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원 Dec 09. 202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독후감275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자신이 인정을 하든 자랑을 하든 해야 독자 측에선 인정을 해주든 수긍을 하든 할 터인데 오직 삼십 년 넘게 글을 쓰셨다는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 빼놓고는 특별할 것 없는 개인으로 그리고 운이 좋은 사람으로 자신을 설명한다.

 전업 작가가 된 이후 꾸준히 매일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 네다섯 시간 동안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의 분량 쓰기와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생활 습관처럼 유지해오고 있다. 이것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현재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위대함의 비밀일까?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소설도 아니고 더구나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소설은 쓸 엄두조차 나지 않는데 ‘제목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란 에세이까지 내가 읽고 싶을까’ 했지만 무엇보다도 (뒤늦게나마) 내용이 궁금했고, 담담하고 덤덤하고 담백하고 조용한 매력을 갖고 있는 무라카미 씨가 자꾸만 읽어 보기를 권하는 듯하여 결국엔 책을 펼쳤다.


 그렇다면 지속성이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할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삼십 오 년여를 꾸준히 소설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쓴다는 사실이 에세이를 읽고 가장 기억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소설가와 지속성이란 단어는 비슷한 뉘앙스로 느껴진다.

 소설가로서 소설을 써 나가는 상황에 대해 한자리에 정리해서 말하고 싶었던 작가만큼이나 독자들도 무라카미 씨의 뒷이야기나 속생각들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가 롱런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직업이 소설가이니 꾸준히 작품을 써야지’가 아닌 ‘소설가로서 지금까지 어떤 길을 어떤 생각으로 걸어왔는지’에 대한 견해가 한결같은 사람이다.


 소설가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갖고 있으며, 자신이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지를, 언제 소설 쓰기를 시작했는지를, 어떻게 자신만의 문체文體를 획득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입장권’을 얻게 해 준 것이 문예지 <군조>의 신인상인 만큼 문학상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과 ‘내 작품의 독창성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사색도 상당히 깊다.

 시간이 흐르면서 혹은 소설가로서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이와 같은 류類의 것들은 굳이 시간을 할애해서 생각하고 나름 정리해 놓지 않으면 머릿속에만 어렴풋이 자리 잡고 있어서 설명하거나 글로 명확히 써 내려가기 어려울 텐데.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져 없어져버리기 십상일 텐데.


 소설가가 빈번하게 하는 고민 중에 하나는 ‘자, 뭘 써야 할까?’ 일 것이다.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면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까?’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장편소설 쓰기의 무라카미 식式 지난至難한 프로세스에 대해 가능한 자세히 펼쳐 놓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참으로 솔직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거꾸로 배울 점이 생긴다.

 “(글을 써야 하는 소재가) 뭔가 좀 시원찮은 잡동사니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튼 쓸어 모으고 그다음에는 분발해서 짜!잔! 하고 매직 magic을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를 위해 소설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에 정답은 없다.

특정인을 염두해 놓고 쓰지도 않지만 독자라는 존재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소설가로서 결론 맺기 힘들어도 자신의 고객인 독자를 향해 소통하기 위한 그만의 짙은 밀도의 사유를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이미 인정받은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해외로 진출하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현재 여전히 무라카미 씨는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성실한 매력을 지닌 분이다. 외모도 그렇고 자꾸만 이우환 선생님이 오버랩된다.




 소설가란 소설가가 아닌 사람에 비해 사소한 것들이나 참으로 중요한 것들 혹은 모든 것들에 대해 진득하니 글로 전환하기 위한 생각을 하고, 글로 펼쳐내는 직업으로 이해되는데 나와 같은 보통사람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해도 무언가 조급함이 생겨 이른 종결로 글을 마치거나 좀처럼 글로 옮길 엄두가 나질 않는다. 동시에 ‘책 한 권 써보라’ 권하는 주변인들이 생각난다.

 ‘어떻게 책/소설을 쓰는가?’에 대해 적어 놓은 책들은 많지만 읽은 후에도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은 흔치 않다. 타인을 변화시키고 설득하고자 쓴 글이 아닌 에세이. 그냥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쓴 에세이. 그냥 내 생각이 이렇다고 펼쳐 쓴 에세이. 하지만 소설가란 직업이 멋지다고 조심히 자랑하는 작가를 보면서 무언가를 써서 책으로 남기고 싶게 하는 마음을 소소하게 갖게 하는 에세이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유난한 도전 /독후감27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