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namongaroo Mar 08. 2023

하루를 잠으로 채운다면,

무기력과 우울함이 찾아왔을지도 몰라 

요즘 틈만 나면 잠을 자려고 한다. 잠을 자고도 또 자려고 한다. 잠이 오지 않아도 눈을 감고 이불을 덥고 누워있었다. 휴무날이 되면 하루종일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채 잠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또 그분들이 찾아왔음을 알게 된다. 바로 무기력함과 우울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불청객이 찾아올 때면 잠을 자고 또 잔다. 자주 있던 패턴이다. 이 패턴이 오기 전에 항상 전조증상이 있다. '요즘 뭘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지난겨울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했다. 이직할 당시의 마음은 퇴근 후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여유롭게 일을 하며 지내고 싶어 이직을 했다. 모든 일이 내 생각과는 다를 때가 많다. 직접 현장에서 본 일의 형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챙겨야 할 일이 매일 마다 빼곡했다. 항상 긴장한 채 일을 배워야 했다. 새로운 업무와 사람에게 적응하려고 부단히 애쓰며 겨울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하루에 쓸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썼던 것 같다. 정신없이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요즘 내가 뭘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넋두리를 했다. 그때 알아채야 했는데 알아채지 못해 결국 곪아터지고 말았다. 나를 돌보는 일보다 일에 파묻혀있으면 내가 조금 작아 보이는지 결국 돌보는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냥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달달한 커피 한 잔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잠시는 조금 나아졌다. 그러는 사이에 에너지 저장고에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일이 생겼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는 코로나를 용하게 피해 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같이 일하던 동료가 코로나에 걸리게 되었고 그 동료를 대신해 혼자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부터 몸에 열이 나고 오한이 오더니 결국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게 되었다. 양성 판정을 받은 후 바로 격리를 해야 한다는 병원 측의 말에 일주일 동안 쉬게 되었다. 쉬는 내내 약을 먹고 잠도 푹 잤다. 긴장하고 있던 몸이 나른해지더니 마음도 함께 느슨해졌다. 그 김에 정말 푹 쉬려고 애썼다. 일주일은 금방 흘러갔다. 다시 출근을 하려니 마음이 무거워져 그 전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격리기간 동안 잠을 많이 잔 것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침은 언제나 밝아온다.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일으켜 세워 다시 출근을 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몽롱한 상태였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마음은 물기를 가득 머금은 수건처럼 축 늘어져 움직임이 둔해져 있었다.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내고 퇴근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두터운 패딩을 벗을 힘도 없었다. 그대로 거실 바닥에 너부러졌다. 하루종일 비웠던 집은 어둡고 차디찬 공기로 가득했다.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무한 마음이 온 집안을 더 차게 만들었다. 모든 일이 다 부질없게 느껴져 그대로 공중으로 흩날려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라는 말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상의 시간은 계속 앞을 향해 흘러갔고 이전의 일상처럼 지냈다. 시간이 많이 흘러 3월이 되었다. 그래도 몸과 마음이 예전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휴무날이 되면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무거워진 몸은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밖은 이미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 블라인드 사이로 햇볕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햇볕도 보기 힘들었다. 아침이 왔다는 게 기쁘지 않았다. 다시 밤이 되길 바랐다. 이불을 푹 끌어올려 머리까지 덮었다. 한참을 눈을 감은 채 이불속에 있었다. 이불 안에 있다 보니 잠이 들은 모양이다. 깨어보니 오후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죄책감도 들었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또 그냥 흘려보냈다는 마음에 나는 또 이불속으로 더 파고 들어갔다.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밥이라도 차려먹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생각을 붙잡았다. 휴무날마다 잠으로 시간을 죽여갔다. 코로나를 앓고 나서부터 몸과 마음이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요즘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몸과 마음을 깨우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어제부터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대신, 핸드폰과 이어폰은 집에 두고 나가기로 했다. 

·햇볕을 쐬며 1시간가량 무작정 걷기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 읽기(딱, 한 권만 선택)

·실천했던 것을 짧게 기록해 보기, 감정 기록 

·집에 돌아와 저녁 챙겨 먹기(간단한 음식이라도 꼭 직접 요리해서 먹기)

·저녁 산책 20분 

·40분 기도(그냥 앉아있더라도 그 자리 지키기) 


어제 실천해 보았던 일이다. 작은 일 같지만 지친 마음과 몸을 깨우는 신호가 되었다. 방전된 에너지 저장고에 약간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누룽지를 바글바글 끓여 먹고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 건조대에 널어둔 채 밖을 나왔다. 어제처럼 나는 걸었다. 햇볕을 쐬며 무작정 한 시간가량을 천천히 걸었다. 걷다 보니 어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여름 폭우로 인해 강둑이 넘쳤는데 여전히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지난여름 난 폭우로 강둑이 넘친 현장을 보며 걸었다. 그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언제 이렇게 2023년의 봄이 되었을까 싶어 마음이 뭉글해졌다. 그때의 장면은 그대로인데 시간은 쉬지도 않고 앞으로 향하는 것 같아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강변을 따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산책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고민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나란히 걸어가는 아주머니들의 목소리, 강둑을 보수하는 공사현장도 보이고 그 안에서 힘겹게 무거운 쇳덩이를 밀어주는 노동자분들의 모습도, 하얀 비숑, 몰티즈, 진돗개등 수많은 강아지가 주인과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구르며 가는 무리들도, 게이트볼 경기가 한창인 모습도 보였다. 모두가 평화로우면서도 분주했다. 

내 마음과 몸도 늘 그랬다. 평화로웠다 분주했다 다시 지쳤다가 금세 다시 또 살았다를 반복했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또 아무 일 아닌 일이 된다는 것도 몸과 마음은 안다. 그저 잠시 쉬어가야 할 때라고, 그냥 그 시간을 주고 싶었다고 마음과 몸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울 수 있는 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