호흡곤란 증세는 심해지고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와도 누구하나 폐에 관한 얘기가 없더니 기절을 하고 나니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 다시 혈액투석을 하고, 그중 폐부종 얘기를 하고, 심장 얘기를 하고, 뇌 얘기를 하고... 환자가 절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프로세스, 그들만의 대화.. 의료사고가 나도 환자 본인이 사고 입증을 해야 하는 폐쇄적인 시스템. 병원이란 곳이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지 환자는 알래야 알 수가 없고 아마 간호사들도 모를 것 같은 이 복잡한 업무구조. 그들이 그렇다 하면 그런가보다 해야 하고 이런 검사를 해야 한다면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차에 대해 모르면 카센터에서 어떤 부품을 갈아야 한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해야 하는 일반인의 처지와 뭐가 다른가? 부아가 치밀었다.  

      

어쨌든 몸의 물이 빠지고 팔다리가 조금씩 움직여지자 나는 가장 먼저 기저귀를 벗어 던졌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내 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화장실로 움직이기엔 내 몸에 주렁주렁 달린 호스 길이가 너무 짧았다. 인공호흡기 호스는 뺐지만 아직 의지하고 있는 산소마스크 줄은 바로 침대 밑에 내려가기도 모자랐다. 똥도 내 마음대로 가리지 못하다니. 내 몸을 움직여 화장실을 간다는 게, 내 손으로 대소변을 닦고 치운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다시 주섬주섬 기저귀를 찼다.

     

목구멍을 막고 있던 호스들이 다 빠지고 팔 다리에 꽂혀있던 링거 줄 수가 줄어들수록 오히려 병원에 대한 아니, 정확히는 담당 의사들에 대한 의심과 불만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정신이 들수록 입원부터 현재까지 전후 사정과 그들 각과의 협진 꼬라지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장 때문에 입원을 했고 가장 문제였던 것도 신장이었는데 정작 신장내과 담당 의사는 얼굴 한 번 내 비친 적이 없었다. 그저 후유 장해가 남을 만큼 심각한 상태까지 갔었지만 지금은 위기를 넘겼다는 본인 공치사를 레지던트를 통해 전달했을 뿐이었다. ‘이제 곧 퇴원하라고 하겠군.’ 

    

소화기 내과 의사가 회진을 왔다. 급성 신장염으로 입원을 했는데 왜 자꾸 소화기 내과 의사가 올까? 그는 이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처치는 더 이상 없다며 퇴원을 종용했다. 내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처사였다. 돈 되는 검사는 할 만큼, 아니 필요 이상으로 했고 비싼 중환자실을 벗어난 환자가 값싼 6인실에서 수액과 먹는 약, 식사만으로 침대 하나를 차지한다는 건 병원 입장에선 엄청 비경제적일 거였다. 그러나 2미터 옆 화장실도 걸어서 못갈 정도로 팔다리에 힘이 없는데 퇴원하라니. 70kg대를 유지하던 내 몸무게는 당시 40kg 조금 넘었다. 그러나 몸무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두 달 가까이 침대에만 누워 영양제 주사만 맞다보니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내게 그들은 퇴원을 종용했다. 병원이란 곳이 하는 짓을 본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까짓 거 퇴원하라면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내겐 근본적인 대답이 필요했다.    

  

“아직 소변이 제대로 안 나오는데 이건 언제쯤 나올까요?”  

“글쎄요. 급성이라 갑자기 콸콸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오면 주기적으로 투석해야 하는 만성 신부전으로 가겠죠.”     


소변이 정상적으로 나오면 다행, 아니면 만성 신부전으로 주기적인 혈액 투석? 기가 막혔다. 그럼 두 달 넘게 이곳 병원에서 의사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더 악화되는 걸 막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병을 주렁주렁 달아놨잖은가? 속에선 열불이 터졌지만 최대한 공손히 감정을 누르고 상냥하게 다시 물었다. 상대가 의사이잖은가?      

“그럼 확률 반반인 상태로 만들어 준 건 그렇다 치고, 왜 없던 폐부종과 심장 질환, 뇌 질환이 생겼을까요?  


의사는 마치 처음 듣는 얘기인 것 마냥 여자 레지던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레지던트는 차트를 열어 뭐라 뭐라 속삭였다. 그는 레지던트의 얘기를 듣다말고 내게 말했다. 

    

“급성신부전은 폐부종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호흡이 힘들어지면 심장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구요. 하지만 뇌 질환은 CT 판독결과 정상이에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아니, 이 양반아. 폐부종으로 가지 않게 혈액투석을 하는 거잖아. 근데 투석을 하다말고 입원실로 옮기질 않나, 호흡곤란을 호소해도 코빼기도 안 비치고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와도 나 몰라라 하더니 기절하니까 중환자실로 옮기고.. 그러는 일주일 사이 물이 찬 거 아니냐고.”

“저기 환자분. 잘 알지도 모르면서 말씀이 너무..”     


갑작스런 반말에 여자 레지던트가 당황했는지 서둘러 내 말을 막았다.    

  

“당연하지. 일반인이 니들 의학지식을 어떻게 아냐? 그렇지만 요즘 환자들도 기본 상식 정도는 알아. 만성도 아니고 급성신부전으로 왔으면 투석을 해서 물부터 빼야지 니들은 투석실 일정 못 잡아서 우왕좌왕 하고 말이야. 급성신부전으로 몸이 땡땡 부어 응급실 들어 온 환자가 일반 병실로 직행하는 경우 있어? 그리고 내가 응급실 도착했을 때 폐에 물이 있었어? 그때 찍은 영상 가져와 봐.”     


호흡은 가쁘고 기력은 어지러울 정도로 없지만 빼 먹을 거 다 빼먹고 걷지도 못하는 환자에게 퇴원하랄 때 열린 뚜껑은 이제 닫을 수도 없었다. 소화기 내과 의사의 얼굴이 나만큼이나 울그락불그락 해졌다.   

            

“저기 환자분. 저는 소화기 내과의사에요. 내가 담당한 부분은 환자분의 간이구요. 그래서 며칠 안 돼 간은 이상 없다고 했잖아요. 다른 장기의 이상에 대해선 제 소관도 아니고 왜 그런 처방이 내려졌는지 전 알 수가 없죠. 환자분이 궁금하신 그런 부분은 각과의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시구요..응급실에선 폐까지 찍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급성신부전으로 몸이 땡땡 부어있는데 폐를 왜 안 찍었냐고.”

“그런 판단은 소화기 내과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고...”

“그럼 왜 당신이 내 병의 모든 걸 관장하듯이 결과 보고하고 왜 당신이 퇴원해라 마라야? 당신이 무슨 각과 빵 셔틀이야?”    

 

나보다 나이는 있어보였지만 그래봤자 한두 살 위일 의사는 내가 숨이 차 헥헥대면서도 눈에 불을 켜고 들이대자 움찔했는지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이제는 지켜봐야..”

“그니까 돈 되는 검사는 다 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침대 비워 달라는 거 아니냐고.”

“이보세요, 환자분. 아까부터 말씀을 이상하게...” 

    

여자 레지던트도 열이 받았는지 발끈했다.   

  

“야! 넌 입 닥쳐. 너랑 심장 내과 레지던트랑 둘이 한 말 내가 못 들었을 줄 아냐? 뭐? 왜 검사를 안했을까?”     

의사가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레지던트를 바라보는 동안 그 여자 레지던트는 황급히 차트를 휙휙 넘기기 시작했고 잠시 후 차트에 시선을 꽂고 말했다.

     

“아마 폐 CT 얘기하시는 거 같은데, 그건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응급실에서 저희가 결정하는 게 아니고요...”

“폐 말고 심장. 심장 검사 얘기하는 거라고.. 니들이 검사를 빼먹고 안 해서 이미 심장에 무리가 간 상태에서 뒤늦게 CT 찍은 거 아니냐고.”      


레지던트는 대답은 못하고 이번엔 다른 차트를 획획 넘겼다. 그러자 이번엔 소화기내과 의사가 발끈했다. 

     

“이보세요. 저희 병원은 대하민국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첨단 장비를 갖춘 대형병원에다 국내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들이 포진한 병원이에요. 그런 우리가 진료를 잘못하고 처치를 잘못했다는 거예요?”

“응. 내말이 그 말이야. 크고 첨단이면 뭐하냐. 환자가 담당 의사 얼굴도 못 보는데 아무리 실력이 좋으면 뭐하냐고. 시스템이 그지 같아 협진 하나 원활히 못해서 환자가 침상에서 기절해야 중환자실로 보내는데. 니들은 이 환자가 돈이 될지 안 될지 그런 건 귀신같이 알겠지.”   

  

의사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을 뿐 말을 잇지 못하고 레지던트가 다시 한 번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의 우월성을 자부심 가득 담아 설명했다.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니 그녀의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에 대한 자부심과 우월감이 무서울 만큼 맹목적이었다.

      

“그래. 알았으니까 열심히 해. 좋은 직장에 들어 왔으면 뼈를 갈아서 일해야지 동료와 시시덕거리면 되겠냐? 니네 가족이 입원했다고 생각해봐라. 폐에 물이 차도록 일주일이나 방치했겠냐고. 의사면 좀 의사답자. 응? 당신들 말은 알았고, 퇴원할 테니까 그리 알아”   

   

그들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사실 우리의 대화는 내가 있던 6인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간호사들도 다 들었다. 내가 한바탕 기력을 쏟아 붓고 기진맥진해 침대에 널브러져 숨을 몰아쉬니 한 간호사가 산소마스크를 들고 와 내게 씌워줬다. 누구의 지시도 없었는데 자발적으로 호흡을 도와주니 병원에 믿을만한 의료인은 간호사 밖에 없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바라바리 짐을 쌌다. 오전 11시는 돼야 퇴원 수속이 이뤄질 거라고 했지만 난 일분도 더 있기 싫어 미리 짐을 다 싸 놨다. 팬티 몇 장 갖다 줄 사람이 없다보니 짐은 단출했다. 그런데 그까짓 거 싸는 데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좆 된 기분이 들었다. 이래가지고 집에 간들 혼자 밥이나 차려 먹을 수 있을까? 불안이 엄습했다. 그렇지만 퇴원 수속을 밟고 호기롭게 병실을 나섰다. 침을 퉤 뱉고 싶었지만 코로나 19 상황이었다.  

      

근 두 달 만에 병원의 육중한 문을 밀고 나서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문제는 엘리베이터에서 일분도 안 걸었는데 벌써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는 것이다. 또 다시 불안이 엄습했다. 병원 밖 택시 승강장이 운동장보다 커 보였다. 길게 늘어선 택시 중 나와 가장 가까운 택시 문을 열고 짐과 한 몸이 되어 올라탔다. 배낭을 벗을 기운도 없었다. 배낭과 양팔에 걸친 짐들 무게에 앞으로 혼자 생활할 불안감 까지 얹어 숨을 골랐다. 정문을 통과하는데 그 앞에서 1인인지 단체인지 플래카드를 걸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 플래카드엔 'S병원은 의료사고 인정하라. 한자 피빨아 먹는 S병원은 각성하라'는 씨뻘건 글씨적혀있었다. '그럼 그렇지. 개새끼들.'


그나마 도로에 진입한 택시가 제법 속도를 내자 그간 막혔던 가슴이 조금 뚫리는 기분이었다. 계절은 어느새 겨울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짐을 풀고 집안 정리를 하려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침대에 널브러져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봤다. 밥, 반찬, 국.. 

한 시간 정도 기절한 듯 누워 있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국을 끓일 요량이었다. 

밥은 햇반을 사고 밑반찬도 집근처 반찬가게에서 사기로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부패한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썩은 음식을 음식물통에 담아 밖으로 나갔다. 계단 몇 개를 심호흡을 하고 내려갔다. 올라 올 때도 벽을 짚고 올라왔다. 이 상태로는 반찬 가게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일단 오늘은 배달 음식을 먹기로 하고 내일 기운이 조금이라도 차려지면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날도 두세 걸음이면 될 부엌과 화장실 가는 것조차 커다란 의지를 발휘해야 했고 밥만 짓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했다. 겨우 밑반찬을 사기는 했지만 맨밥에 반찬만 먹기엔 위장이 운동을 한지 너무 오래됐다. 국이라도 끓여야 할 텐데 장을 보고 야채를 다듬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준 신장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음식 목록을 다시 살폈다. 정말이지 먹을 게 없었다. 다 만들어서 먹어야 할 음식뿐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짓을 가쁜 숨을 들이키며 계속 하려니 암담했다. 혼자 떠드는 TV에선 종일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결단을 해야 했다. 계속 이렇게 힘들게 버티며 소변이 나오길 바래야 할지, 아니면 2차 병원에라도 다시 입원해야 할지. 결론은 입원이었다. 적어도 밥은 나오니까. 내가 진단서를 주면 내게 맞는 밥은 줄 테니까. 그래서 이곳저곳 검색을 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폐부종이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폐에 문제가 있는 환자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빌어먹을 S병원 새끼들. 절로 욕이 나왔다. 결국 불면증 때문에 입원했었던 병원에 가기로 하고 입원 문의를 했다. 그러나 그곳도 호흡기 질환자는 코로나 검사를 한 후 일주일 뒤 결과를 보고 입원이 결정된다고 했다.  

    

내가 꼼짝없이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코로나는 무서운 속도로 한국 전역을 빨갛게 물들였다. 긴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해 보니 바이러스로 인해 소수의 인간만이 남아 굳게 장벽을 치고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졸라 외롭고 공포스럽겠군. 이런, 내가 지금 영화 장면을 떠 올릴 때가 아니지. 당장 하루를 버틸 걱정이 천근만근인데 이 무슨 뜬금없는 상상인가? 밥은 먹어야 병원 갈 기운이 생길 텐데 반찬 하나 마련하는 것은 고사하고 쌀 씻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 상태로 일주일을 버틸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겨우 끓인 콩나물국에 밥만 말아먹으며 사흘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급성신부전을 검색하다 눈에 확 띄는 게 있었다. 장에 좋다는 프로바이오틱스 중에 00 프로바이오틱스라는 게 있는데 애초 장 활동을 돕기 위해 개발됐지만 부수효과로 신부전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읽은 것이다. 당연히 아직 검증이 필요한 단계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 주문을 했었다. 그리고 아침저녁 두 포씩 털어 넣길 삼일 째 되던 날, 식은땀을 흘리며 자던 중 꿈속에서 ‘완전히 좆됐다’고 외치다 잠에서 깼다. 내 잠꼬대에 내가 놀라 깬 그 새벽. 화장실에서 갑자기 소변이 콸콸 쏟아졌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 아직 꿈꾸고 있나? 소변줄기를 이러저리 흔들어 보니 변기 밖에도 묻고 내 다리에도 묻고.. 분명 꿈이 아니었다. 아, 누런 소변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 00 프로바이오틱스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병이 나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소변이 마려울 때마다 시원하게 오줌을 쏟아내며 내 오줌줄기에 감격을 했다.  

    

까짓 거 병원 안가고 만다. 

소변을 보기 시작하자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낙관도 생겼다. 

내 어머니께 물려받은 유산, 깡다구. 그걸로 존버하기로 했다. 반찬을 사고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기진맥진해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나 입에 쑤셔 넣었다. 쪽 빠진 체중과 기운을 차리기 위해 조리된 육류를 주문해 먹고 다시 누웠다가 오 분이라도 공원을 걷고 다시 들어와 누웠다가 명상을 하고 약을 털어 넣은 후 잠을 잤다. 그러길 일주일. 이제 체중은 50kg까지 회복됐고 기운이 생기니 식욕이 마구 일어났다. 밥상에 반찬이 자꾸 늘어났다. 그러는 사이 새해가 밝았다.  

     

며칠 후 통원치료를 위해 찾은 신장내과에서 내 담당 의사를 처음 봤다.   

   

“저 혹시 입원했을 때 제 담당 의사 맞나요?”      


여자인줄 몰랐기도 했거니와 이곳 병원은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네. 왜요?”

“아니에요. 얼굴을 처음 봬서...”     


그 의사는 뼈 있는 내 말을 이해 못한 듯 컴퓨터 차트를 열어 보이며 뭔가 고무된 듯 입원했을 때 상태와 오늘의 데이터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랬다.  

    

“들어 올 때 그렇게 심하게 와서 이렇게 빨리 회복한 환자는 또 처음이에요.”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런 환자가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환자 얼굴을 안 보니 몰랐던 거 아닐까요?”     


잠깐의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의사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뜻이죠?”

“됫수다. 현재 상태를 알았으니 약도 필요 없고 이제 이 더럽게 계산적인 병원에 올 일 없으니 잘 계쇼. 그리고 어디 가서 의사 행세할 때 양심 좀 가지시고...”     


의사의 멍한 표정을 뒤로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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