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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런 Aug 16. 2019

간섭의 비용

이제는 간섭도 돈을 내고 하는... '현대판 노예'의 짧은 소회 

30대 중반이 지나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술이라도 마신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하루 종일 제정신이 아니고 

주중에 조금이라도 야근을 하거나 업무에 무리를 하면 그 주말은 당연스레 방콕이다. 

배는 점점 나오는데 뺄 자신이 없다. 그저 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낼 뿐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헬스클럽을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개인 PT도 함께 말이다. 

물론 큰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돈을 미리 지불하지 않으면 나의 의지는 언제라도 금방 꺾일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나의 의지는 돈을 지불해야만 생겨나게 된 것인지..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그러다 작년에는 온라인 영어수강권을 1년 치를 덜컥 구입해 공부를 시작했었다. 물론 돈이 아까워 처음에만 열심히 했지만 말이다. 

여전히 그 온라인 교육의 알람은 정기적으로 스마트폰에 울리고 있으며 그때마다 나의 찜찜함과 좌절감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스마트워치도 구매했다. 

시계만 차고 있어도 나의 심박수와 운동량을 계산해 준다는 그것. 

내가 다소 오래 책상에 앉아 근무를 하면 ‘징~’하고 진동이 울린다. 시계 화면에는 ‘운동하세요’라는 문구가 뜬다. 나는 기계의 지시에 따라 잠시 몸을 움직여 주었다. 


'간섭의 비용'이다. 

내 건강에도 내 학습에도 누군가 간섭해줘야 움직일 수 있기에 나는 쓸데없는 간섭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내 돈을 내고도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사실 개인 PT도, 온라인 영어도 막상 해보면 별거 없는데 말이다. '맘만 먹으면 집에서도 충분히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들..'


뭐 하나 내 맘대로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누군가의 지시가 없이는 절대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나. 

진정한 사축(회사의 가축의 줄임말)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젠장. 


글을 쓰는 지금도 스마트워치가 나를 재촉한다. 

‘운동하세요’

알았어.. 알았다고.. 나는 또다시 잠시 몸을 뒤뚱뒤뚱 움직인다.


족쇄가 단지 조금 더 세련된 것일 뿐.
나는 그저 팔목에 족쇄를 단 현대판 노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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