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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l 07. 2021

바둑이와 나 3화

바둑이 이름 짓기

*기억의 의존한 글이므로 과장이나 구라가 섞여 있음.


놈이 한 식구가 되는 동안 대빵인 어머니 다음, 명색이 중간 보스인 나는 실제로 한 게 하나도 없는 셈이 됐다. 놈에게 가오를 보이기 위한 궁리 끝에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바로 근사하고 창의적인 이름을 지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 당시 우리가 빼놓지 않고 보던 TV 외화시리즈 중엔 사람보다 영특한 개 ‘벤지’가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하얀 털이 눈까지 가린 그 작은 개(테리어와 무슨무슨 종이 섞인 잡종)는 사람보다 영특해서 스스로 문도 열고 위험에 처한 가족을 구하기도 했다. 나는 심지어 악당도 물리치는 그 개의 이름을 따서 ‘벤지’라는 이름을 강력히 밀었으나 놈의 털 모양이 얼룩이라는 이유와 머리털이 눈을 가리지 않았다는 결정적 이유로 탈락하고 말았다. 그 외에도 친구들이 제안한 쇠돌이, 훈이, 마루치 등 만화 주인공들이 경합을 벌였으나 친구 중 한 녀석이 엉뚱한 이의제기를 하는 바람에 진지한 토론은 혼란에 빠졌다.      


“야. 바둑이가 이름 아냐?”

“...? 이름이라고?”

“아니야. 그럼 진돗개가 이름이냐?”

“아닐 걸? 철수가 지어 준 이름일 걸?”     


우린 ‘바둑이’가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헷갈려 격론을 벌이다 동네에 ‘바둑이’ 흉내 내는 바둑인 많지만 이렇게 똑 닮은 바둑인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냥 바둑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바둑이’는 우리 바둑이를 세워 놓고 그린 거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더해져 내 창의력은 발휘도 못하고 내 중간 보스로써의 가오는 또 상하고 말았다.      


어쨌든 이름을 바둑이라 짓고 나니 우리 바둑이가 그렇게 자랑스럽고 잘 생겨 보일 수 없었다. 

지금이야 못생긴 개가 더 인기라지만 그땐 그딴 거 없었다. 

태초에 세상에는 세 종류의 개가 있는데, 바둑이와 진돗개, 그리고 불독이었다. 나머지 알아보지 못할 종이거나 못 생긴 개는 다 똥개인거다. 진돗개가 영리하니 불독이 싸움을 잘하느니 어쩌니 하는 건 다 헛소리였다. 개들을 대표해서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개는 바둑이 뿐이니까 우리 바둑이는 국가대표인 개 인거다.       


내가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생각마저 없지 않음을, 아니, 사람 말을 못 할뿐 지들끼리 통하는 언어가 따로 있음을 짐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떠돌이 바둑이를 우리 가족으로 거둔지 얼마 후부터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또 다른 떠돌이 개들이 하나씩 집으로 기어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바둑이가 외출해서 우리 어머니가 떠돌이 개들에게 인심 좋다고 떠들고 다닌 게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이었던 것이다. 떠돌이 개들이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은 지었지만 싫은 기색 없이 밥을 챙겨주셨다. 아버지는 조금 더 넓게, 더 많이 집을 지어 주셨다. 

한 달쯤 지났을 땐 그런 식으로 식구가 된 개들은 누런 놈, 시커먼 놈, 귀만 긴 놈, 눈만 겁나 큰 놈, 입이 늘어진 놈, 흰둥이 합해 일곱 마리가나 됐다.      


어머니가 놈들을 먹일 걱정하는 동안 난 그 놈들 이름 지을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바둑이 이름은 스스로 못 지어줬지만 나머지 놈들만큼은 내가 지어줌으로써 중간 보스 역할을 다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 놈 한 놈 들어 올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낸 결과 아주 만족스런 창의적 이름들이 탄생했다. 

누렁이, 까망이, 귀부리, 왕눈이, 심술이, 그리고 벤지.

제일 나중에 들어 온 흰둥이를 벤지라 지을 땐 머리를 쥐어 짤 필요가 없었다. 흰 머리털이 눈을 가린 게 TV의 벤지와 꼭 같았기 때문이다. 바둑이 이름 지을 때 내가 제안한 이름이 묵살 당한 설움을 비로소 푼 건 좋았지만, 사람보다 영특한 TV 속 영웅 개 이름을 따서 유일하고도 세련되게 영어 이름을 지어줬건만, 벤지 이놈은 영특은 개뿔, 누가 부르면 똥오줌 못 가리고 아무한테나 좋다고 달려들 만큼 제일 멍청하고 제일 까져서 나중엔 그냥 국산 흰둥이로 개명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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