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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09. 2021

바둑이와 나 2화

1화. 바둑이 꼬붕 삼기

*기억의 의존한 글이므로 과장이나 구라가 섞여 있음.


양지마을.

볕이 잘 드는 마을이란 뜻의 이곳이 내가 소년기를 보낸 곳이다. 

강남 개발이 시작되기 전, 지금의 올림픽 도로가 된 뚝방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강과 마주하던 동네였다.       

국민학교 입학을 앞두고 난데없이 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건, 어느 폐가를 똥값에 인수하고 손수 나무와 벽돌로만 집을 지어 놓고는 곧 떼돈을 벌 거란 허무맹랑한 꿈을 꾼 우리 아버지의 허당기 때문이었다. 강남개발이란 고급 정보를 어디선가 주워들으시고는 뻔 한 사기꾼에게 당한 뻘 짓이었던 것이다.          

‘강남 8학군 때문이었다.’ ‘석탄 가루 휘날리던 수색의 산꼭대기 환경 때문이었다.’ 라는 그럴듯한 변명은 이사 한지 3년이 채 안 돼 땅 임자에게 쫓겨 날 때 들었다.  


실제로 70년대 수색동은 강원 탄광에서 수색역으로 싣고 오는 석탄과 그것을 가공하는 연탄 공장이 많아서 바람 많은 날 종일 나가 놀다 세수를 할라치면 세수 대야로 시커먼 구정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자식 키우는 환경이 어떻든 땅주인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건물 소유가 누구인지도 확인 안하고 사기꾼에게 속아 내 집처럼 다리 뻗고 주무신 우리 아버지 같은 허당에겐 세상은 얄짤 없었다. 

강남 개발이고 세발이고 간에 애초 그런 시류를 타는 건 ‘있는 집’이나 가능한 일이지 하루 벌어 하루 살았던 우리 집 같은 계층에겐 그저 여지없이 비껴가는 바람이라는 걸 성인이 돼서야 알았다.      


어쨌거나 우린 식구는 그런 실현 가능성 없는 이유로 처지에 맞지도 않은 강남하고도 청담동이란 대한민국 최고 부자 동네에 입성했고 마찬가지 이유로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가장 부자동네에서 가장 가난하게 사는 드라마가 시작됐다. 아버지의 허당기에 익숙한 우리 어머니야 이사 때부터 조마조마 했겠지만,  당시 나로서는 알바 아니었고 오직 잡초 무성한 넓은 마당을 갖게 된 것만으로 아버지를 존경하기로 했다.  

씨는 못 속인다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수색의 시커먼 골목과는 차원이 다른 공간에 서서 난 그 넓은 마당에 곧 시소와 그네, 뺑뺑이가 만들어지리란, 아버지 닮은 허무맹랑한 꿈을 꾸며 소년시절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3학년 어느 날. 

그때도 난 친구들을 상대로 내 넓은 마당을 홈그라운드 삼아 구슬치기로 라면땅과 알사탕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어? 바둑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탄성 같은 말을 내뱉었다. 

구슬 삑사리를 내고 약 오른 눈으로 돌아보니 그 누군가의 말대로 더할 거 뺄 거 없이 국어교과서에서 지금 막 튀어 나온 점박이 강아지가 대문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얼룩무늬에 늘씬한 몸매, 잘빠진 주둥이까지 완벽한 바둑이었다. 

꾀죄죄하게 엉겨 붙은 털에 퀭한 눈으로 우리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니 아마도 떠돌인 듯 했다.      

난 반사적으로 놈을 꼬시기 위해 혀를 굴렸다.      


“얼럴렁렁...” 

“얼럴렁렁..”      


친구들도 질세라 손짓, 발짓에 혀까지 굴렸지만 놈은 올 듯 말 듯 눈치만 볼 뿐 좀체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는 혀와 손, 발짓으론 안 되자 마침내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쭈쭈~~. 이거, 이거.” 

“야, 야. 췻췻!! 이거 봐봐, 이거.”      


누룽지며 강냉이, 튀밥, 알사탕 등 우린 주머니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꺼내 그 놈을 향해 흔들어 댔다. 놈을 자기만 따르는 꼬붕으로 만들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놈은 어찌나 도도하게 구는지 먹이를 주면 딱 그것만 먹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저 똥개 새끼” 

“배신자”       


그때마다 우린 배신감과 주머니 털린 허탈함에 앞 다퉈 욕을 해댔다.     

이후에도 그 놈은 잊을 만하면 나타났고, 우린 개한테 차였다는 수치심은 그새 싹 잊고 또 주머니 털리기 일쑤였다.      


“얼럴렁렁...” 

“얼럴렁렁...”     


그렇게 개 앞에서 인간이 재롱을 떠는 전쟁을 치른 지 며칠. 

난 내 최후의 무기, 사색 쫀드기로 드디어 기선을 제압하기에 이르렀다.      

아는가? 불량식품으로 ‘오인’돼 단속까지 떳지만 어른들도 술안주로 뜯었다는 그 사색 쫀드기? 

21세기인 지금 다시 부활해 문구점이나 편의점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그 쫀드기.      


역시, 쫀드기의 맛은 개도 알아봤다.   

도도하기 그지없던 놈도 친구들은 거들떠도 안보다가 내가 쫀드기를 꺼낼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개도 쫀드기를 좋아하는지 처음 알게 된 난 이후로 기선을 뺏기지 않으려고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피나도록 연마했고 친구들 주머니를 터는데 열을 올렸다.     


그렇게 완전히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믿었던 어느 날, 

나와 친구들과의 전쟁터에 핵폭탄이 하나 떨어짐으로써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우리 어머니가 뼈다귀 하나를 툭 던져준 것이다. 그것은 총으로 무장한 진지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만행과 다름없었다. 


개는 역시 개였다. 

놈이 어머니가 던진 뼈다귀 하나에 깨갱하며 무장해제하고는 우리의 라면땅과 쫀드기를 개무시하고 어머니의 완전한 꼬붕이 된지 얼마 안된 어느 날, 그 놈을 딱히 여기셨는지, 아니면 남은 음식물 처리가 곤란해서였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느 날부턴가 어머니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먹다 남은 밥과 국을 말아 던져 놨고 이놈은 종일 안 보이다가 신기하게도 밥 때에 맞춰 칼같이 등장하는 영특함으로 보답했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가 따라주시는 막걸리가 반가운건지 그 놈이 반가운 건지 모르겠지만, 놈을 쳐다보시는 눈길에 정이 담겨있음이 분명해서 이참에 저 놈을 아예 우리 식구로 만들 궁리를 하느라 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놈이 나타나는 밥 시간마다 나는 밥을 미리 덜다 어머니한테 등짝을 맞았고, 아무도 밥을 안 남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식구들 밥그릇에 시선을 꽂고 식사를 해야 했지만, 어머니는 솥단지를 긁다 시피해서라도 그 놈을 굶기진 않아서 그런 걱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역시, 집 없이 떠도는 놈이 딱했는지, 밥만 먹고 가는 것이 야속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머니가 종이 박스로 대충 개집을 만들어 마당 한 켠에 두었는데, 그걸 본 아버지는 남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박스를 발로 사뿐히 밟아버리고는 또 뚝딱하고 아주 근사한 집을 만들어 주셨다. 그때부터 놈은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비로소 잠까지 같이 자는 가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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