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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pr 01. 2020

무조건 네 편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객관적인 척' 했지만 사실은 잘 몰라서였어

부족했겠지만 그건 엄마의 최선이었어


아이가 태어나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단다. 에고가 발달하기 전인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정말 천사처럼 예쁘고, 부모는 그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는 말이야. 좀 슬프지?


그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야. 아이는 그렇게 커 나가는 거고 그 과정 속에서 어른이 되어 가야 하니까.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부모가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엄마, 아빠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던 그 눈빛에 자기 주장과 고집이 들어가면서 부모는 숭배의 대상에서 협상의 대상으로, 어떤 시기에는 짜증과 원망의 대상으로 변해버리니까.



너는 수학을 잘 못했지. 우리 사이에 수학 때문에 일어났던 그 많은 소동과 해프닝을 생각해봐. 수학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어. 수학시험을 봤다는 사실을 감추거나 시험지를 숨기거나  시험 점수를 부풀려 전달하곤 했지.


난 속이 타 들어 가는 것 같았어. 시험점수 때문이 아니라 네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지. 사실,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단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엄마가 속상했던 건 특별히 도덕적 기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아마 이런 마음에서였을 거야.


‘이렇게 노력하고 희생하는 나한테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이렇게까지 해 왔는데, 감히 어떻게!’


아마, 그 때부터였을 거야. 네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무조건 네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건.  


엄마는 사람을 대할 때 객관적인 태도, 공평무사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그건 아마 외할머니의 영향일 거야. 외할머니는 자식 일이든 무슨 일이든 '할 말을 해야 하는' 분이었거든. 하지만 오해는 마라. 그 시대 어른들은 대체로 그랬으니까.  


자식의 못난 면을 보면서 감싸주거나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기보다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너는..'이라는 말을 꼭 하셨지. 내가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면 "싸고 돌면 뭐 하냐? 객관적으로 봐서 그런데. 객관적인 게 중요한 거야. 그래야 발전이 있지"라고 쐐기를 박곤 하셨어.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의 외할머니가 그런 스타일이셨어.
 
어렸을 때는 외할머니의 말이 옳은 줄 알았어. '모든 일에 객관성을 유지한다'. 그럴듯하지 않니? 그래서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되풀이되는 말과 행동은 의식에 스며들기 마련이거든.

 

하지만 그때는 몰랐어. 외할머니의 그런 말과 태도가 엄마 가슴에 못이 된 줄은.



엄마는 늘 외할머니를 무서워했어. 문제가 생겨도 털어놓지 않았지. 털어놓으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전에 엄청난 비난과 비판 세례를 감수해야 했겠지. 아마 너도 엄마의 비난과 비판이 싫어서 시험 점수를 감추고 거짓말을 했던 거겠지?


육아책을 공부해가면서 키운 소중한 너한테, 외할머니와 같은 방식으로 똑 같은 상처를 주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 ‘아이 마음을 배려하는 좋은 엄마’라는 건 허울뿐이었고 결국은 나쁜 엄마가 되어버렸다는 자괴감 때문에 정말 괴로웠단다. 낮에는 너한테 소리쳐서 괴로웠고 밤에는 그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해서 숨죽여 울었지.


그런데도 엄마는 시험 점수에 초연할 수 없었어. 왜냐면 그게 네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어. ‘너를 위해’ 누군가는 악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퇴근을 늦게 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그 악역을 떠맡아야 했지.


네가 수학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건 내가 화를 내고 혼낸다는 되는 게 아니었는데. 그땐 그걸 몰랐어. 모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조금 덜 나이스한 엄마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거지. 아마 많은 엄마들이 이런 생각으로 같은 실수를 저지를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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