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 1
훈련병들은 모처럼 개인 정비 시간을 맞게 됐다.
덕환과 재수는 군복을 빨아 널고 군화도 반질반질하게 닦아놓고는 삼월의 마지막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는 연병장 스탠드에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녀석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퉁퉁 부은 코로 담배 연기를 뿜기도 하고 입으로 도넛을 만들고 있었다. 배알이 없는 건지, 뒤끝이 없는 건지 도통 모를 놈이었다.
“너네 집 가훈이 뭐냐?”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때문인지 덕환은 뜬금없고도 한가로운 질문을 했다.
“가훈? 없는데?”
재수는 가훈이라면 커다랗게 써놓은 벽의 액자가 아니더라도 부모님께 비슷한 말도 들은 적도 없었다. 다만, 국민학교 시절 담임이 써오라고 해서 제 맘대로 ‘용쟁호투’라고 써냈다가 머리통을 쥐어 박힌 기억만 있을 뿐이다. 다른 애들이 낸 가훈이 보통 네 자의 한문이었으므로 배수도 그렇게 써 제출했던 것이다. 그건 이소룡이 나오는 영화 제목이었는데 한자 뜻은 당연히 모르고 용이 나오니 왠지 그럴싸해서 급히 써냈었다.
“너희 아버지 성실하시지?”
“아마도.”
“너희 어머니도 성실하지?”
“우리 어머니는 억척스럽지.”
“그래. 내 말이 맞을 거야. 너희 집에 가훈이 있다면 아마 근면 성실일 거라고 생각했다.”
“뭘 보고?”
“널 보면 알아.”
재수는 이때부터 덕환의 말에 어떤 조소가 담긴 걸 눈치챘지만 녀석의 부어 오른 코를 보고 잠자코 있었다. 덕환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우리 집 가훈이 뭔지 아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임마.”
“운칠기삼. 사는데 운이 칠 할이고 세 번의 기회가 온 다 이 말이지.”
“운이 칠 할이고 재능이 삼 할이란 말 아니냐?”
“... 그런가?”
덕환이 살짝 뻘쭘한 표정이 됐다.
“음.. 뭐... 어쨌든 좆나 노력을 해봐야 소용없다 이거야. 운 좋은 놈이 최고다 이 말이지.”
“그래서 넌 노력 같은 건 안 한다 이 말이냐?”
“아니, 할 건 해야지. 근데 너처럼 아등바등 애쓰는 사람 보면 안타까워.”
이제 재수는 덕환의 말이 본격적으로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수의 삶과 함께 해 온 불쾌한 기억들이 툭툭 터져 나왔다.
재수가 학창 시절부터 보아 온 있는 집 놈들은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고 뺀질거림에 거리낌 없었다. 선생님께 혼날 일을 만들거나 학교친구와 싸움이 나도 믿는 구석이 있는 듯 태연했다. 마치 그래도 된다는 특별한 증명서를 발급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당장의 도시락 걱정과 학비를 못내 툭하면 불려 나가는 재수의 눈에 흉내 낼 수 없는 당당함으로 보였다. 매사에 노심초사하고 뒷일부터 걱정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재수는 그들의 그런 모습이 또한 어떤 자신감 같아 보이기도 해서 부러웠다. 애초에 공부 머리가 안 되는 재수는 남들이 예상 문제 풀 때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고 운동장 불이 꺼질 때까지 혼자 공을 차며 연습하고 동네 형들에게 얻어터져 가며 싸움 기술을 익혔다. 자신의 힘으로 그들보다 나을 수 있는 건 축구와 싸움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을 티 나게 차별했다. 재수의 오 학년 담임이 그 전형이었다. 담임은 유독 재수와 동네 친구들을 대할 때 손이 먼저 올라갔다. 무엇 하나 물어볼 때도 귀찮음이 잔뜩 묻어있는 표정으로 대했고 꾸짖을 때는 신경질적으로 악을 썼다. 그러나 부잣집 애들은 대할 땐 그렇게 상냥하고 친절할 수 없었다.
사실, 보충대에서부터 봐 온 덕환은 왠지 애쓰지 않고도 잘 살아온 놈다운 여유가 있었고 무언가에 안달하는 것 없이 믿는 구석이 있는 놈 마냥 느긋했다. 그런 놈이 성실이니 아등바등이니 운운하며 자신을 자극했으니 군대에 끌려온 이상 다 평등하고 같은 처지라 여겼건만 가만 보니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아 재수는 또다시 열등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니까 니 말은 대충 살아도 운만 좋으면 인생 풀린다 이거냐?”
“너, 임마. 재능 있는 놈이 노력하는 놈 못 이기고, 노력하는 놈이 운 좋은 놈 못 이긴단 말 아냐? 잘 생각해 봐. 우리 사촌형이 수방사 출신인데 맹수 교육대 나왔고 그 교육대가 친형이 있던 곳이고 동생인 내가 수방사 병력으로 지금 이곳에 앉아 있어. 근데, 니가 옆에서 사격 만발하고, 근데 또 너는 휴가 못 가고.. 뭔가 이상하지 않냐? 이런 게 운이라는 거야. 내가 잘 풀릴지 어쩔지 아직 모르지만.”
“....? 그게 뭔 개소리야, 새끼야?”
재수는 녀석의 말을 곱씹어 봤지만 당최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 아, 씨. 말하다 보니까 정리가 좀 안 되는데.. 하여튼 운이 중요하다 이거야. 넌 운이 좆도 없고.”
“미친놈. 코가 어떻게 된 게 아니라 머리가 어떻게 됐냐?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다 하고 있네.”
재수는 녀석의 말이 앞뒤도 없고 논리도 없어서 욕을 내뱉고 일어났지만 왠지 가슴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혼자 내무반을 향해 걸으면서도 녀석이 마치 자신의 과거를 꿰뚫어 본 것 같아 무척이나 불쾌했다. 자신이 훈련에 왜 이리 열심인지 알 턱이 없는 녀석에게서 이 귀중한 휴식시간에 무당 헛소리 같은 말을 들은 기분이 돼서 가래침을 한껏 모아 퉤 뱉어버렸다.
‘좆도 모르는 새끼가..’
재수가 입대 전날 술만 안 먹었어도, 그녀의 쪽지만 안 잃어버렸어도 녀석과 다른 동기들처럼 얼차려 받는 시간에 대충 엎어져 시간을 벌고, 어차피 또 돌 뺑뺑이를 매번 일등으로 들어와 동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도 않았을 터이다. 재수가 아무리 군대 상식이 제로라도 적당히 요령 피우는 게 군 생활 기초라는 정도는 알았다.
재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하늘이 내려 주신 여자를 친구들과 술 처먹느라 잃어버린 한심한 놈이었다. 그러니 어서 빨리 원상태로 되돌려야 할 지상 최대 과제가 있는데, 어떻게 몸 사리면서 그녀를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죄를 짓겠는가? 몸이 부서져라 훈련에 임해서 어서 빨리 그녀를 만나야 하는데 뭣도 모르는 새끼가 개소리하고 자빠졌다고 생각하며 내무반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화장로 가 담배를 빼어 물었다.
'근데 이 무겁고 답답한 심정은 뭐지? 왜 자꾸 녀석의 말이 따끔따끔 가슴을 찌르지?’
훈련병 생활도 막바지에 이르러 신병훈련 중 가장 힘들다는 야간행군이란 걸 앞둔 5월 어느 날 저녁, 조교는 내무반 바닥에 새 군화를 잔뜩 쏟아놓았다. 각자 자기 치수에 맞는 군화를 골라 신으라는 거였다. 재수는 진흙에 더럽혀지고 돌 부스러기 연병장에 구르느라 벗겨진 군화일지언정 이미 제 발에 길들여진 군화를 벗고 새 군화를 신고 행군한다는 게 왠지 꺼림칙하면서도 입학식 날 새 신발 선물 받는 기분이 들었다.
훈련병들은 조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르르 달려들어 군화 쟁탈전에 돌입했다. 밥숟가락도 모자라 고무줄로 팔에 묶고 자는 판국에 군화도 모자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재수도 얼른 그들 사이로 몸싸움하듯 파고들었다. 재수가 생각하기에 먼 길을 걷기엔 딱 맞는 군화보다 조금 큰 것이 유리할 거라 믿고 한 치수 높은 군화를 얼른 집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죽 냄새가 가시지 않은 군화를 머리맡 관물대에 부처님 모시듯 올려놓고 기도를 했다.
‘무사히 마치게 해 주소서. 나무아미타불.’
오월. 싸제라면 훈훈했을 계절에 교육대엔 밤이 되자 을씨년스럽게 진눈깨비가 날렸다.
‘근데, 또 이 부대가 행군하는 날이면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강풍이 불어 닥친다는 거 아니겠어? 겨울도 아닌데 눈도 오고 말이지.’
덕환이 입소 날 호송 버스 안에서 저주받은 땅이라며 한 말이 새삼 떠올랐다. 재수는 철모를 올리고 원망의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커먼 하늘에서 하얗게 흩날리는 진눈깨비가 얼굴 위에 차갑게 녹았다. 연병장에 도열한 까만 철모들 위로 하얀 눈 알갱이들은 부슬부슬 내려앉아 무심히 녹아 빗물처럼 흐르고 헬멧을 깊숙이 내려쓴 조교들은 어둠을 망토 삼아 저승사자처럼 훈련병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재수는 몸서리가 쳐졌다.
방독면까지 30Kg 넘는 완전 군장 차림으로 교육대를 나섰다. 시커먼 산 아래 도로만 가로등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어 천지가 캄캄했다. 그나마 앞으로 걸어야 할 도로라도 눈에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작은 야산 하나를 넘자 저 멀리 읍내에 네온이 반짝였다. 뒤돌아 본 삭막하고 살벌한 교육대 풍경과 대비돼 찬란했을까? 평소에 봤을 땐 초라하기 그지없는 마을이었건만 지금은 눈부시게 화려해 보여 잠시 서울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불과 한 달 반 떠나 있었을 뿐인데 마치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 ‘서울’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행렬은 우회로로 휘어지더니 이내 가파른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 정상까지 이어졌을 것만 같은 오르막길을 걸으며 재수는 작별하는 심정으로 네온 반짝이는 읍내를 돌아다봤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에서 군 생활을 할 군번임을 상기하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