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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키나 pickina May 15. 2023

가장 낭만적으로 여행하는 법, 카우치서핑

2016년 유럽, 그날의 나 돌아보기


산더미같이
많은 돈을 갖고서도


한 움큼의 사랑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쥐꼬리만 한
돈밖에 없는데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정연복, 가난한 연인들에게



국내에서 카우치서핑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해외 경험이 있다면 그 단어는 들어보았더라도, 혹은 어떤 의미인지 알더라도 실제로 경험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카우치서핑(Couch Surfing), 직역하면 소파 서핑, 이란 현지인들이 여행객들에게 무료로 지낼 곳을 제공하며 함께 교류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이자 해당 문화 자체를 의미한다. 현재는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면서 유료 구독 서비스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문화 자체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글을 써보려 한다.


22살을 마무리하는 12월, 처음으로 이국 땅을 밟아본 나는 겁나는 게 없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깡이 없냐"는 말이 딱 알맞았달까. 첫 해외 여행지였던 스페인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포르투갈에 야간 열차를 타고 넘어가며 느꼈던 그 허탈감과 두근거림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 막막함이 오히려 원동력이 되어, 1년여간의 유럽 생활 동안 정말 두려움 없이 모험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웨덴 우메오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나는 아름답지만 지루한 대학도시 생활에 질려 끊임 없이 유럽 각국으로 여행을 다녔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내 스웨덴 친구 Viktor는 본인이 평생 다닌 여행 국가보다 내가 몇달간 다닌 나라가 더 많다며 놀리곤 했다. 욕심은 많았지만 돈은 없었던 대학 시절의 나는, 최대한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가 시작했다. 여행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드는 것은 뭘까 - 숙박, 그리고 교통이다. 다만 교통은 유럽 국가간 저가 항공이 워낙 많았기에 시간대만 잘 타협한다면(야간 비행 등) 어떨 때는 1-2만원대로도 해결할 수 있었고, 현지 교통 가격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으면 되니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문제는 숙박이었다. 아시안 여성 혼자 노숙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호스텔 30인실에서 잔다고 해도.. 숙박비는 가장 큰 부담이었다. 인터넷으로 최저가 숙박을 찾던 나에게 눈에 들어온 서비스가 있었으니, 컨셉은 에어비앤비와 비슷하게 현지인의 집에서 일부를 세 주는 개념인데, "무료"라는 것이다.


"땅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나?"


더 찾아보니 카우치서핑이라는 이 사이트는 비영리 커뮤니티 서비스이고, 전세계인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서로 베푸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단체였다. 그 의미는,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방을 빌려주거나, 소파를 내줌으로서 다음에 나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이런 전세계인을 대상으로한 품앗이? 두레? 의 개념이었다.


스웨덴에서 현지인 친구를 사귀면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어느 정도 붙었고,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극에 달했던 그때의 나로서는 Why Not That's so 일석이조였다. 바로 CouchSurfing 웹사이트에 들어가 회원가입을 하고, 내 소개 및 내 집에 대한 소개(그 당시 스웨덴 기숙사)을 올리고, 이미 짜놓은 여행 루트에 맞추어 후기가 좋은 현지인들에게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메세지는 정성스럽게 써야한다 - 내가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인사이트가 무엇인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면 어떤 점이 흥미로울지 등등을 담아. 무료로 운영되는 서비스이고 이 사람들도 나를 위해 공간과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만큼, 나 자신을 세일즈해야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카우치서핑을 몇번 했냐고? 내 프로필에 남아있는 레퍼런스는 8회이다. 최소 그 횟수만큼 현지인의 집에 머물거나, 현지인과 만나 해당 지역의 문화를 탐험하는 경험을 했고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한 후기(레퍼런스)를 남겨주었다는 의미이다. 아, 그 반대도 해당한다. 1명은 비엔나 워홀시절 우리 집에서 묵었고, 나에게 후기를 남겨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카우치서핑을 하기 전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동양인 여자애가 겁도 없이 그런 걸 하냐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고. 그리고 카우치서핑을 여러번 하고 나니 이야기했다. 너 참 대단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모든 일에는 득과 실이 있는 마련이다.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좋은 일과 좋은 추억만 있었다고 하면 정말 거짓말이다. 인간의 추악한 면모도 보았지만, 그와 반대로 이렇게 세상이 아름답구나 느끼기도 하였다. 


가장 좋았던 경험과 최악의 경험을 1개씩 꼽아보자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Jose 와의 만남은 지금도 절대 잊을 수 없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나이 차이가 거의 5-10살 나는 이 친구와 포르투갈의 맛있는 로컬 식당을 돌아다녔고, 최고의 야간 전망을 찾아 밤 산책을 나섰고, 직장 동료와의 디너파티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후 크리스마스에도 가족과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나를 초대하여, 함께 할머니와 어머니와 형제와 형제 남자친구와 함께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최악의 경험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호스트였다. 이름은 굳이 남기지 않겠지만, 동양인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ex- 동양인 여자애들은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해서 술집 여자 같다 등의 근거 없는 이야기), 밤에 따로 자고 있는데 다가와 성추행을 하려고 하거나 등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심장이 덜컥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카우치서핑의 순기능에 깊이 공감한다.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사람들은 나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구나 깨닫고, 나의 닫힌 사고가 열리는 데에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전세계 사람들이 선의를 가지고 서로를 돕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자유롭게 여행하고, 사람들의 카우치 위에서 이리저리 서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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