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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Sep 10. 2021

바둑이와 나 5화

대참사

*기억의 의존한 글이므로 과장이나 구라가 섞여 있음.


한 여름, 한강변에 개들을 풀어 놓자 놈들은 살판났다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녀석들 중엔 비싼 자라를 자갈과 용케 구별해 잡아내는 기특한 놈도 있어 내게 특식을 하사받았다. 그땐 자라만 잡아 파는 장사꾼이 있어서 그날은 부수입까지 생긴 운수 좋은 날이었는데.. 

문제는 당초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일단 두 어 마리를 한강에 던져 놓고 대빵 바둑이를 던지려는데, 이놈이 앞서 입수당한 놈들의 비참한 꼴을 본 후라 그런지 요리조리 피해만 다니고 당최 잡히질 않는 거였다. 기를 쓰고 쫒아 가면 멀리도 안가고 약 올리듯 주위만 뱅뱅 돌고, 난 놈을 잡겠다고 달리기도 걷기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쫓아가다 미끄러운 자갈에 연신 자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이를 갈며 쫓아가면 미꾸라지 마냥 손아귀를 빠져나가고는 혓바닥을 내밀고 헤헤거리며 실실 쪼개는 걸 보니 내가 지 놈이랑 놀자는 줄로 착각한 게 분명했다. 괘씸했다. 떨거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신이 나서 나를 쫓고 나는 바둑이를 쫓고, 뱅글뱅글 누가 누구를 쫓는지 모르게 놈들과 나는 한 묶음으로 훤한 대낮, 한강변 한복판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혹시 도망가는 개 잡아 봤는가? 강아지도 상관없다. 인간이 아무리 빨라도 막다른 골목 아니면 절대 잡을 수 없다. 허리를 그 높이로 하고 개만큼 빠른 인간이면 서서는 100미터를 5초에 뛸 거다.     


어쨌든, 한 여름에 한바탕 미친 짓을 하고나니 지치기도 해서 뛰어서 잡는 건 포기하기로 하고 또 한 번 비장의 무기를 꺼내기로 했다. 바로 형광색 쫀디기. 우리 바둑이가 환장하는 간식이다. 사실 난 빈털터리였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먹을 줘 불룩하게 만들고 얼렁렁 혀를 굴리자 놈은 미친 듯이 달려왔다. 매번 속으면서도 또 속는 걸 보면 개는 개가 맞았다. 비겁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놈이 오자마자 뒷덜미를 딱 잡고는 냅다 한강에 던져버렸다. 그렇게 바둑이는 개 주제에 감히 주인을 희롱한 죄로 떨거지들보다 두 배는 멀리 날아가 강물에 꽂혀버렸다.      


‘으키킥..’      


통쾌한 복수를 하고 키득댄 것도 잠시. 가만 보니 이놈이 막 헤엄쳐 나오기는 하는데 겁을 먹었는지, 놀랐는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더구나 이놈이 내 쪽을 피해 딴 데로 가고 있었다. 내가 녀석이 나가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나를 외면한 채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난 번 실험때는 같이 입수했지만 지금은 혼자 내동댕이 처져서 억울했을까?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난데? 설마하며 녀석에게 두 팔을 벌리고 다가섰다. 그러나 놈은 물밖으로 나오자마자 엉뚱한 방향으로 냅다 뛰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한 속도로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아! 저거 안 되는데. 굴다리로 가야 되는데.’     


아주 불길한 예감이 번개처럼 스치자 나도 미친 듯이 뛰었다. 찰나라도 녀석이 시야에서 벗어날까 두 눈 부릅뜨고 전력질주를 했건만 나와의 거리는 오히려 점점 멀어지더니 예감대로 녀석은 가파른 시멘트 둑을 질주하듯 올라타기 시작했다.       


‘아! 거긴 찻길인데. 서울에서 젤 빠른 도론데.’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바둑이가 오르기 시작한 둑 밑까지 가서 뒤를 쫓는 건 녀석과의 거리가 더 멀어지는 의미 없는 짓거리 같아서 난 미리 둑을 타기 시작했다. 시야에서라도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손을 두 발처럼 써가며 둑을 올랐지만 바둑이가 둑 너머로 사라지는 건 단 몇 초가 지나지 않았다. 내 시야에서 녀석이 툭 사라지자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난 엉금엉금 둑을 기어오르며 하나님을 찾았다. 바둑이에게 단 몇 초 동안 차들 사이로 귀신같이 빠져 나갈 신통력을 주시기를 빌었다. 놀이터처럼 오르내리던 뚝방이 그새 몇 백 미터는 늘어난 것 같았다. 혹시 도로에서 ‘끼익’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날까 온 신경을 귀에 몰아놓고 기어오르는 그 시간이 까마득히 느껴졌다. 다행히 둑 위에 올라 도로를 살필 때까지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아 겨우 가슴을 쓸어내리고 턱까지 찬 숨을 골랐다. 녀석이 용케 빠져 나갔나보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데, 반대편 도로가에 허연 물체가 깜빡깜빡 했다. 쉭쉭쉭. 연달아 붙인 사진 같기도 하고 툭툭 끊어 붙인 그림 같기도 했지만 물체에 붙어있는 털이 이러 저리 나부끼는 걸 보면 도로에 아무렇게나 널려 나부끼는 비닐봉다리 따위가 아니었다.

      

‘이런!!’      


쇠꼬챙이에 찔린 듯 명치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 눈앞이 하얬다가 깜깜했다가 그랬다. 차 소리가 웅웅거리는 걸 봐선 귀도 멍해진 것 같았다. 동물이 아니길 빌면서 눈을 부릅떴지만 이미 터져버린 눈물이 자꾸 시야를 가려서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내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뿌연 시야와 흙먼지, 쉴 새 없이 달리는 차들 사이로 하얀 그 물체는 작지만 분명한 부피감으로, 띄엄띄엄 점박이 털로, 아닐 거라고 자꾸 설득 중인 나에게 이젠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꼼짝없이 누운 채 건너편에서 제 체온을 전하고 있던 것이다.  

맥이 탁 풀려 주저앉았다. 주저앉으니 그제야 슁슁 차들이 내는 굉음이 다시 요란해졌다. 내 옆에는 떨거지들이 차들이 내는 바람소리에 놀라 우왕좌왕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죽었겠지? 아냐, 살았을지도 몰라.’      


뜬금없게도 아직 살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살아있다면,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면 빨리 살려야 했다. 조급해지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떨거지들은 데리고 이 무시무시한 도로를 건너기는 불가능해서 다시 오른 길을 굴러 내려갔다. 그리고 굴다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굴다리에 들어서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지며 공포가 엄습했다. 이곳이 내가 수백 번 드나들던 그 굴다리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낯선 적막에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상상했던 소름끼치는 소리가 안 들렸다고 깜빡 기도를 멈춘 나를 원망했다. 요리조리 잘 피해 건너다 마지막 순간에, 내가 기도를 멈춘 그 순간에 재수 없게 시커먼 자동차에 부딪치는 끔찍한 장면이 그려졌다. 그래서  이번엔 필사적으로 기도했다. 제발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바둑이에게도 아직 살아있다면 조금만 더 버티라고. 제발 죽지 말라고..     


굴다리를 건너 반대편 둑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왔을 땐 다리가 완전히 풀려버렸다. 아직 먼 거리에 있는 그 물체에게 가기로 할 땐, 희한하게 바둑이가 아닐 거란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먼발치에서도 바둑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앞에 다다랐을 때, 나도 모르게 그 물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만 살폈다. 허옇게 눈을 뒤집고 거품을 문 채 꼼짝없는 우리 바둑이가 육중한 철 덩어리들이 몰아내는 바람에 털만 이리저리 가볍게 휩쓸리고 있을 뿐이라 하도 가여워 눈물만 흘릴 뿐, 감히 만지지도 못하고 엎드린 채 가만히 지켜본 것이 전부였다.      


‘죽었구나.’     


태어나 처음 마주한 죽음의 실체가 실감나지도 않는데다, 그깟 목욕시키는 게 싫어 한강에 집어 던진 내가 저지른 결과라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수용 한계를 벗어난 죄책감은 불쌍하게 죽은 바둑이를 눈앞에 두고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떨거지들이 바둑이에게 코를 들이밀고 킁킁대는 모습이 참으로 무심해보였다. 낮잠을 자는 거라면 평소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댈 텐데, 그럼 떨거지들은 기겁을 하고 줄행랑을 칠 텐데, 바둑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런 바둑이도 무섭고 무심히 흐르는 한강도 무서워져 난데없이 한 여름에 오한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흘렀다. 아까 바둑이와 함께 집을 나설 때가 스쳤다. 뒤를 이어 종졸 쫓아오는 떨거지들도 스쳤다. 한강에 오는 동안 여치와 개구리를 쫓아 해찰하던 바둑이가 보이더니 이내 한강이 보이고 어느 시간엔가 바둑이가 차에 치여 나가떨어지는 순간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바둑이와 나 사이로 적막한 시간이 흘렀다. 그때 그곳엔 여전히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차들이 스치고 있었고, 떨거지들이 짖고 있었지만, 바둑이와 나에겐 분명 다른 시간이 흘렀다. 뜨거운 해가 한남동을 붉게 물들이며  시들어 갈 때, 흐린 시야를 뚫고 문득 바둑이의 허연 배가 희미하게 들쑥날쑥 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잘못 본 건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 무작정 들쳐 안고 뛰었다.  

일단 뛰면서 팔에 신경을 집중하니 바둑이의 심장고동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때부턴 일부러 소리 내어 울었다. 사방은 허허벌판이었지만 아무라도 내 울음소릴 듣고 도와주길 바랐던 것이다. 들판을 지나 저 멀리 동네가 보일 땐 거의 악을 쓰느라 비명과 같은 울음이 돼버렸다. 그 와중에 내 울음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다리는 풀리고 몸은 휘청거렸지만 두 팔에 전해지는 우리 바둑이의 체온이 나를 뛰고 또 뛰게 했다. 아직 초저녁인데 눈앞에 별이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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