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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원 Oct 28. 2023

욕망의 힘 /독후감269

 한 해 동안 분기마다 미술관에 가려고 스케줄을 잡는다.

올해 마지막 미술관 관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전시하고 있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 다녀왔다. 1 관부터 4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시흐름이 관람의 집중도를 높였고, 3관을 나오면서 장욱진이란 화가가 더욱 궁금해졌는데 바로 이어지는 4관에서 작가의 아카이브와 사진들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와중에 그가 사용했던 담배 파이프까지.

 대중이 모두 좋아하는 작품 자체도 좋았지만 전시관별 조도도 설치작품에 따라 다르게 세팅해 놓은 듯하고, 액자를 포함해 작품과 무리 없이 잘 어울리는 백그라운드도 미술관 직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 더욱이 미술관 가는 날이 정말로 좋은 건 미술관 관람 후에 와이프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직접 가는 것은 나에겐 행복한 분기별 이벤트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미술관 직관보다 나는 미술책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일 년 동안 읽는 책들 중 미술책이 적어도 5~6권은 되는 듯하다.

 먼저 내 맘대로 내가 원할 때 문득 떠오르는 작품을 다시금 펼쳐볼 수가 있다. 미술관을 직접 들고 다니며 소소히 작품 즐기기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외에도 미술책을 지은 작가의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다. 미술 작품이라 함은 대개 직관적으로 느끼고 즐기기 마련인데 책을 통해 다가오는 미술 작품들은 작가의 가이드를 덤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 1912년경]라는 유명한 조각 작품이 있다.

직사각 형태의 돌덩어리를 선택해 원석이 갖고 있는 거친 질감은 그대로 살리면서 최소한의 표현으로 남녀의 형상을 나타냈다. 눈, 입, 팔, 머리카락은 간단한 선을 새겨 표시하고, 여자의 둥근 젖가슴과 긴 머리카락의 특성을 드러내 남녀를 구분할 수 있게 했다.

 ‘대단한데!! 정말 심플하게 표현했구나! 조각이란 이런 것이지!’ 감탄해서 끝나는 것이 아닌 책을 통해 다가오는 [키스]는 사람의 원초적 욕망인 사랑을 연상시킨다. 왜냐하면 오늘 독후감을 쓰고 있는 미술책 [욕망의 힘]에선 여러 작품들을 욕망의 카테고리로 구분 지어놓고 이와 어울리는 소설의 감동적인 구절도 같이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후폭풍이 배가倍加된다.


 미술관에 찾아간다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에 다녀왔던 ‘장욱진 회고전’에서 정말로 많은 장욱진 선생님의 작품들을 즐기고 왔다. ‘이런 류의 그림도 그리셨구나. 정말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셨구나.’

 책을 통해 만나는 미술작품은 내가 다음 페이지를 펴보기 전까지 어떤 작품들이 내 앞에 등장할지 알 수 없다. 물론 책을 구입하기 전에 대략 훑어볼 수는 있겠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100개 남짓의 작품 모두를 자세히 보고 책을 사진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예술작품들과 조우한다. 내가 미술관에 찾아가서 특정한 그리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과 만나는 것보다 훨씬 불확실한 짜릿함이 있다.


 책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한 작품이 불확실한 짜릿함에 제격이다.

노먼 록웰의 [눈에 멍이 든 소녀, 1953]란 작품이다. 그림의 배경은 초등학교 교장실 밖의 복도. 눈에 멍이 들고 무릎에 반창고를 붙인 여자아이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림 오른쪽의 열린 문 틈으로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젊은 여성은 담임교사이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는 교장이다. 소녀는 학교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 오늘도 학생들과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 모양이다. 그러나 교장실로 불려 온 소녀는 반성하기는커녕 즐거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외에도 미술책을 통해서 새로운 표현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아트 페어에서 분명히 접했던 작품임에도 다시 읽은 황선태의 [빛이 드리운 방, 2013]은 신기하기만 하다. 강화유리에 샌딩 기법으로 그린 유리그림이다. 샌딩 작업한 유리 위에 또 한 장의 유리를 겹치고 라이트 박스의 조명을 켜면 유리에 빛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퍼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캔버스는 유리, 물감은 빛인 독특한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미술책의 또 다른 좋은 점은 국내 미술 작가들에게 눈 돌릴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양극화를 극복하지 못한 국내 미술시장의 현실에서 확실히 저평가되어 있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정보영의 [함께-속해-있다, 2013]에는 여러 개의 양초가 타고 있다.

그런데 양초의 길이, 불꽃의 크기와 방향, 촛농이 흘러내린 형태가 제각기 다르다. 게다가 어둠을 밝히는 용도의 촛불이 아니다. 태양빛 속에서도 스스로 태우기를 멈추지 않는 촛불이다. 정보영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더욱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을 그리는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작품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마지막으로 미술책을 읽는 동안 창작의 고통이 찬찬히 공유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욕망은 예술과 문학, 인문학의 영원한 주제였다. 욕망을 탐구하고 표출하고 실현하고 다스리고 때로는 욕망에 시달리는 예술가들의 작품 한 점이 그들을 표현하고 이해하기에 충분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대중으로서 예술가의 창작의 고통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내가 꾸준히 미술책을 집어드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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