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어서 전략적으로 게으름을 피웠다
세 달 전, 2021년 10월 중순까지 260페이지 가량의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르게 말하면, 3달 만에 260페이지의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분량을 확인해 보았다.
‘이 정도면 다 채웠겠지?’
하지만 그건 보아 뱀을 모자로 본 것처럼 바보 같은 착각이었다. 우선, 회사에 다녀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고, 나에겐 천부적인 재능 따위도 없었다. 내가 가진 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뿐이었다. 그놈의 자신감 때문에 연거푸 무리한 계획을 세운다는 걸 알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결과적으로는 3달 동안 130페이지, 딱 절반만 완성됐다. 계획이 틀어졌다.
마감에 쫓겨 쓴 글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산만한 문장, 계속 바뀌는 주제, 접속사의 남용, 억지스러운 결말까지. 세 달 동안 쓴 글의 대부분은 맑지 않은 정신으로 써서 너무 탁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계획이 틀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안 드는 글을 책으로 출간하는 건, 펑퍼짐한 잠옷을 입고 강남역에 전시되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실패는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이후로 ‘빨리 써야 해, 마무리해야 해, 책을 내야 해, 해야 해, 해야 해, 해야 해!’ 하며 집착하는 건 그만뒀다. 집착하면 되는 일도 안 되고, 집중하면 안 되는 일도 됐기 때문이다. 집착이 아닌 집중을 하려면 우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 써야 해서 쓰는 글이 얼마나 최악인지, 마감을 정하고 쓰는 글이 얼마나 조급하고 투박한지. 생각만 해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퇴근 후 피곤하면 굳이 글을 쓰지 않았고, 주말에도 무리해서 글을 쓰기보단 잘 절여진 깻잎장아찌처럼 납작하게 누워있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 쓰고 싶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1년 뒤에 ‘써야지!’하고 다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리스크도 감당해 보기로 했다. 그전에는 마감을 타이트하게 정해놓고 글을 썼다면, 이번에는 느슨하게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보기로 한 것이다.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꽤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2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