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재수-
내무반에서 총기를 분해해 손질을 하며 재수와 동기들은 덕환을 흘끔거렸다. 할아버지가 육군 참모총장, 아버지가 사단장이나 군단장일 거라 믿을 만큼 군대에 빠삭한 놈이 단 한 발도 못 맞추고는 총은 또 능숙하게 분해하고 열심히 닦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자꾸 봐, 임마.”
재수가 힐끔거리는 걸 눈치챘는지 녀석은 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옆통수에도 눈이 달렸나? 하여간 녀석의 눈치는 군대 최고일 거라 재수는 생각했다.
“아니, 그냥.”
“좋겠다. 휴가 가서.”
“너도 몇 주후에 가잖아.”
“그래. 그러니까 그때는 같이 가지 말자. 응?”
녀석은 교육대 입소 후부터 재수를 경계했다. 아니, 싫어한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재수가 미루어 짐작컨대 모든 교육훈련에 적극적인 재수를 뺀질이 체질인 녀석은 못마땅한 것 같았다. 사실, 재수도 녀석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녀석의 군대 지식이 필요했을 뿐이다. 재수는 총기수입 꼬챙이로 녀석의 콧구멍을 쑤시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때 내무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신 조교가 성큼 들어섰다. 일동은 동작 그만 자세가 됐다.
“77번 훈련병 부대장실로!”
‘사격 성적을 치하하려고 부르나? 어쩌면 휴가증을 미리 줄 수도 있겠다.’
재수는 이런저런 흐뭇한 상상을 하며 조교를 따라 부대장실로 향했다. 거의 감긴 한쪽 눈 때문에 복도가 울렁거려 띨빵 한 스타워즈 3PO 로봇처럼 팔을 앞뒤로 힘차게 저으며 갈지자로 씩씩하게 걸었다. 곧 받을 휴가증을 이마에 딱 붙인 듯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부대장은 우렁차게 경례를 하는 재수에게 맞경례도 하지 않고 앞의 소파를 턱으로 가리켰다.
“에~ 오늘 사격 만발자.. 에~ 77번 훈련병은 우리 사단 병력이 아니고 위탁 훈련병이네?”
“네, 그렇습니다.”
‘바로 수방사 병력입니다. 크흠.’
속으로 으스대며 외쳤다.
“그래서 에~ 이번 휴가를 검토한 결과, 타 부대 병력을 우리가 휴가 보내는 건 이상하므로 에~ 또~ 이번 휴가는 취소다. 이상.”
“네, 알겠습니다.”
“그만 나가보도록.”
“네. 맹~수!!”
그제야 부대장은 맞경례를 해줬다. 재수는 무슨 정신인지 부대장실을 나올 때도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하지만 문을 닫고 돌아서자 머리가 띵했다. 휘청거리는 재수를 신 조교가 얼른 부축했다. 그리고 곧장 의무반으로 향했다. 재수가 먹은 충격의 크기를 신 조교가 짐작했을까? 보통의 경우와는 확실히 다른 신 조교의 행동이었다. 의무반 침대에 멍하니 앉은 재수에게 군의관은 손전등을 비추며 눈동자를 굴려보라고 했다. 그러나 재수는 눈동자조차 움직일 힘이 없었다. 온몸의 맥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것보다 휴가가 취소돼서 충격을..”
“뭐? 휴가?”
조교의 말에 군의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재수를 바라봤다. 억울해서일까? 허망해서일까? 재수는 갑자기 울고 싶은 심정이 됐다.
‘두 눈 부릅뜨고 총을 쐈는데. 광대뼈가 부서져라 쐈는데. 그녀를 곧 볼 수 있었는데. 타 부대 병력이라 취소라고? 개새끼들.’
갑자기 광대뼈가 욱신거리며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두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자 부어오른 눈 밑이 쓰라렸다.
“신 조교님. 왜 진작 말씀 안 해주셨습니까?”
“나도 몰랐다, 야. 부대장이 조교라고 시시콜콜 다 말해주는 줄 아냐?”
원망의 눈길로 묻는 재수와 딴청을 피우는 조교를 본 군의관은 손전등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야! 니들 나가. 이것들이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의무반을 휘청거리며 나온 재수를 신 조교가 불러 세웠다.
“너 따라와 봐.”
신 조교는 재수의 동네 형이었다. 재수 어머니가 장사하던 시장 골목의 '신씨네 떡집' 아들이었던 신 조교는 고등학생 때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아 동네 사내아이들의 우상이었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에다 일찍부터 수염이 난 잘 생긴 턱 때문에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신 조교는 대학생 누나를 여자 친구로 둔 적도 있었다. 신 조교와 여자 친구가 시장에 나타날 때면 대견하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도 있었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재수는 교육대에 입소한 후 감히 조교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는데, 이튿날 신 조교가 재수만 따로 불러내 화장실로 데리고 갔더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수는 영문도 모른 채 화장실로 끌려가며 바싹 쫄았었다. 그런데 화장실 안에 들어서 모자를 벗은 신 조교는 재수를 보며 바지락 까는 아줌마 아들 아니냐고 물었고 재수는 잘 생긴 조교의 턱을 보고 그제야 동네 형임을 기억해 냈었다. 그리고 재수는 시장 소식과 신 조교 부모님 소식을 전했었다. 신 조교는 후임이 없어 8개월째 휴가를 못 갔다고 한숨을 지었더랬다. 그때만 해도 퇴소 후 휴가가 예정 돼 있던 재수는 하늘 같은 조교 앞에서 난 수방사 병력이라 곧 휴가를 갈 거라고 우쭐했었다.
신 조교는 이번에도 화장실로 들어서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고 재수에게도 건넸다. 재수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대에서 고참이, 그것도 조교가 건넨 담배를 거절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신 조교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거두었다.
“재수야. 그냥 잊어버려. 그깟 사일 휴가 가면 뭐 하냐. 곧 들어올 텐데. 그리고 입대하자마자 휴가 가는 거 좋지 않다, 너? 적응할 만할 때 휴가 가면 진짜 다시 들어오기 싫다고.”
곧 들어올 거기 때문에 가면 뭐 하냐고? 그럼 휴가는 왜 있나? 자신을 위로하려는 신 조교의 마음을 재수도 알았지만 당장 무너진 마음에 재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신 조교는 건빵 주머니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재수에게 건넸다. 그러나 재수는 역시 고개만 가로저었다.
“야. 노재수. 기운 안 차릴래?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훈련병 주제에 벌써부터 빠져가지고. 군기 좀 잡아줄까?"
신 조교의 갑작스런 호통에 재수는 움찔했다. 너무 낙담하는 바람에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었음을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저승사자 같은 조교였다.
"넌 훈련 마치고 자대 가서 2주 있다가 휴가 가잖아. 여기 애들은 그런 것도 없어. 짜식이 배부른 투정하고 있어.”
하긴, 여긴 군대였다. 지금 자신이 하는 짓은 어쩌면 욕심과 투정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자 얼른 초코파이를 받아 들고 우걱우걱 씹었다. 짬밥은 당분이 없나 보았다. 초코파이가 세상 그렇게 달수 없었다. 재수는 신음소리까지 내며 열심히 씹었다. 손가락에 묵은 초코를 쪽쪽 빠는 재수의 모습을 보던 신 조교는 다시 담배를 건넸다. 재수는 그제야 공손히 받아 들고 담배연기를 맛있게 쪽쪽 빨았다. 적어도 신 조교 앞에서는 그렇게 해야 했다.
힘없이 내무반에 들어와 멍하니 앉아 있는 재수에게 덕환이 슬며시 다가왔다.
“야, 노재수. 너 왜 그래?”
덕환이란 놈은 궁금한 건 못 참는 놈이어서 부대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수에게 끈질기게 캐물었다.
“야. 너 타 부대 병력은 포상 휴가 못 가는 거 알고 있었냐?”
“뭐? 으하하. 너 휴가 못 가냐?”
덕환은 침상을 데굴데굴 뒹굴었다.
“알았냐고?”
재수가 죽일 듯 달려들며 묻자 덕환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사촌형이 수방사 출신이라고 얘기했지? 그리고 우리 친형이 여기 맹수부대 출신이라고 얘기했지?”
재수는 덕환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서론을 이렇게 길게 까나 싶어 녀석을 빤히 쳐다봤다.
“근데 말이야. 사촌형도 여기 맹수 교육대에서 훈련받았거든? 근데 또 말이야. 사촌형이 너처럼 사격 만발자야. 근데 우리 사촌형은 휴가 나왔거든? 이게 무슨 말이겠냐?”
“뭐? 이런 씨발. 부대장 저 개새끼.”
덕환은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재수의 모습에 또다시 침상에 뒹굴었다.
“야, 노재수. 너 제대하면 이름부터 바꿔라.”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너 있잖아. 이름이 굉장히 중요하다?”
“..... 이 새끼가 지금 내 이름 때문에 운이 없어 휴가를 못 간다는 거야?”
안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판에 덕환이 재수의 꼭지를 돌게 했다.
“이름을 바꿔야지 그럼 성을 바꾸냐?”
다른 땐 눈치 백 단인 놈이 이럴 땐 아무 생각이 생각 없는 놈 같았다. 마침 분풀이 대상을 찾고 있던 재수는 실실거리는 덕환의 면상을 이마로 들이받았다. 덕환의 고개가 뒤로 홱 넘어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더니 양쪽 콧구멍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덕환은 제 피를 아까운 듯 두 손으로 공손히 받으며 재수와 제 손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런.. 내 피..”
덕환의 표정은 우는 듯 당황한 듯 애매한 표정이 됐을 뿐 말을 잇지 못했고, 그뿐이었다. 재수는 덕환이 애초 주먹다짐을 할 용기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대개 말 빨 좋고 눈치만 빠른 놈들은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는 걸 재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덕환이 아무 말 없이 제 코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비실비실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재수는 여전히 씩씩댔다. 부대장이랍시고 제 맘대로 휴가를 주기도 하고 취소도 시킨다니 열불이 났다. 싸제라면 고소할 일이지만 군대에서, 그것도 훈련병이 교육대장을 고소한다? 재수는 어찌할 도리 없음에 더 깊은 낙담을 하며 침상에 머리를 마구 찧었다. 동기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재수의 머리통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그날 밤 재수는 덕환의 옆에 누워 깜깜한 내무반 천정을 보며 사격 포상 휴가는 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일개 훈련병 주제에 뭘 어떻게 할 방법도 없거니와 당장 몇 시간 후 시작될 지독한 하루가 더 걱정인데 지금의 낙심한 상태로는 그 하루를 버틸 수 없다는 결론이 쉽게 내려졌기 때문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코피를 질질 흘리던 녀석이 코를 골며 자는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도 억울했던 감정이 스르륵 사라졌다. 저렇게 마음 편하게 군 생활할 수 없는 걸까? 재수는 문득 덕환이 부러웠다. 덕환의 코에 쑤셔 박힌 휴지가 녀석의 날숨에 로켓처럼 픽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