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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pr 01. 2020

30년 전의 엄마처럼 상처받게 해서 미안해

상처받은 네 얼굴은 30년 전 엄마가 외할머니 앞에서 감췄던 바로 그 얼굴이었어


엄마는 서른이 넘어서 아기 엄마가 되었잖니. 육아에 문외한이었기에 육아책을 많이 읽었단다. 책들은 내용이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된 메시지가 하나 있었지.

 

'엄마는 무조건 아이 편이어야 한다'라는 것. 

 

네가 아기였을 때는 그 말이 당연하게 느껴졌단다. 너무 예뻤고 본능적으로 '특별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었거든.


그런데 네가 커가고 나쁜 습관이 보이고 자기주장이 생기면서 조금씩 '이게 아니지 않나? 가끔은 객관적으로 지적해줘야 하지 않나?'라는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왔지.
 
그래서 조금씩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시작했던 같아. 너는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지. 그러다 반 아이들과 말다툼을 한 어느 날, 너는 집에 오자마자 잔뜩 화난 목소리로 그 아이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어.
 
나는 네 얘기가 끝나자마자 "혹시 니가 잘못한 거 아냐?"라고 말했지. 넌 그 말에 격렬하게 저항했어. 화를 내면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지. 전에는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 엄마는 꽤 놀랐단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두세 번 반복되면서 넌 조금씩 무언가를 감추기 시작했어. 아니, 전처럼 시시콜콜하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한테 다 털어놓지는 않았지.


당황스러웠단다.
 
난 '탐정'이 된 것처럼 너의 태도가 변한 이유를 찾아 네 마음을 헤매기 시작했지. '사랑하는 엄마의 객관적인 충고를 왜 받아들이지 못했지?’, ‘왜 그 말에 그렇게 화가 난 거지?' 이렇게 감정을 더듬어 들어가면서 조금씩 네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어. 너한테 객관적인 엄마는 필요 없었던 거야. 넌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엄마를 원했던 거지.
 
그때 깨달았단다.


상처받은 네 얼굴은 바로 30년 전 엄마가 외할머니 앞에서 감췄던 바로 그 얼굴이라는 것을.


30년 전, 엄마도 상처받았었어. 하지만 아이였기 때문에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외할머니의 말이 맞다고, 잘못은 나한테 있다고 생각했었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상처를 너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던 거야.


아마 그때부터 였을 거야. '주관적인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 네가 잘못을 저질러도 그 잘못된 행동을 너의 전부로 보고 너라는 아이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려고 했어. 특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무조건 네 편을 들었지(이건 인정하지?). 어른들 앞에서도 되도록 네 칭찬을 많이 하려고 했어. ‘OO이가 책임감도 생기고 어른스러워졌다'고.


무엇보다, 친구들 앞에서는 절대로 네 체면을 깎지 않았어.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아이인 것처럼 행동했지.


이렇게 하기 위해 용기가 조금 필요했다는 거 아니? 왜냐하면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말처럼, 남들 앞에서 자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건 좀 본능적이고 유치한 짓처럼 느껴졌거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니? 이런 엄마의 행동을 네가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네가 부끄러워하면서도 내심 흐뭇해하는 게 느껴졌거든.



'그러면 됐지'


여전히 잘못된 행동, 나쁜 습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이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듯, 콩깍지가 씌워진 것처럼' 행동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어서 그런지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점점 더 참을만한 것으로 느껴지더라.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네가 더 행복해하고 엄마와 더 잘 지낼 수 있으면, 그러면서도 네가 자라야 할 모습으로 자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


'주관적인 엄마'로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단다. 주관성이야말로 모든 관계의 출발이자 핵심이라는 것. 사람, 특히 가족 간의 관계에서는 ‘공평함’이나 ‘객관성’보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


이걸 깨닫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건, 아마도 어릴 때 자연스럽게 체득한 게 아니라 다 커서 책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기 때문인 것 같아.


그렇다고 모든 게 외할머니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란다. 외할머니가 ‘객관성’이라는 갑옷을 입게 된 건, 그게 맞는 거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키워졌기 때문일 거야. 외할머니가 '객관적이고 냉정한 지적'을 쏟아냈던 건 분명 ‘아이를 위해서’ 였어. 물론 냉정함에는 실패하고 감정의 폭발로 이어질 때가 자주 있었지만.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이성과 감정을 완전히 분리하는 건 쉽지 않단다. 특히 부모-자식처럼 본능적 사랑, 보이지 않는 이해 관계, 지나친 기대가 한데 뭉뚱그려진 관계에서는.


어쨌든 이런 저런 실수를 하고 나서야 엄마는 너를 무조건 편애하기 시작했단다. 가족이란 게 그런 배타적 관계의 출발이라는 을 깨달았으니까.


이제 누가 엄마한테 콩깍지가 씌웠다고 하면 이렇게 대답할 거야.


“콩깍지는 좋은 거야. 그것이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의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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