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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13. 2023

학군지에서 나답게 사는 법

1년 전입니다. 자유로운 지방 신도시에서 살다가 서울 '학군지'라 불리는 곳으로, 그것도 애매한 중학교 중학년 나이에  아이가 전학을 왔어요. 엊그제도 온라인 카페에 '학군지로 이사를 가야 할까요' 고민하는 글이 올라오는 걸 보니 참 이 고민은 아무리 해가 바뀌고, 부모 세대가 달라져도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학교 생활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서 이제는 여러모로 아이가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안방으로 슬그머니 들어온 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했어요. 이곳에 와서 분명히 배운 것도 많은데 힘든 점도 많다고요. 전에 다니던 학교와 달리 선생님들이 너무나 성적을 강조하고 대부분의 활동이 평가와 직결되고, 또 그 평가를 잘 받는 게 아이들이 지닌 유일무이한 목표처럼 보이는 게 가끔 답답하다고요.


"엄마, 여기도 좋아. 나쁘다는 건 아니야.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들도 잘 가르치고 좋은 분도 많아. 그런데 좀 달라. 예전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다양했거든. 배울 점이 각기 달랐어. 아, 쟤는 운동 좋아해서 체육관에서 사는 애지, 쟤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의로운 면을 배울 만해, 그리고 쟤는 학원 다니는 게 싫은데 성적 떨어지면 엄마가 학원 보낸다고 했다며 인강이나 앱 보고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지(그 애가 전교 1등이었어요.), 또 얘는 친구들하고 있을 때 배려를 되게 잘해주고 친구들하고 잘 놀아서 보기 좋아, 이런 게 있었어.


그런데 여기 오니까 애들이 생활이 거의 다 똑같아. 오직 학원, 학교, 스카, 그렇게 뺑뺑이야. 나처럼 운동 학원 다니는 애도 잘 없어. 우린 아직 중학생인데 말이지. 뭐랄까, 전반적으로 생활만 똑같은 게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별로 없어 보여."


실제로 아이가 주짓수 학원과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니, 친구들이 '너 체고 준비하는 거냐'고 물었다는군요.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이런 데 시간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어요.


"엄마, 그 애들이라고 처음부터 개성이 없었던 건 아닐 거잖아.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아마 그 개성이 깎인 거 아닐까? 나처럼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아이들도 만나기 어려워.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바쁜데 머리 아프게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살기 싫다고 해.


이런 분위기에서 살다 보니 1년 사이에 내가 좀 변하기도 했어. 나도 예전처럼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을 안 갖게 되는 것 같아. 나만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게 싫거든. 무의식 중에 애들과 비슷해지려고 하나 봐. 그런데 엄마, 겨우 1년 살고 이렇게 내가 변했는데 여기서 3년을 더 살면, 그러면 말이야, 내가 어떻게 될까? 나는 없어지는 거 아닐까?"


자못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아이를 보니 그간 표면적으로 잘 지내는 것만 보고 아이의 복잡한 마음을 몰랐던 듯해서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더 아득한 기분이 들었던 건, 저 또한 초중등 12년을 서울 학군지에 살면서 아이랑 비슷한 생각을 했던 과거가 있다는 거예요.


아이들일수록 어른의 특권의식을 어쭙잖게 배워서 더 날것으로 드러내요. 저는 초등학교 때가 가장 심했어요. 내 부모가 사회적으로 대단한 계층에 속하지 않은 것 때문에 왜 내가 미묘하게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어린 마음에도 뭔가 억울하고 답답했어요.


그때만 해도 '육성회'라는 학부모 단체가 있었는데 육성회비를 내는 학부모는 학교에서 특별대우해주는 분위기였고, 그들의 자녀 또한 선생님이 각별하게 챙겨주는 게 빤히 보였지요.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이 사립학교 교장이 부유층 부모에게만 친절한 걸 지켜보며 환멸을 느꼈던 것처럼, 아무 위화감 없이 학교에 섞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돈과 성적, 지위가 떠받들어지는 분위기가 학교와 동네 여기저기에서 일찌감치 감지가 됐고,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어요.


분명 책에서 배운 세상은 좀 더 이상적이고 건실하며 사랑, 우정, 연대, 존중 등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더 값지다고 하는데 왜 현실은 그렇지 않은지,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늘 이방인처럼 겉돈 채 살았던 것 같아요.

핀란드 교육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아이가 느끼는 답답함의 결은 저와 좀 달랐지만 '이방인'같다는 말이 너무 다가와서 뭐라고 답해 줘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더군요. 하지만 제가 예전에 부모 교육받으면서 배운 게 있다면, 막막한 순간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게 제일 좋은 답이란 거예요.


"네가 말하는 게 어떤 답답함인지 알 것 같아. 엄마도 그랬거든. 어릴 때 엄마 사는 동네도 나한테 그렇게 따듯하거나 편안하지는 않았어. 친구들 보면서도 그렇고, 선생님들한테도 그렇고, 왜 저렇게 생각하지? 왜 저렇게 말하지? 분명히 이게 옳은데, 이게 바른데, 왜 저렇게 이기적이어야 하지? 왜 저렇게 다 똑같아야 하지? 답답할 때가 자주 있었어.


음, 사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조금 막연하기는 해. 나도 그 나이에 답을 찾았던 건 아니라서. 학창 시절에는 그냥 참고 힘들게 보냈지, 답을 찾지는 못했어. 그래서 난 대학 가서 너무 좋더라고. 대학 가니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가 품었던 여러 의문들에 대한 답도 찾게 되고. 책도 보고, 동아리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학창 시절 나를 따라다닌 고민들이 많이 정리가 되어서 좋았어. 물론 청춘은 청춘대로 또 힘들기도 했지만 적어도 10대보다는 20대가 훨씬 좋더라고."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더 무거운 얼굴로 물었어요. 나는 대학 가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나답게 살고 싶다고. 그런데 한국의 제도 교육 하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바람을 이루기가 어려워 보인다고요. 더구나 성적이 너무나 중요한 이 동네에 살면서 그런 이상을 혼자 고집하기도 힘들다고요. 훌쩍 유학을 가거나, 학교를 그만두거나, 갑자기 대안학교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맞아, 실제로 유학 가서 만족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긴 해.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때 간 애들은 한국에 다시 안 오려고 하더라. 그래서 아예 아빠가 해외로 이직한 것도 봤어. 그런데 훌쩍 유학 가기는... 우리 상황에서 여러모로 쉽진 않네. 지금 내가 너에게 정답을 딱 제시해 주기엔, 터놓고 말하면 나도 어렵다. 다만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엄마는 너의 마음이 뭔지 이해한다는 거, 그리고 네가 차후에 어떤 결정을 하든 지지해 줄 거라는 거야.


혹시 예전에 살던 동네로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면 돼. 학교 그만두고 검정고시 준비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대안학교를 가고 싶으면 같이 알아보자. 학교를 몇 년 쉬고 싶으면 그것도 좋아. 너희 때는 수명이 최소 120년이라는데 1-2년 남들보다 늦어지는 게 대수인가. 아빠는 생각이 다를지 모르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괜찮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한국의 입시제도, 교육제도에 너무나 만족하는 분들도 있을까요? 많지는 않으실 거예요. 한국 교육이 완전무결하다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렇게 많은 기사, 논문, 책이 쏟아져 나오진 않을 테지요. 우리 아동 4명 중 1명이 불행감을 느끼고,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로 드러나지도 않겠지요. 아이들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선으로 배우다 못해 약자를 혐오하는 것까지 배우지도 않을 거고요. 얼마 전 세칭 명문대생들이 같은 학교 지방 캠퍼스 학생들을 대놓고 배척하고 조롱하는 뉴스를 보며 김누리 교수님이 말한 '미성숙한 엘리트'가 이런 건가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상생과 협력보다는 경쟁을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게 저는 탐탁지 않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를 보면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적 이익을 멀리하고 사회 공동체의 풍요를 추구하는 걸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가치로 가르쳐요. 실제로 뉴기니에서 어린 자식을 데리고 살던 서양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다른 학생들 방식에 적응학기 힘들어했다고 해요.


뉴기니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배웠던 협동과 공유의 정신을 멀리한 채, 경쟁에서 이기고 혼자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애쓴다거나, 동급생들보다 먼저 기회와 이득을 취하려고 할 때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해요.


우리는 전통사회에서 이미 너무 멀어졌고 뉴기니 아이들이 아니니까 이런 이야기는 무의미한 걸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아이들 삶의 만족도가 월등히 높은 북유럽에서는 능력자를 선별하고 우대하는 것보다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교육받고 자신의 적성에 따라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공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가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바가 보이지 않을 때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듯이, 다른 사회에 우리를 비춰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전통사회가 우리랑 멀어졌다고 해도,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말했듯이 우리는 1만 1천 년 전, 농업이 도래하기 전까지 전 세계인이 수렵채집인이었고, 5,400년까지 누구도 국가 정부 하에 살지 않았잖아요. 오랫동안 누적된, 전통적인 공동체에서 얻은 교육 경험과 가치를 소홀히 취급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부족한 바는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거예요. 북유럽 또한 우리와 다른 사회지만 현재 우리가 놓치고 있는 바를 많이 시사하고 있어 참고할 만하고요.


물론 이런 글을 쓰면서도 제 한계를 느낍니다. 이렇게 입바른 소리를 한들, 한국의 학부모로 살면서 제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갑자기 교육 환경을 바꿔줄 수도 없고, 학교 현장의 문제점을 목격한들 저 혼자 뭐 어쩌겠나 싶습니다. 아이보다 더 앞서서 한국 교육이 지닌 여러 문제에 환멸을 느끼지만, 어쨌거나 저와 아이는 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걸요. 아이에게 하소연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고, 뭔가 부모로서 무력감도 느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아이가 갑자기 밝은 얼굴로 말했어요.


"엄마, 나 요즘 수학이 다시 좋아지려고 해."


아이가 학군지 와서 제일 애먹은 과목이 수학입니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줄곧 상위권이었고, 아이가 자신은 이과인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였는데, 다른 과목과 달리 수학만큼은 전학 온 다음에 원래 궤도를 회복하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어요. 아이 말로는 문제가 다섯 배쯤 어렵다고 해요.

처음에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던 점수에 아이가 큰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지요. 이후에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차츰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에게는 수학이 제일 애증의 대상이 되는 과목입니다. 분명히 한때 좋아했고 꽤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이곳에 오니 수학 열등생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낙담하게 되는 거지요.


"학원도, 과외도 안 하고 혼자 하면서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좀 걱정됐거든? 그런데 혼자 하니까, 어떤 부담이나 쫓기는 마음 없이 한 문제를 갖고 오래 고민하게 되더라고. 숙제로 문제를 풀다 보면, 안 풀리는 문제를 만나면 초조해져. 빨리 숙제해야 하는데 한 문제 갖고 시간 끄는 게 화가 나고, 빨리빨리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실망스럽고 그랬거든.


그런데 혼자 하니까 그럴 걱정이 없어졌어. 한 문제 갖고 오래 고민하다가 갑자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이 번뜩이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 희열이 정말 정말 커. 그러고 나니까 기억났어. 아, 내가 이래서 수학을 좋아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재밌으니까 많이 풀게 되어서 막상 양을 비교해 보면 학원 다닐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안 나. 신기하지?"


활짝 웃는 아이를 보며 내가 아이 고민에 답을 못 찾아준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성적 압박이 심한 학교생활을 하더라도 아이는 제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아서 잘 살 것 같습니다. 단 부모의 이해와 협조는 필요하겠지요. 격려도요.


"와, 대단하다! 그게 진짜 공부지. 뇌 과학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그거야.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집중할 때 뇌의 온갖 시냅스가 연결되면서 머리가 좋아지고 역량이 상승하는 거래."

"그치? 그런데 엄마,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다음 시험을 잘 볼지는 알 수 없긴 해. 점수 나쁘면 또 수학이 싫어질까 걱정도 되고."

"다음 시험? 다음 시험 같은 거 걱정하지 말고 그냥 너의 속도대로 해. 네가 지금 익히는 이 공부 습관이 당장의 눈앞의 시험보다 열 배는 중요해. 중학교 성적 아무것도 아니야. 네 나이에 배워야 할 건 바로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야. 점수 몇 점보다 너는 네 인생에서 훨씬 더 중요한 자양분을 만들어가는 거야. 아주 잘하고 있어."


폭풍 칭찬에 아이도 흡족했는지 빙그레 웃었습니다.


학군지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사는 것.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경쟁적인 분위기와 주변의 시선과 평가, 이런 것에 나도 아이도 휘둘리기 시작하면 한없이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고요. 이방인 같은 내 모습이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상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고, 그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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