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실화냐!
와, 실화냐
많이 들은 말이라고 내 것인 양 입에서 나온다.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실화냐. 이번 여름을 앞두고 내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실화냐?! 열 번째 여름 방학이라니! 실화냐! 나 지금 몇 살이냐!
10번째 여름 방학이다. 정년을 눈앞에 둔 선배들이 들으면 귀엽다고 하시겠으나 나는 지금 매우 진지하다. 10번째. 그래 이번 년이 교사가 된 지 10년 차가 된 해다. 의미 부여는 원래 하기 나름인데,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기에 10이 주는 의미는 너무 크지 않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으니 이제 좀 교사는 이러쿵저러쿵 떠들 자격이 주어진 것인가 싶으면서도 이제는 더 방황하면 안 될 것 같은, 나 스스로가 세워둔 마지노선에 다다른 기분이라 방학을 맞는 나의 마음이 썩 후련하지 않다. 게다가, 작년부터 그간 느끼지 못했던 신체적인 ‘노화’를 실감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 착잡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연초 <나 혼자 산다>에서 40이 되는 기안 84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보며 도대체 왜 저렇게 호들갑일까 했는데,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제는 더 이상 2030에 속하지 못하는 게 고통스럽다는 말에 십분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던 적이 있다. 딱 당시 그의 모습이다. 여름방학을 앞둔 나의 몸부림이 말이다. 아직 2030에 속하는 나이인 내가 40에 진입하는 기안 84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할 수 없지만 나에겐 교직 10년이 그런 의미다. 우선 10년을 해보자. 그리고 그다음은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너무 젊고 어리고 부러운 나이겠지만 이러한 이유로 내 사정은 그렇지 않다. 깔짝깔짝 해오던 모험과 도전이 아닌, 이제는 큰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시점이고, 지난날을 평가하고 정산해야 할 시기다. 누가 정했냐고? 내가.
10년 차를 시작한 건 이미 반년이 지났는데 왜 하필 방학을 앞두고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학기 중엔 이런저런 핑계가 많다. 고민과 결심을 미룰 핑계가 말이다. 남들 눈엔 퇴근이 빠른 학교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어마어마한 일들과 내가 아닌 타인을 보살펴야 하는 업의 본질이 나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생각할 여유와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방학을 하고도 몇 주는 상당히 바빠서 날 좋을 때 연가고 뭐고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아파도 꾹 참고 출근한 이로서는 짧은 방학이 좀 서운하기도 하다. 서운하든 어쩌든 이번 방학을 지금까지 보내왔던 것처럼 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철밥통이라는 교사를 하면서도 이렇게 고민이 많다. 어쩌면 선택할 수 있거나 결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여름은 그 복을 충분히 누려보련다. 선택과 집중.
아무튼 방학이다. 학기 내내 웃으며 잔소리를 시전 했으나, 웃으며 내치다가 기어코 기말에 성적이 떨어진 아이와 비밀 작전을 세웠다. 문제집을 줄 테니 매일 풀어서 인증해서 올리기. 와, 방학인데 서로에게 너무 잔인한 미션 아닌가, 네 앞가림이나 잘하지 뭘 또 애한테 그러냐 싶었지만 아이가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잘 해내기로 했다.
불안한 사슴만이 살아남았다는 생존의 법칙이 이번 방학의 테마다. 고뇌와 고민과 고충의 시간을 충분히 즐길 것이다. 그것이 곧 사유로 이어질 테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심심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생각을 하니까. 누구에게나 방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