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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09. 2021

바둑이와 나 1화

프롤로그

자고로 사람이나 짐승이나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 

‘개 팔자 상팔자’라는 말은 어느 날 힘든 육체노동을 하다 이웃집 개가 대낮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빠져 자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상대적 박탈감에 내뱉은 말이지 싶다. 

하지만 그 말은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는 말이다. 지금도 버려지고 갇히고 도살되는 개들이 많지만 내가 어렸을 적엔 거의 모든 개가 그랬다. 아예 트럭에 개장(개 우리)을 싣고 개를 '수집'하러 다니는 개장수도 흔했고 십여 년전만해도 골목마다 보신탕집이 한두 개식은 있었다. 개들은 동네 골목길에서 뛰어 놀다가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개장에 갇혀 도살장으로 끌려갈지 모를 위험 속에 살았다. 그러니 지금처럼 목줄을 매지 않고는 산책도 못하는 신세가 어쩌면 개들에게는 적어도 순식간에 고기 덩어리로 바뀌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팔자인 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같이 따듯한 안방에서 사람과 같은 시간에 취침하니 옛날처럼 밤에 집을 지킬 필요도 없고, 때 되면 밥이며 간식에 장난감까지 주어지니 먹고 살 걱정이 뭐가 있겠는가? 심심하면 공원으로, 카페로 외출도 하고 유행 따라 미용실가서 염색도 한다. 그뿐인가? 일상이 무료해질 때쯤이면 잠시 호텔로 휴가도 간다. 

다 공짜다. 돈을 쓸데가 없으니 벌 필요가 없다.         


옛날엔 여자 개들이 함부로 나다니다가 동네 불량한 사내 개들에게 겁탈을 당하는 일도 흔했다. 

밤이고 낮이고, 골목이고 들판이고, 누가 보든 말든, 말 그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요즘엔 감히 엉기지도 못한다. 아니, 성욕이 생기지 못하니 참을 필요가 없다. 편리하다. 


좁지만 따듯한 방에서만 사니 추위에 떨 필요 없고, 다양한 먹거리는 없어도 안전한 사료만 먹으니 식중독 걸려 거품 물 일도 없다.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도 받으니 혼자 골골하다 골목에서 쓸쓸히 쓰러져 죽을 일도 없고, 늙어 죽어도 자신보다 더 수명 긴 부모가 있어 든든하다. 

똥을 쌌는데도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고 치워주는 순수한 부모들이라 개로써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가끔 산책 나간 공원에서 만난 행복한 개들을 보면 나와 같이 뒹굴며 소년 시절을 보냈던 불쌍한 개‘들’이 떠오른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드문드문하지만 몇몇 사건은 머릿속에서 꽤 세밀하게 재생돼서 놀랍기도 하다. 그 시절이 내게 유독 선명한 건 그때가 행복해서인지, 아파서였는지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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