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자 행운이었습니다. 약 3년 전 하버드대학에서 했었던 "Are Koreans Human?"이라는 제목의 강연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진~짜 말 잘한다!'라고 감탄했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이후로 이민진 작가의 강연 영상을 아마도 거의 다 찾아본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애플 TV 드라마 시리즈 <Pachinko>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이후에야, 뒤늦게 책을 주문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1, 2권을 구매하는 것보다 미국판 페이퍼 커버 단행본의 할인된 가격이 거의 50% 정도 저렴해서,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말빨'만큼 작가의 '글빨'도 과연 감동적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저 개인의 취향에는 드라마 <Pachinko> 보다 소설 《Pachinko》가 좀더 좋았습니다.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가 격정적이고 화려하다면, 소설은 잔잔하고 소박합니다. 화려한 색깔과 자극적인 맛깔의 '김치찌게'에 드라마를 비유한다면, 소설은 우직하게 끓여낸 '곰탕' 같은 느낌입니다. 소박하지만 자꾸자꾸 생각나는 그런 곰탕.
실제 드라마의 내용은 원작 소설과 다르게 각색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원작을 왜곡했다기 보다,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선의 각색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소설은 소위 '전지적 관점'에서 스토리가 전개되어서 각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상태가 좀더 쉽게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인물은 주인공 '선자'의 큰아들 '노아'였습니다. Charles Dickens의 소설을 사랑하는 영문학도였던 '노아'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그것으로 인한 비극적 선택이 가슴 아팠습니다. '노아'의 마지막을 너무나도 소박하고 담담하게 표현해서, 오히려 와락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In the morning, Hansu phoned her. Noa had shot himself a few minutes after she's left his office." 1963년 헤어졌던 '노아'와 '선자'가 1978년에 다시 만나는 장면을 다루는 Book III의 8장은 이렇듯 담담하게 끝납니다. 그리고 작가는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1년 뒤 1979년의 스토리를 이어갑니다.
소설의 제일 마지막인 Book III의 21장 "Tokyo, 1989"에서 또 다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장차 소설을 읽을 분들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여하튼,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에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제서야 소설의 첫 문장이 다시 떠올랐고, 그 말의 의미가 마음 속 깊이 뼈저리게 공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