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혼자서 한강 작가 책 홍보대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일부러 책 표지를 보이게 번쩍 들고 읽습니다. 어차피 제가 홍보 안 해도 책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강 작가 작품을 읽는 열풍이 불고 있지만, 노벨상 수상 이전에도 좋아하는 작가님이었기에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요.
저는 이 책을 8년 전에 이미 독서모임에서 읽었었거든요. 그때도 매우 인상적이었지요. 아무튼 시키는 사람도 없지만 혼자 지하철 홍보대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채식주의자>를 읽고 있으려니 맞은편에 앉은 아주머니 두 분께서 흘끔흘끔 보며 뭐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채식주의자> 내용이 충격적이고, 불편하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SNS에서 책 좀 읽었다는 분들의 리뷰에서도 가끔 형부와 처제 불륜 운운하며 이 작품이 패륜을 은근히 미화했다는 식으로 봐서 당혹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영혜의 남편은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 정신병 걸린 아내 때문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며 안타까워하는 분까지 있더군요.
이 작품은 주인공 영혜의 목소리가 직접 드러나지 않습니다. 남편, 형부, 언니에 의해 관찰된 영혜만 나옵니다. 작가가 굳이 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 이유가 있겠지요. 소설에서 "시점"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학적 장치라고 우린 이미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다 배웠는데, 이런 작가의 의도를 한번 고민도 안 하면서 읽는 게 일단 의아했습니다.
화제가 된 8년 전 타일러의 영상에서, 타일러는 남편을 두고 "역지사지가 하나도 안 되는 사람"이라며 분개했습니다.
외국인인 타일러도 알아보는 남편이란 인물의 비정함을 모국어 독자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직접적으로 "남편은 비정한 사람이고 아내를 향한 손톱만큼의 애정도 없었다"는 식의 설명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는 탓일까? 독서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한국의 독서 실태를 반영하는 현상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한 일간지에 실린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그 이유를 설명할 힌트를 얻었습니다. 중앙일보 10월 17일 자에 실린 이영균 평론가의 "시를 품은 한국 소설, 특유의 공감 문화 세계가 알게 되다"에서 그는 <채식주의자>가 출간 당시 한국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었던 과거를 언급합니다.
<채식주의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외면받았던 이유를, 한국 대학생과 미국 대학생들 간 첫 문단에 대한 반응을 보며 짐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로 시작하는 첫 문단을 읽은 한국 학생들은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은 다음 이영균 평론가는 이런 남자와 결혼하고 싶냐고 여러 명에게 물었는데, "아뇨"라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이들이 별로 없었답니다. 그에 비해 미국 학생들은 첫 문단을 읽고 바로 그가 "구제할 수 없는 몹쓸 인간"이라는 걸 파악했다고 합니다.
영혜보다는 남편의 시선에서 작품을 바라보니 온통 불편한 장면 투성이고, 영혜가 일으키는 갖은 소동이 짜증스럽게 느껴졌을 법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하기로 치면 결코 뒤지지 않았을 한국 학생들이 왜 기초적인 문학이론만 알고 있어도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인물의 특성을 포착하지 못한 것일까요? 왜 작가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까요?
문학이론을 알고 적용하지 못했다는, 지식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영균 평론가의 지적대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이며 인간의 개성을 말살하고 평균적인 인간으로 길러내는가를 그려내는 시작 부분의 한 문단이 작가의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자각도 없으니 아무리 작가가 전하고자 해도 가닿지 않았던 거예요.
어떤 이혼 전문 변호사가 "취향이 없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조언한 영상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하던데요, 지금도 한국은 충분히 개성을 존중하기보다 획일적인 잣대가 중요한 분위기인데 이제 배우자의 요건에 "무색무취"라는 조항까지 곁들여진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만 소통하고 갈등을 조율하며 살아갈 수 있다"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애초에 서로 "다름" 자체를 부정하려 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특별한 매력"도 없어서 "평범한 아내의 역할"을 잘해내리라는 기대만으로, 애정도 없이 결혼한 영혜의 남편에게 위화감 없이 감정 이입할 수 있었겠지요. 서두만 읽어봐도 그가 아내에게 사랑이나 존중, 배려 같은, 가족이라면 기대하게 되는 어떤 친밀함도 내보이지 않았다는 게 느껴지고, 영혜의 결혼생활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는데 말입니다.
문득 궁금해져 저희 아이한테 첫 문단을 읽어줬습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하략)"
읽으면서 조금 두근거리기도 했어요. 작품 내용을 다 알지 못하는 아이가 첫 문단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영균 평론가가 학생들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해봤습니다.
"이런 남자는 어때, 만약 이런 마음으로 너와 결혼하고 싶다면 할 것 같아?"
그러자 아이가 약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합니다.
"아니? 안 할 것 같아. 너무.. 전형적이네. 뭔가 이기적인 사람 같고. 나에게 이런 마음이라면 결혼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안도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이유를 물어서 간단히 대답해 줬지요. 더 자세하게 말하려 하니 아이가 자기도 읽을 테니까 "스포"는 자제해 달라 해서 멈췄습니다. 청소년은 이 작품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아이가 다 읽은 다음에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