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애는 고등학생이지만 '취미로' 배구를 배웁니다. 이 나이에 사실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았어요.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또래 애들이 많이 다니는 배구 센터가 있더라고요. 다들 체대 준비하는 건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국제학교 애들은 배구가 필수래서 많이들 온대요. 그래서 주말마다 가서 땀을 흠뻑 흘리고 옵니다.
시작한 지 오래 안 됐는데 코치님이 같은 취미반이지만, 좀더 실력이 높은 애들이 들어가는 팀으로 옮기기를 추천했어요. 아마추어지만 정기적으로 경기도 뛴다고 하는데 아이가 가고 싶어 해서 반을 옮겼어요. 거기에는 몇 년씩 한 애들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본격적으로 (배구는 아닐지라도)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합니다.
잔뜩 들떠서 첫날 수업을 갔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늘 체육 에이스였고, 어느 체육 센터를 가든 잘한다 소리만 듣던 아이가 표정이 안 좋은 채 왔더군요. 체육에 관해서는 못해 본 적이 없던 애였는데 첫날 경기에서 엉망이었대요. 수준 차이를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몇 년간 뛴 애들하고 차이 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위로해 줬지만 시무룩해 있었어요.
하루 정도 풀 죽어 있던 아이가 며칠 뒤에 생일 선물을 미리 당겨서 배구공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본인이 고른 공을 주문하고서 아이가 말하더군요.
"엄마, 난 항상 운동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 그런데 사실은... 운동은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어. 어릴 때부터 했던 여러 운동들... 수영, 발레, 주짓수, 농구, 배구... 언제나 다 어려웠어. 처음부터 쉬웠던 운동은 없어. 운동은 처음에는 반드시 나를 지치게 하고, 해봤자 안 될 거 같은 그런 느낌을 줘.
그런데 신기한 건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잘하게 되어 있어. 사실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어. 특히 경기는 그게 심해. 그냥 내가 뛰어봐야 해.
아무리 선생님이 있어도 경기 중에 생기는 그 수많은 변수를 일일이 미리 가르쳐 줄 수는 없거든. 뭐랄까, 왜 사자가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고 연습시킨다잖아? 그런 것처럼 그냥 내가 부딪혀야 해. 아프고 힘들고, 그래서 때론 상처받고 기죽어도.
사실 코치님이 나를 잘한다고 상위반으로 데려갔는데 그날 잘 못해서 너무 속상했거든. 한참 우울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운동이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연습을 안 하고 잘하게 된 적이 있었던가? 못하면 연습하면 되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제 배구공 오면 아침에 학교 일찍 가서 연습하려고."
누군가는 저에게 아이가 고등학생이라 가뜩이나 시간 없는데 운동을 왜 하게 두냐고 묻습니다. 당장 가까운 남편부터 주말마다 라이딩까지 해가며 배구센터에 보내는 걸 이해하지 못해서 내내 못 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공부도 곧잘 하니까 거기에 더 집중하길 바라면서요.
글쎄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면 시간 낭비일지 모르겠습니다. 어쩔 때는 저도 이게 맞는 건가 불안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듣자니, 인생에서 이만큼 중요한 걸 배우고 있는데 이게 왜 시간낭비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의 말에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운동'이라고 말한 걸 '글쓰기'라고 바꿔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저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무언가를 읽고 쓸 때가 가장 행복하지만, 그 제일 좋은 글쓰기가 저를 최고로 괴롭게 만듭니다.
분명히 꽤 멋진 에피소드였는데 그 무형의 시공간과 대화를 글자로 내려 앉히고 보니 어째 볼품없이 변해 있습니다. 이번 원고는 출판사들의 감탄을 자아낼 거라고 혼자 기대에 부풀었는데 기껏 보낸 투고 메일에 답장도 안 와요.
남들 글에는 드라마틱하고 새로운 에피소드가 가득한데 이렇다 할 극적 반전 따위 없는 평범한 주부의 일상으로 뭘 쓸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새롭게 기획안을 짜 보고 원고를 쓰다가도 이게 과연 책으로 나올지 어떨지 아무런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계속 쓰는 게 어느 순간 지칩니다.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어."
아이의 말을 곱씹어 봅니다. 글쓰기가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수없이 고치지 않고 좋은 글이 단박에 나온 적이 있었던가? 출간은 고사하고 바로 어제 있었던 일로 에세이를 쓴다 한들, 완성도 있는 한 편으로 만드는 게 한 번이라도 수월했던 적이 있던가?
아무리 책을 냈어도 글쓰기 근력을 꾸준히 키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고요. 바쁜 일상에 치여 한동안 글을 쓰지 않으면 거짓말처럼 단어도 생각이 안 나고 한 문단을 완성하는 데에도 애를 먹어서 전업작가가 맞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 지경이었어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으로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에 주어지는 비프 메세나 상을 받은 김보람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다큐멘터리 영화는 장르의 특성상 찍으면서도 "이게 과연 한 편의 영화가 될까?" 촬영하는 내내 회의가 들고 혼란스럽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거지요. 에세이도 내 인생의 작은 다큐멘터리라고 했을 때 한 편의 글로 완성하기까지, 한 권의 책으로 나올 때까지 이게 작품이 될지 안 될지 알 수가 없어요.
아이는 경기를 뛰기 전에는 무릎이 덜덜 떨릴 만큼 긴장하지만 일단 코트에 서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공에 집중한다고 해요. 그 몰입감이 주는 희열이 엄청나서 운동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경기가 끝난 다음에야 사람들의 환호가 들리고 박수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그 모든 이야기가 글쓰기에 적용됩니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불 꺼진 방에서 책상 모서리를 만지듯이 원고 안에서 뭘 써야 할지 헤매다가 어느 순간 주제가 명료해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갑자기 불이 켜진 것처럼 원고 안에 쭉 뻗은 길이 보여요. 정신없이 그 길을 달려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그제야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웅웅 거리는 부엌의 냉장고 소리가 들리고 반쯤 열린 창문에서 밤바람이 차갑게 들어오고 있다는 걸 깨달아요.
출간을 제안하는 출판사의 회신이 오거나 독자들이 리뷰와 댓글을 통해 열렬히 응원해 주는 것도 더없이 기쁘지만, 한 편의 글을 완성한 다음 비로소 고개를 들어 내가 부엌 식탁에 앉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주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고요한 희열에 잠깁니다. 한 번도 쉬웠던 적 없는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