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의 계기
어쩌면 또다시 취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성실하게 작가 생활을 이어갔으나 나에게 남은 건 불안뿐이었다. 불안은 밤마다 소란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이라도 다시 취업하는 게 어때?”
그러자 희망이 대답했다.
“아니. 조금만 더 버텨봐. 프리랜서로 자리 잡아야지.”
실제로 어떤 작가는 회사 생활이 너무 싫어서 작가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버텨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오죽하면 ‘돈 없이 효도하는 법’이라는 글을 썼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또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인생은 벽을 만나 그걸 깨는 과정 같았다. 이번 벽은 얼마나 단단하려나. 삶은 참 재밌는 것 같다. 행복과 불행의 교차점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일이 잘 풀린다고 기뻐할 수만은 없고,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슬퍼할 수만은 없는 점에서.
‘이렇게 마음고생할 거면 다시 취업하자…’
내 영혼이 다치는 일만은 막고 싶었기에 여름에는 취업 준비를 했다. 예전에는 취업 준비를 정말 대충 했으나 이번에는 정성을 들였다. 이를테면 면접 예상 질문 100개를 전부 외우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까지 준비를 열심히 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열심히 준비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한 달 후, 본격적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총 다섯 번의 면접이었다. 예상 질문을 100개나 준비하고 들어간 면접이라 정말로 예상한 질문만 흘러나왔다. 면접은 준비가 반이라는 걸 새삼 체감했다.
한편으로는, 일이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서 기분이 조금은 이상했다.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기분이었다.
사는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
유쾌하지 않은 기분.
돌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준비성이 철저해서 무언가를 쉽게 예상하는 사람은, 삶이 코미디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
면접을 보는 내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대본을 알고 있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떤 사람은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게 뭐가 잘못되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면접 내내 예상했던 질문만 나오니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감각이 사라지면서 ‘이게 전부인가?’ 하는 느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느낌.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느낌.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아니, 변화를 싫어했다. 그러나 모든 게 예상대로만 흘러가면 그건 그거대로 불행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무리 '해피엔딩'이라도 말이다. 행복 ‘Happy'의 어원은 ’Happ'로, Happ은 ‘Happenstance(우연한 일)‘ 또는 ’Haphazard(우연)’을 의미한다. 행복은 우연이 전제되어야 하나보다. 숨을 쉬고 내뱉는 걸 의식하다 보면 숨 쉬는 게 어색하듯이, 행복을 의식하면 행복이 어색하게 느껴지나 보다. 그래서 행복에 ‘우연’이라는 속성이 숨어있나 보다. 의식하고 있는 행복은 ‘우연’이라고 느낄 수 없으니까. 방심할 때 찾아와야 우연이니까…….
어느 날이었다.
유일하게 한 회사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다니기로 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 가지 않는 그곳에.
직장에 다니면, 또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위안받고, 상처받을 것이다. 금세 그만둘 수도 있고, 계속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잘릴 수도 있고, 평생직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취업한 걸 후회할 수도, 후회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변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가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으니까. 변화를 꼭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으니까.
변화의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면 용기가 생기나 보다.
문보영 작가의 『일기 시대』라는 책의 문구이다.
카페 벽면에 쓰인 글귀가 보였다.
A yawn is a silent scream for coffee.
Forget love, fall in coffee.
Coffee doesn’t ask silly questions.
Coffee understands.
나는 이 문장의 coffee를 모두 change로 바꿔 읽었다.
하품은 변화를 향한 고요한 비명이다.
사랑을 잊고, 변화에 빠져들어라.
변화는 어리석은 질문 따위는 던지지 않는다.
변화는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