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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Oct 30. 2020

자아에서 타자로


우연히 좋은 조언을 받았다. 자아에서 타자로 옮겨가라, '나'에게서 '너'로 확장하는 글쓰기를 추구해라. 이를 위해 삶의 시선을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라. 한병철과 에리히 프롬이 강조하던 자아의 소멸과 타자를 향한 피투, 이슬아 작가의 강의에서 나는 같은 말을 들었다.


분명 나는 그것이 옳음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지는 않고 있었다. 비대한 자아 안에서 늘 허덕인다. 폭풍의 눈에서, 나를 집어삼키려는 자의식을 바라보며 달아날 궁리와 함께 흔들렸다.


그런 와중이기에 그녀의 조언이 나를 관통했을 것이다. 자의식이 극한으로 과잉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식하나 불가능하다. 글과 사유의 주제가 늘 나이기 때문이다. '나'를 더욱 탐구하는 대신 '나'가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게 맹점이었으나, 전혀 그러지 못해왔다. 그걸 이제야 느낀 스스로에게 탄식했다.


내가 적어온 건 글이 아니라 꺼림칙하고 안쓰러운 자아의 파편이었을 뿐이다. 외부를 바라보아야 함을 이성으론 알았으나 행위론 옮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과잉이었다. 결국 나는 몇 년 동안 같은 운동장을 빙글빙글 돈 것에 불과하다. 내가 삼키려고 노력했던 고뇌와 불안, 변화와 격동은 모두 제자리걸음의 일부에 불과하다. 강도의 오르내림만 존재했을 뿐, 나는 늘 같은 상태에 머물렀다. 자아에 갇혀있었기에 발전 또한 불가능했다.


연인에게 버려질까 두려움에 떠는 모양새가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던 이유도 아마. 감정 면에서도 나는 거의 치유되지 않았다. 감정은 여전히 구덩이 안에서 혼란한 그대로이다. 병든 자아 안에서 사유를 지속하더라도 멀쩡한 결론과 해결책이 나올 리가 없으니, 이성을 가꾸기 위해 철학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 쓰레기 더미를 파헤친들 진주를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꼬인, 우울하고 불안한, 그렇기에 회의적인 인간. 길을 거닐며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을 속으로 폄하했다. 대화에 깃든 피상성을 혐오하고, 스무 살 대학생들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에서 공허를 들었다. 애써 공허를 발견해 마음에 주입했다. 역시 의미 없는 주제들뿐이야 하는, 열등한 자신을 치켜세우기 위한 더러운 마음가짐. 그런 식으로 열등감에게 먹이를 주어왔다. 그렇게 나는 세계, 윗사람, 선임과 아버지상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반감들을 키워온 것이다.


우울을 사랑한다는 변명하에 세계를 올곧게 바라보지 않았다. 시야는 난시처럼 비뚤어졌다. 실망과 비난과 체념이 일그러진 마음 안에서 반복되었다. 누구를 해 입히긴 싫어서 혼잣말과 자기 검열만 되풀이했다. 애초에 전제와 배경부터 틀려먹은 일임에도 알지 못했다. 우울에 잡아먹혀 움직이진 못하면서도, 죽기는 싫었다. 그래서 게으르고 무기력한 삶을 실존주의와 니체에게 부여받은 의지 안의 삶이라는 허영 가득한 말로 포장했다. 


사실 지금도 죽기는 싫다. 여전히 죽고 싶지 않다. 불안만큼 강한 생명 욕이 있다. 죽음 충동보다 훨씬 강하여 침식되지 않는 빛. 불안에 의해 왜곡되어온 힘, 그것을 지니고 있다. 엄마의 끝없는 사랑 덕인지도 모른다. 우울하여 가만히 누워있음에도 끝없이 나의 몸 위로 뿌려지던 사랑은 팔에, 다리에, 어깨에, 눈에, 가슴에, 목에, 성기에, 뒤꿈치에 스며들었다. 덕분에 나는 죽음을 바라지 않고 생을 향해 강아지처럼 달려올 수 있던 것이다. 카뮈가 삶의 원천으로 삼은 알제의 태양처럼, 나의 마음에도 빛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그건 엄마로부터 흘러온 것이었다. 자아의 고백에서 왜 이런 말이 튀어나온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살아간다면 더 나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로 시작하고 나로 끝나는 글은 조촐하고 비루하다. 글을 인생에 대입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방식을 어떻게 하면 몸에 익힐 수 있는지 이슬아 작가에게 들었다. 자아의 서술을 의식적으로 치워둘 것이다. 눈을 밖으로 돌려 엄마, 연인, 친구들, 그리고 길에 머무르는 세상의 일부들에게 시선을 앉힐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에게서 벗어난다. 그런 걸 행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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