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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Mar 23. 2020

꿈은 클 필요가 없다

꿈은 작든 크든,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

큰 꿈을 버리고 작은 꿈을 품어야 한다. 인생을 걸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큰 꿈을 가지라고들 한다. 포부는 크게, 이상은 높게. 그런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싫었다. 지금도 싫다.


내가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강요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둘째, 부담스럽다.


'꿈꾸는 대로 된다', '생각대로 된다' 등의 말을 좋아하고 그 말에 공감한다.


사회에 나와 20여년을 생활하다 보니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영성을 믿는 사람들은 진실하고 순수하게 어떤 생각을 가지면 우주의 에너지가 그 생각 주위에 모여서 그 생각이 실현되도록 돕는다고 말한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더라도 어떤 생각을 가지면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마치 씨앗을 심고 물을 주듯이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작은 아이디어 조각을 모아가게 된다.


머리 속에 생각 씨앗을 품고 있어서인지 주변에서도 계속 그 씨앗과 관련된 것들이 눈에 띈다. 그것들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머리 속에 그것과 관련된 생각을 넣어두지 않으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크게'라는 단어와 그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에 있다.


꿈은 커야 한다. 원대한 꿈을 가져라. 꿈의 크기가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


이 말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커야 좋은 것', '다른 사람들보다 작으면 안돼', '남보다 더 크게'.  이런 뉘앙스가 느껴진다.


'존재'를 넘어 '크기'를 생각하면 '비교' 의식이 들어간다. 꿈이 작으면 졸지에 작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평가가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초라하게 비치지 않을 근사한 꿈을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큰 꿈을 가지라는 말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라는 의미다. 그것은 꿈꾸는 사람의 최선을 격려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누구와 비교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그 깊은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느껴지는 뉘앙스는 어쩔 수 없는 '비교'와 '평가'다.


셋째, '큰 꿈'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자괴감'이 싫기 때문이다.


원래 이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그 간격이 클수록 실망감은 커지고 그 갭을 좁히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하게 된다. 실망이 누적되면 화가 나고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진다.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에게 '작은 꿈'을 갖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소리 없이 큰 포부를 강요한다. 애초에 작은 꿈을 가졌으면 만족했을 텐데, 그 무언의 압력 밑에서 만족은 점점 멀어진다.


20대 때는 몰랐다. 꿈을 크게 꾸지 못하는 나를 '못났다'고 여겼다. 30대 때는 큰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늘 나를 탓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큰 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40대가 지나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나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그랬다.


나는 이제 분명히 안다. 원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큰 꿈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언제 행복한가? 무엇을 얻는 순간 행복한가? 만약 그렇다면 행복한 순간은 평생에 서너번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몇십년을 살면서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고지를 넘어 도달해야 하는 마일스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다. 마음에 불안이 없고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상태가 행복이다. 우리는 매 순간 행복을 느낄 수도 있고 성인이 되어 단 한번도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순간을 느끼고 음미할 때 행복하다. 질주하는 삶에는 스릴과 쾌감은 있을 지 모르지만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쾌감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계속 추구한다면 평생 질주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앞서나가는 것 같고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달리면서도 계속 불안하고 속상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달리기를 멈추고 주저 앉아본다. 그러자 그동안 있는 지도 몰랐던 나무와 꽃, 풀, 구름이 보인다. 계절의 변화도 느껴지고 가족들의 표정도 보인다. 내가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살아 있다는 것'을 음미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게 된다. 이 고요하고 평안한 마음 상태가 행복이다. 그리고 이 상태는 질주 속에서는 얻지 못한다.


큰 꿈을 버리고 작은 꿈을 품어야 한다. 인생을 걸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신기루 같은 목표만 쫒는다면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행복하지 않다. 그 꿈이 너무 커서 인생을 통째로 걸어야 하는 것이라면 평생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다 불태우고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꿈을 쫒지 않겠다. 평생 단 한번 느낄 수 있는 극강의 행복을 포기하겠다. 그 대신에 손에 잡히는 평화와 소박한 만족의 순간들을 매일 음미하는 쪽을 택하겠다.


꿈은 작든 크든,  자체로 소중하다. 결코 클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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