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간중간 괜히 헛헛해 조금 늦게 잠들고 싶을 때나 비행기를 탈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읽고 조금씩 적어보려 했다. 책 자체도 두껍지 않고 부담 없이 읽힐 뿐 아니라 사실 글쓴이 언니의 글을 일방적으로 훔쳐본지가(싸이어리에서 페이스북 페이스북에서 인스타로) 어언 7년째라 이미 익숙한 글들도 있었다.
글쓴이 언니랑은 일면식도 없지만 아는 사람이 책을 펴낸 것처럼 안 쓰던 글을 적는 건 화면 너머로 글을 훔쳐본 게 벌써 7년이라 실제로 이 언니가 내게 멀게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 착각이 드는 탓도. 언젠가 스무 살쯤 얼굴도 모르는 내 장문의 메세지에 더 장문의 조언으로 답해준 일이 고마워서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 언니가 적는 글과 글로 쓰이는 이 언니가 사는 방식이 나는 참 좋아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 언니가 앞으로도, 꼭 오래오래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어서적는 일종의 사심 담긴 응원이다.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3년. 대학원 생활도 만 2년. 외로움 많이 타는 성격에 겁은 많지 쓸데없이 센 자존심. 가벼운 행동거지. 동그란 몰폴로지랑은 다르게 예민한 구석.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 진득하고 밀하게 엉겨 지낸 만 5년의 시간을 나는 게 내게 사실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그렇고) 특히나 지금보다 10년 정도 어렸을 땐 더.
그럼에도 내가 가장 뾰족했던 시기 내게는 모든 걸 제쳐두고 나를 일단 보듬어주는 이들이 있었고. 가장 외로웠을 땐 일생 중 가장 진득하고 귀한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사람과 사랑들 덕분에 나는 세상의 아름답고 귀한 것들에 대해 믿게 되었고 또 기대하게 되었고 내 인생에 예상치 못 하게 나타나는 귀한 것들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도 조금은 길러진 것 같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것도 달기만 한 것도 없다는 배움도 덤으로.
그래서 나에겐 그런 것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마음의 빚 같은 게 있다. 힘들었던 시간들조차 내게 소중하게 남을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 것들. 이 언니의 글 역시도 그 시절 나에게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열아홉스무 살 땐 결이랑 문자를 주고받으며 '난 나중에 이렇게 살아아야지' '나 나중에 이렇게 입고 다녀야지, 이런 남자 만나야지!' 잠도 안 자고 떠들었는데 그때 우리가 즐겨 훔쳐보던 것 중 하나가 이 언니의 글이었다.
항상 스스로 조금 더 단단하기를 조금 더 지혜롭기를 갈망했던 시절. 세상에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적지 않은 날 얼굴도 잘 모르는 누군가의 글이 나에게 위로이자 지혜가 되어주었다. 조금 더 솔직해도 괜찮구나, 꼭 빚은 듯 티 하나 없지 않아도 예쁠 수가 있구나. 그래서 그땐 나도 스물네 살엔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살아야지.다짐아닌 다짐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26살인 나. 전혀 딴 판으로 살고있지만. 그리고 나는 이 언니와는 다른 어쩔 수 없는 나인지라. 앞으로도 19살에 꿈꿨던 것처럼 이 언니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이 언니의 글을 읽는 건 '난 어떤 사람으로 살고있나.얼마나 진실되게 사랑하고 있나'되묻게 한다.
. 수년 전 방송에서 자신의 위로가 값싼 힐링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는, 그래서 방송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시던 한 스님의 모습이 기억난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대로 진솔한 글을 쓰고 진솔하게 노래 부르는 사람들. 그 글과 노래와 영화들 덕분에 하루의 끝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스스로에게만 매몰되어 있던 사람이 타인을 들여다보게 되고, 머릿속으로 복잡하고 약은 계산을 하다가 아니야 조금 더 예쁘게 살아보자. 누군가를 다짐하게 한다.
책 속의 글은 일기처럼. 짧게 짧게 나뉘어 있다. 가볍게 읽히지만 하나의 글을 읽고 나면 잠시라도 책을 덮고 몸을 기대생각하게 되는 그런 글들이다. 귀엽지만 깊고 솔직한 글들이다.
내 조악하고 긴 감상이 다만 누군가에게라도 닿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고마운 마음. 빚을 갚아보려는 노력이 그저 내 마음속 일만으로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다.
길게 적었지만 요약하면 이 책를 쓴 언니가 글을 계속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사심 가득으로 적는 책 추천. 가요톱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