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
재수는 차창을 가린 커튼을 손가락으로 살짝 걷어 밖을 보았다. 차창 밖으로 시골의 완연한 봄 풍경이 펼쳐졌다. 의정부를 떠나 교육대로 가는 호송 버스는 경기도 어디쯤의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선두에서 요란하게 싸이렌을 울리며 에스코트하는 싸이카 소리에 호송버스 안은 온통 도살장 끌려가는 분위기였다. 등받이에 머리를 찢는 놈, 창문에 머릴 박고 흐느끼는 놈, 사진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놈도 있었다. 악명 높은 맹수부대로 배치받은 병력들이었다. 그리고 호송차 뒤쪽에는 그들을 보며 상대적 우월감에 빠져 희희낙락하는 무리들, 수방사 차출병들이 있었다.
재수는 인간 무리엔 늘 별 걸 다 아는 놈들이 있다는 걸, 그런 놈들은 평소엔 쓸데없지만 위기의 순간 그 잡식 덕분에 의외로 행운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훈련소 동기가 된 이상 의문의 녀석과 말을 트기로 한 재수는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저...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요.”
“야. 무슨 존대 말이야. 이제 우리 동기잖아. 그냥 반말해.”
재수는 제 마음을 읽은 듯 먼저 반말하는 녀석이 반가웠다.
“그...수방사가 뭐 하는 데냐?”
재수의 말에 벙 찐 표정이 된 건 의문의 녀석만이 아니었다. 차출병 전부가 그런 표정이라는 걸 재수는 보지 않고도 싸한 공기로 알 수 있었다.
“너 안다며?”
“알기야 알지. 이름..”
“그저께부터 느꼈지만... 너, 참 특이하다. 아니, 수방사 이름은 아는 데 뭐 하는 덴지 모른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음..솔직히 우리 집안에 군대 갔다 온 사람이 없어서...”
녀석의 거침없는 말투가 거슬렸지만, 아쉬운 건 재수였다. 의문의 녀석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허리를 세우고 말했다.
“수방사가 뭐냐면... 수도방위사단. 그러니까... 아니다. 너한텐 그런 거까진 필요 없고, 그냥 군 생활 풀렸다 생각하면 되는 거야. 우리 사촌형이 거기 나왔는데 이건 뭐 군바리도 아니더라구.”
녀석의 거들먹거림에 불구하고 한꺼번에 차출병들이 시선이 몰렸다. 그리고 그중 한 놈이 물었다.
“사촌형이 거기 나왔다구요? 거기 얘기 좀 해줘 봐요.”
재수는 본인이 묻고 싶은 걸 대신 물어준 놈이 고마웠다. 어색한 눈들이 모처럼 한 곳으로 모아지자 이번엔 또 다른 놈이 나섰다.
“이럴게 아니라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어차피 교육훈련 끝나면 제대할 때까지 같이 생활할 텐데 이것도 대단한 인연 아닙니까?”
의문의 녀석이 드디어 제 이름을 밝혔다.
“난 덕환이라고 해. 김덕환.”
녀석의 말에 다들 서로 통성명하기 바빠졌고 모처럼 호송버스 안에 밝은 기운이 돌았기에 재수도 덩달아 흥분됐다.
“아, 나는... 재수...노재수.”
어수선하고 들떴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어색한 공기를 뚫고 누군가 궁시렁댔다.
“군대는 운 빨인데, 노재수라니..하하.. 거참..”
언놈인지 싸제였다면 반 죽었을 테지만, 재수는 휴가도 못 가고 영창부터 갈 수는 없어서 참았다. 분위기를 바꾼 건 누군가 덕환에게 질문을 하면서부터였다.
“근데, 수방사로 차출 됐는데 지금 왜 맹수부대로 가는 거야? 맹수부대면 작살나는 곳이잖아. 빡세기로 유명한데 아니야?”
“우리는 지금 위탁 교육을 받으러 가는 거야. 수방사는 신병교육대가 없거든. 수도를 방위하는 부대면 당연히 수도권에 있겠지? 그럼 싸제인들 눈에 띄겠지? 그러니까 싸제인 눈에 진흙탕 구르는 모습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교육대가 없다 이 말씀이지.”
“아~!!!”
덕환의 진지한 표정과 딱 떨어지는 논리에 재수와 일동은 입을 벌리고 존경의 눈길을 보냈다.
“그래서 우린 위탁 교육받으러 가는 거야. 근데 말이야. 명색이 수방사 병력이 논산 애들처럼 대충 훈련받아서 되겠어?”
“아!! 그렇지, 그렇지.”
“맹수 신병교육대가 훈련이 전국 최고로 세거든. 어차피 자대 생활이 너무 편하다 보니 아예 군인 같지 않으면 또 안 되잖아. 그니까 교육 훈련이라도 빡세게 받아서 군인다운 면모를 갖춰라. 오케이?”
“아하~ 거 말 되네.”
덕환의 우쭐한 표정에 장단 맞춰 차출병들 모두 감탄사도 모자라 손뼉까지 치기 이른다.
“거기서 딱 6주만 개기고 자대 가서 설렁설렁 2주 개기면 일주일 휴가. 오케이?”
“끼야오~~”
휴가라는 말에 재수가 자기도 모르게 기함을 질렀다.
“아이, 깜짝이야.”
덕환과 동기들은 재수를 무슨 또라이 보듯 허리를 젖히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화와 같은 동기들 반응에 한껏 고무된 덕환은 썰을 계속 풀었다.
“서울에서 군 생활하니까 여자들 맨날 볼 수 있지. 토요일마다 외박이다 외출이다, 게다가 무슨 휴가는 그리 많은지. 우리 사촌형 때문에 작은 엄마가 아예 도망 다녔다니까?
“왜?”
“허구한 날 휴가 나와서 돈 뜯어가니까.”
“우하하.”
재수와 무리들 모두 덕환의 사촌형 얘기가 곧 펼쳐질 자기들 얘기인 듯 호들갑스럽게 허리를 젖히며 웃어댔다. 그러다 문득 일동 모두 심상찮은 공기를 감지하고 얼른 웃음기를 지웠다. 그랬다. 호송버스 안에는 수방사 병력인 그들만 탄 게 아니었다. 애초 맹수부대 병력들이 탄 호송버스에 차출병, 그들이 끼어 탄 것이다. 맹수부대 병력들은 언제부터인지 그들을 도끼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맹수부대가 얼마나 빡세길래 저러는 거야?”
누군가 덕환에게 그들 시선을 의식한 듯 눈을 깔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덕환도 덩달아 속삭이듯 말했다.
“거긴 빡센 게 전통이야. 월남전도 갔다 오고...”
“아... 월남전...”
“하~ 그 참...”
무리들 여기저기서 탄식과도 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호송버스 중간 열의 맹수 병력 중에서도 탄식이 섞여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덕환이 이번엔 무슨 군사 기밀을 얘기하듯 앞 좌석 등받이에 몸을 숨기며 말했다.
“근데, 맹수부대가 문제가 아니라 사단 내에서도 진짜 빡센 데는 따로 있지.”
“아니 맹수부대도 잘 알아요?”
무리들 중 또 누군가 과장되게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나 눈치 없게도 큰 목소리로 묻는 바람에 앞쪽 맹수 병력들까지 그 말을 듣고는 모든 시선이 일순간 덕환에게 쏠리게 됐다. 이쯤 되자 덕환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목소리마저 낮게 깔고 노골적으로 거들먹거렸다.
“에~ 또... 우리 친형이 거기 출신이잖아.”
“뭐야? 혹시 아버지는 사단장이나 군단장 아냐? 할아버지는 육군 참모 총장이고?”
무리엔 꼭 삐딱 선을 타는 놈이 있기 마련이라 누군가 비아냥거리며 딴지를 걸었다.
덕환의 정보가 절실한 재수가 삐딱선 탄 놈을 도끼눈으로 협박하자 놈은 움찔해서 눈을 내리 깔았다. 하지만 놈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녀석의 집안은 통째로 군바리 출신이라 엄마가 국방부 장관이라 해도 믿을 만큼 덕환의 정보에 더욱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재수는 혹여 덕환이 비아냥거림에 삐쳐 썰을 멈출까 불안했지만 덕환은 이미 자신에게 쏠린 모두의 시선에 도취돼 누군가의 딴지에도 아랑곳 않고 썰을 이어나갔다.
“거긴 공수훈련, 특공무술...전투수영.. 하여튼 별거 다 해. 거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북한말 시험을 본다나? 군대 와서 머리까지 써야 되니 돌아버리는 거지.”
이제 호송버스 안 차출병력과 맹수병력 가릴 것 없이 여기저기서 질문과 탄성,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응? 북한말은 뭐 하러?
“전쟁 나면 일단 넘어가야 되니까...북한으로.”
“그럼, 간첩이네?”
“뭐, 비슷한 거지.”
“거기로 배치되면 군 생활 끝이네. 멀쩡히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갑자기 간첩이 되는 거잖아?”
“그럼 어제 모집관들이 가문 3대 중에 북한 넘어간 사람 있는지 물어본 게 그거 때문 아냐? 선배 있나 보려고?”
“그거 유머야?”
“우하하.”
이쯤 되자 차출병력이나 맹수병력이나 신병 교육을 받으러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마치 남의 군 생활 얘기를 듣는 듯 분위기가 업 됐다. 어떤 놈의 진지한 농담에 호송차 안은 왁자지껄한 관광버스 모드가 됐다가 덕환이 입을 열면 다시 진지한 경청 모드가 됐다가 하는 것이다.
“근데, 훈련 빡센 거보다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어. 우리 형한테 들은 얘긴데...”
덕환이 갑자기 또 앞 좌석 등받이에 몸을 숨기고 속삭이자 앞쪽 맹수병력들은 아예 복도를 비집고 덕환에게 모여들었고 등받이를 넘어오는 놈들도 있었다.
“거기가 아주 저주받은 부대라는 거야. 하늘도 포기한 부대라는 거지.”
“응? 뭐야, 간첩도 모자라 하늘의 저주까지?
차출 병력 중 누군가 남 얘기하듯 툭 던진 말에 맹수부대 병력들의 탄식이 호송 버스 안 공기를 꽉 채웠다.
“이 부대 일대가 6.25 때 엄청난 격전지라서 땅에 안 좋은 성분이 그렇게 많데. 그래서 축구하다 살짝만 까져도 그대로 병원 신세지. 일명 봉화직염. 그렇게 다리 잘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거야.”
“아! 땅에 녹슨 포탄이 많아서 그렇구나!”
“그렇지. 뭘 좀 아네.”
덕환은 신이 난 듯 손가락을 튕기며 응수했다. 수방사 병력들이 지들끼리 군대 지식이랍시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맹수병력들의 얼굴은 낯빛으로 변해갔고 재수는 하마터면 자신이 겪을 뻔 한 군 생활을 상상했다.
연병장 축구 골대에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던 재수. 슬로우 모션으로 몸을 날려 볼을 막는 데 성공한다. 재수는 회심의 미소를 짓지만 고참들은 무척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본다. 재수가 자신의 다리를 보니 체육복 하의에 동전 크기만 한 구멍이 나있다. 공포를 느끼기도 전에 재수는 곧바로 다리에 전봇대만 한 깁스를 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군의관이 다가와 전기톱을 번쩍 들어 부르릉 시동을 건다.
재수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걸 겨우 손으로 막은 채 신음했다. 어차피 희한한 놈 취급받는 재수가 그러거나 말거나 덕환은 썰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건 진짜 중요한 정본데... 혹시 땡삐 알아? 땡삐?”
“땡삐? 그건 또 뭐야?
“이 부대가 정기적으로 빗자루 만들 나무를 베러 부대 앞의 산엘 올라간데. 그게 일명 싸리 작업이란 건데... 그런데 글쎄 그 산이 땡삐라는 치명적인 벌의 서식처란 거야.”
“치명적?”
“이게 얼마나 골 때린 벌이냐면... 부대 대장까지 갈아 치운 벌이래.”
“벌이 대장을 갈아 치워?”
“그날도 싸리 작업을 하는 날인데, 그날 아침에 부대장이 직접 특별 훈시를 했대. 신병들을 위해서...”
덕환은 본인이 직접 겪은 것 마냥 자기 얘기에 빠져들어 먼 곳을 바라보며 썰을 풀었고 재수는 덕환의 얘길 들으며 자기가 겪을 뻔했던 상상을 한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날, 단상에 선 지휘관이 연병장에 도열한 부대원들에게 근엄한 얼굴로 훈시를 하고 있다.
“새로 온 신병들은 잘 들어라. 만약, 작업 도중에 땡삐를 만나면 당황해서 우왕좌왕 날뛰지 마라. 그러다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땡삐의 천적은...바로...뻐꾸기다, 뻐꾸기! 그럴 땐 무작정 도망가지 말고 침착하게 그 자리에 앉아라. 그리고 손을 요렇게 모으고..”
체육복 차림의 병사들이 낫과 삽 등을 들고 좁은 산길을 한 줄로 오르고 있다. 그중엔 이등병인 재수도 있다. 어느 순간, 대열의 앞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모두 불안한 눈으로 앞쪽을 본다. 웅성거림이 점점 커질수록 대열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리고 슬슬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마침내 ‘땡삐다!!’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좁은 산길에서 그 많은 인원이 서로 엉켜 뒹굴기 시작한다. 숲 속으로 줄행랑을 치는 놈, 나무 위로 오르는 놈, 풀숲에 다이빙하는 놈 등, 아수라장이 된다. 이때 숲길 한쪽에 공포에 질려 꼼짝 못 하고 서 있는 재수는 뭔가 결심한 듯 그 자리에 풀썩 쪼그리고 앉는다. 그리고.......... 대장이 한 손 모양 그대로 입에 대고 외친다.
“뻐꾹! 뻐꾹!”
재수가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열심히 ‘뻐꾹’을 날리지만 벌떼 소리는 점점 커진다. 이에 재수의 뻐꾹 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메아리로 변한다.
“뻐~~~~꾹~~~”
호송버스 안엔 꼴깍 침 넘기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가운데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래서 어떻게 됐데?”
“어떻게 되긴... 사병들 단체로 병원에 실려 가고 뻐꾹 날리라던 부대장은 허위정보로 부대를 작살냈으니 사단장이 영창 보내버렸지. 아무튼 이게 왜 골 때린 벌이냐면 꼭 사람 털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쏜다는 거야. 그래서 특히 머리에 많이 쏘이는데... 서너 방만 맞아도 사람이 거의 실성한데. 그다음 털 많은 곳이 어디야, 응?”
“여기?”
한 놈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제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그래. 그니까 치명적이라는 거지.”
덕환의 맞장구에 이번엔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대신 다들 다리를 오므리고 심각한 얼굴로 제 아랫도리를 내려 봤다. 덕환이 무슨 무용담처럼 손짓 발짓까지 하면서 썰을 푸는 동안 재수의 머릿속엔 상상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울퉁불퉁 혹을 달아 두 배로 커진 머리가 되어 의무대 침대에 누워 있는 재수가 초점 풀린 눈으로 중얼거린다. ‘뻐꾹 뻐꾹...’ 때때로 히죽히죽 웃기도 하다가 한 순간 눈을 크게 뜨더니 ‘악’ 하고 아랫도리를 잡고는 앞으로 고꾸라진다.
재수는 이제 어질어질했다. 싸제에선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무지막지한 일들을 하마터면 자신이 겪을 뻔했다니. 재수는 지옥에서 탈출한 기분이 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것만이 아니야. 군대 훈련 중에 쫄따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뭐야? 사격이잖아, 사격. 사격장 갔다 하면 일단 굴러야 되니까. 근데, 어떻게 된 게 이 정찰대가 사격 일정을 잡으면 밤새 퍼붓던 비가 아침만 되면 뚝 그친다는 거야. 장마철에도.”
“헐~”
“근데, 또 이 부대가 행군하는 날이면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강풍이 불어 닥친다는 거 아니겠어? 겨울도 아닌데 눈도 오고 말이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재수는 마치 제 일처럼 덕환의 모든 썰을 장면으로 구성해 상상했다.
차 한 대 없는 국도를 따라 고개를 숙인 채 행군하는 군인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강풍이 불다 거짓말처럼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대열 중간에서 갑자기 바람에 날아가는 재수, 논두렁에 처박힌다.
재수가 상상을 하는 동안 무리들 모두는 덕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차창 커튼을 열어젖혔다. 아니나 다를까 창밖은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호송 버스 안 여기저기서 무거운 탄식이 터졌다.
“이거 뭐야. 지금 삼월인데 눈이 온다고? 여기 무슨 악마의 땅이야?”
덕환도 설마 하고 얘기했지만, 자기가 한 말이 그대로 현실로 펼쳐지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호송 버스 안은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고 때마침 차가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뭐야. 다 왔어?”
누군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병력들의 시선이 일제히 호송버스 앞 유리로 향했다. 입을 벌린 호랑이 마크가 그려진 거대한 아치형 입구가 앞 유리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호송버스가 어둑한 대낮에 진눈깨비 맞고 있는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호송차 안도 서서히 시커먼 침묵에 잠겼다. 입구에서부터 양쪽으로 도열한 조교들이 시퍼런 헬맷을 깊숙이 눌러쓰고 차가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춘삼월 진눈깨비를 맞고 서서 박수를 치고 있는 조교들의 모습은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조교들은 헬맷 아래로 병력들을 매섭게 쏘아보며 입가엔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졌고 그들의 박수와 미소는 ‘이제 너희는 다 죽었어.’라는 속삭임 같아서 은밀한 공포를 뿜어냈다. 재수가 입대 후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잊히기 시작한 건 그때 그 조교들을 볼 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