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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VS 할, 머니

머니, 머니만 쫒는 세상에 할 , 머니도 있음을 기억한다





by오진이의 문화가 꿈 문화 가꿈Apr 22. 2025




손녀는 3월부터 동네 어린이집이 아닌 엄마 직장 안의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삼월 한 달은 새로운 공간,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과 처음 만나는 적응기다. 낯선 환경과 친해지는지라 첫째 주는 30분, 두 번째 주부터는 한 시간, 두 시간씩 점점 늘이며 점심까지 먹고 마지막 주차에 이르러 낮잠 자고 간식도 먹으며 종일 적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있다.

25개월 차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할 줄 아는 사회적 동물인지 새벽부터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아프거나 투정 부리는 일 없이 잘 따라오고 있다. 오히려 일찍 하원하고 나랑 어떻게 재미나게 노느냐가 그날의 과제이다.

오전에 등원하고 오후에 하원하기까지 빈 시간 동안 나는 손녀와 함께 놀거리 정보를 찾는다.

AI앱을 통해 검색하기도 하고 예정된 공간에 미리 가보면서 오고 가는 동선부터 놀이 프로그램까지 확인하며 계획을 짠다. 서울시 DDP 안에 있는 디키디키부터 뚝섬 자벌레 건축물 안에 있는 공공 키즈카페까지 서울시 전역의 키즈카페를 경험해 보는 도장 깨기도 하고 있고, 영유아 책이 많은 전문 도서관을 즐겨 찾아가곤 한다.

그런 와중에 직장 어린이집 인근 아파트에 멋진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보다 영유아도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크기부터 놀이시설까지 설계된 놀이터였다,

‘오호 오늘은 저기서 놀다 가면 좋겠군!’ 점찍어 놓았는데 접근하는데 실패했다.

강남구 신축 아파트단지인 그곳엔 입주민이 아닌 이상 접근이 불가했다. 난 높고 똑같은 아파트가 싫어서 붉은 벽돌색 빌라 단지에서 20년 이상 살았고, 아파트 거주 경험이라고 해봤자 구축에서만 살아본 터라 아파트 단지에 접근 자체가 금지되는 철옹성같이 굳게 닫힌 아파트단지가 기이하게 다가왔다

워낙 험악한 세상에 위험한 사회라 안전을 위한 최소의 장치는 이해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안전장치 덕분에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다. 신축 아파트 경우 단지 밖과는 담을 쌓고 지내지만 아파트 단지 안의 커뮤니티 시설은 발달 되어 있다.

수영장 등 체육시설부터 미팅룸, 게스트 룸까지 입주자만이 사용하고 확인을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개인 재산이므로 당연한 재산권일 수 있다. 그러나 놀이터 같은 공공시설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아파트 재개발이나 리모델링하는 경우 용적율을 비롯 여러 가지 조건을 완화해 주면서 기부채납을 통해 공공공간을 조성하고 있는데 그런 공간이 입주민 전용공간이라면 본 취지를 퇴색하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내가 살던 곳의 놀이터도 여느 놀이터보다 오래된 등나무 벤치며 요즘엔 보기 어려운 모래 놀이터가 있어서 다른 동네 아이들에게까지 인기가 좋았다. 게다가 버스 정거장이 빌라 단지 후문으로 이어져 인근 주민들이 마치 길처럼 다니곤 했다. 일부에선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입주자대표회의 안건으로 올라오지는 못했다. 이웃 간에 그 정도는 양해하고 다 같이 이용하며 살아도 된다는 정서적인 합의가 내남없이 공감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지난 3월17일자 한국일보에 올라온 기사가 말해준다. 기사 헤드라인과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국공립어린이집을 들여와? 거지야? 맞벌이 부모 눈물짓게 한 ’혐오공화국‘

발단은 교회가 운영해 온 민간 어린이집이 폐원 예정이니 종로구 모 아파트 단지 안으로 이전하도록 도와달라는 민원에서 출발했다. 구청 측은 인근에 50명 남짓한 영·유아가 살아 어린이집 수요가 있다는 판단으로 "일단 민간 어린이집을 아파트로 이전한 뒤 국공립 전환 절차를 밟겠다"고 제안하였다.

해당 아파트단지의 입주자대표위원회는 세 차례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 의견을 수렴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심지어 주민들 가운데 ’단지에 국공립어린이집이 생기면 저소득층, 장애인, 다문화가정 애들도 올 거 아녜요?"

"(일·양육을 둘 다 하는 게 힘들면) 워킹맘을 때려치워!"라는 폭언이 쏟아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다들 사유재산권을 강조하는데 공유재산법 내 기부채납을 통한 공유공간에는 건축을 통해 사적으로 취한 이득에 대한 공적 환원을 하라고 만든 아름다운 양보의 정신이 담겨 있다. 용적율 완화 및 기준 완화 등으로 아파트 건립 시 받은 혜택만큼 그 이익을 독식하지 말고 이웃과 최소한의 이익을 공유하고 사회적 가치가 생성되도록 공간을 활용하라는 취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어린이집은 대체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폐원했고 어린이집 학부모 중에는 그 아파트단지를 떠난 주민들도 있다고 한다.



반면, 일본에서 아들을 보육하고 있는 영화감독 이길보라작가는 자신이 어린이집을 선택하는데 두 가지 기준을 적용했는데 하나는 집과의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아래의 문구를 읽고 해당 보육원으로 결정지었다며 SNS에 공유했다.

보육원 안내 리플렛 안에 연장보육, 급식과 같은 기본정보와 함꼐 장애아동 보육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씌여 있었다.

‘장애나 발달의 지연이 있는 아이와 다른 아이가 같은 보육원에서 함께 생생하게 생활해 함께 자라 풍부한 인간성을 기릅니다’

‘대상으로는 가정에서 보육할 수 없는 아이로 심신의 장해나 발달의 지연에 있어 집단생활에 친숙해짐으로써 발달이 족진된다고 판단되는 아이입니다’라는 문구가 있어 장애아동의 입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보육원으로 기꺼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2006년 서울문화재단 본관 청사가 청계천 9가로 이전하며 리모델링을 했는데 그 때 컨셉이 ‘길이 되는 문화’였다. 당초 사면이 벽으로 막힌 서울시 건물이었는데 1층 경우 앞뒤의 벽을 터 길이 되게 하였다. 덕분에 동네 분들이 청계 9가 대로변으로 나설 경우 건물을 빙 돌아서 가지 않고 바로 뒷골목에서 대로변으로 다닐 수 있었다.

서울문화재단이 추구해야 하는 문화는 경계를 짓고 구분을 짓고 벽을 쌓은 것이 아니라 경계를 허물고 구분을 넘나들며 벽을 무너뜨려 서로가 다른 서로에게 무시로 오고가며 섞이고 기대고 어울리며 나누는 문화였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열어 처음으로 뜨는 화면엔 온통 머니 머니, 부동산 투자 등등 돈으로 환산되고 돈으로 사람을 구분 짓는 정보로 홍수를 이룬다. 오죽하면 OECD보고서에서 한국은 황금 티켓 증후군에 걸려 있다고 할 정도다. 극심한 경쟁에 온 사회가 불안과 혐오로 폭발 직전이다.

반면, 최근 들어 말이 부쩍 늘어난 손녀는 나를 ‘머니 머니, 할머니’라고 리듬감 있게 부른다.

손녀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래 머니 머니 중에 가치있는 것은 할, 머니지. 어린 니가 어찌 그리 아나? 싶었다.

아무리 자본이 지배하고, 많고 적음에 따라 구분 짓고 구별하는 세상이더라도 할,머니라는 ‘사람’의 존재가 있어 베풀고 나누고 서로 달라도 포용하는 문화가 살아 남을 수 있다,

외국어 등 교육은 선행학습하고 이중언어, 삼중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극성이면서, 살아가는데 꼭 배워야 하고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이중 문화, 다문화 등 나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엔 왜 그렇게 인색하고 폐쇄적인가?

환대는 문화도시 비전에 적혀 있는 문구가 아니다.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개개인의 실천이다.




*한국일보 유대근 기자의 0317 기사 및 이길보라 작가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일부 발췌,

참조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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