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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ug 04. 2021

바둑이와 나 4화

세기의 실험

*기억의 의존한 글이므로 과장이나 구라가 섞여 있음.


넒은 마당에서 개들과 뒹굴며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짬밥’의 위력이다. 

처음엔 두 개의 찌그러진 냄비에 밥을 줬더니 바둑이만 혼자 먹고 다른 떨거지들은 그 작은 냄비 하나에 서로 비집고 주둥이를 들이대다 밥을 홀라당 엎고 지랄 난리였다. 딱한 나머지 어머니한테 처 맞으며 내가 멀쩡한 냄비를 하나를 더 줬더니 또 바둑이 혼자 먹고 세 놈씩 나뉘어 먹는 게 아닌가? 간혹 다른 떨거지 놈이 미친 척하고 바둑이 냄비에 주둥이를 대면 바둑이란 놈은 그냥 입 꼬리만 살짝 올리고 “크~~” 소리만 내주면 바로 “어이쿠!”하고 화들짝 놀라 자기가 먹던 냄비도 못 찾고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게 웃기고도 신기했다. 그니까 ‘짬밥’이란 단어만 몰랐을 뿐 그 의미는 이미 그 어린 나이에 깨달은 것이다.   

       

밥 먹이는 것만 아니라 씻기는 것도 일이었다. 누나는 이미 개들한테 질린 상태라 마당이 개판이라고 투덜대며 피해 다녔으니 씻기는 건 온전히 내 몫이 돼서 주말이면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마당에 있는 수도 호스로 놈들을 물에 적시고 한 놈씩 비누칠을 해가며 씻기다 보면 손모가지가 부러질 듯 아팠다. 그렇다고 농땡이를 피울 수도 없었다. 주로 집안에서 키우는 요즘과 달리 종일 흙바닥에 뒹굴고 잠자리를 쫓아 개천까지 첨벙대며 뛰어다니던 녀석들이었다. 그러니 일주일만 안 씻겨도 이발 저발 네발을 다 써가며 온 몸을 긁어대는 통에 내가 다 근질거리는데다 일곱 마리가 동시에 긁어대면 내가 정신이 없어서 차라리 씻기고 말 일이었다.       


그런 여름 어느 날이었다. 

친구네 집에서 TV를 보다가 영웅 강아지 ‘벤지’가 혼자 강을 헤엄쳐 건너는 것을 보고는 나와 친구들의 말씨름이 시작됐다. 저게 말이 되네, 안 되네, 저 밑에 잠수함이 떠받들고 있네, 아니네 하는, 참으로 애들다운 논쟁이었다.     


“야, 그럼 실험 해봐. 우리 집 개 데리고 한강 가자고.”     


쪽수에 밀린 내가 꺼낸 카드였다. 

앞의 논쟁은 애들 중 나만 개를 키우다 보니 개편에 서서 근거도 없이 박박 우긴 거였다면 내가 내민 카드는 부잣집 애들에게 지기 싫어서 쓸데없이 판을 키운 도박 카드였다.   

그러니 애들이 동의하는 순간 후회할 수밖에.


하는 수 없었다. 일단 대빵 바둑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왠지 짬밥이 많으니 수영도 잘 하지 않을까 하는, 역시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한강으로 가는 동안 괜한 고집 때문에 생각하기도 싫은 비극이 생길까 겁이 나서 딴청을 하며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그럴 때마다 애들의 의심어린 눈총을 받았다. 평소엔 파랗던 한강이 그날따라 시퍼렇게 보였다. 그 노무 한강 홍수 경보는 여름이면 툭하고 울리더니 그날따라 하늘은 너무 맑았다. 

기어이 실험은 시작됐고 물 앞에서 바둑이를 보니 불안은 확신이 됐다. 뭐가 그리 급한지 일치감치 물속에 몸을 담근 친구들이 바둑이를 아무리 꼬셔도 이놈이 들어갈 듯 말 듯 발만 담그다가 파도가 치면 화들짝 놀라 나오고를 반복할 뿐 도통 들어 갈 생각을 안 하는 게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그때 이미 친구들은 어정쩡한 내 태도에 의심을 잔뜩 품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밀리면 한동안 부잣집 놈들에게 바둑이와 싸잡혀 겁쟁이 취급을 당할 게 뻔했다. 

다시 한 번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수영을 잘은 못해도 이까짓 개 한 마리를 못 구하겠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둑이를 안아들고는 바위로 올라갔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너는 내가 구한다.’라는 다짐과 함께 눈을 질끈 감고 바둑이를 끌어안은 채 한강으로 투신했다.      


그리고.. 

내가 바둑이를 구할 거라는 다짐은 물속에서 잠깐 동안 뽀글뽀글 내가 낸 거품도 보고 물을 좀 마셨더니 거품처럼 사라졌다. 바둑이고 나발이고 일단 나부터 살자고 막 개헤엄을 쳐 수면위로 겨우 머리를 뺐다.       


그런데..     

‘우와~’

‘야, 조오련보다 빨라!’


친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두리번대는 내 눈에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나와 달리 날 버리고 혼자 유유히 강가로 빠져 나가는 바둑이가 들어왔다. 안도감과 배신감이 한꺼번에 들었다. 가오 상하게 끝까지 개헤엄을 쳐서 간신히 강가로 기어 나왔을 땐 바둑이가 안쓰러운 눈으로 기진맥진한 나를 핥아줬다.    


그 날 우리가 내린 결론은 명백했다.       


‘개는 수영 존나 잘 한다.’      

 

난 그날 저녁, 떨거지들에게는 먹다 남은 밥찌꺼기를, 바둑이에게는 특식을 내렸다. 

바로 새로 나온 형광색 쫀디기. 그건 나도 자주 못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강에서 세기의 실험이 있던 그날, 개의 본능적 수영 실력을 발견한 것 말고 난 또 하나의 위대한 발견을 했다. 바로 주말 노동을 단축할 방법이었다.. 


돌아온 일요일. 

난 수도꼭지 달린 호스를 발로 차버리고 달랑 비누 하나만 들고 ‘개치기 소년’이 되어 일곱 마리의 개를 이끌고 한강으로 향했다. 녀석들을 몽땅 다 한강에 투신시킨 후 나오는 순서대로 비누칠을 한 다음 다시 몽땅 다 던져 버리겠다는 내 천재적 발상에 감탄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내 휘파람 소리에 녀석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폴짝 폴짝 뛰며 벌판을 뛰어다녔다. 녀석들은 곧 자신들에게 닥칠 강제 입수라는 참사는 모르고 나와 눈만 마주치면 혀를 내밀고 헤헤 웃길래 한 편으론 좀 미안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진짜 참사가 될 줄 몰랐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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