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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y 11. 2024

잠시 머물다 갈 곳

아이와 단둘이 미국 정착기

미국에 와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며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을 발견하기도 지만, 나 자신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중 하나는 '내가 이렇게 잘 굽신거릴 수 있는 사람이었나' 하는 것이다. ㅋ


사실 미국에 오면서 했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가 '내가 과연 마이너리티의 삶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모범생으로 살았기에 누구에게 싫은 소리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커서는 조직에 속해 있기는 지만 실상은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거나 갈등을 겪은 적도 없다. 한 마디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성경식 표현으로 하면 '목이 곧은 백성', 곧 고집이 세고 교만한 사람쯤 되겠다. 그런 내가 미국에 와서 영어도 못 하면서 동양인 소수자로, 이민자로서의 삶을 견딜 수 있을까?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 모두;;; 적잖이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나는 미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세컨더리 룸으로 끌려가면서부터(버지니아, 첫날) 지금까지, 공항 경찰이든 마트 직원이든 dmv 담당자든 가릴 것 없이 만나는 온갖 사람에게 방긋방긋 웃고 "하이, 땡큐, 쏘리"를 연발하며 굽신거리고 있다. 그것이 기분 나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아주 가끔은 힘 빠지고 서러운 날도 있지만(코스트코에서 울다) 대부분은 "오늘도 굽신거리기 스킬이 1단계 상승하였습니다" 하고 깔깔 웃으며 즐기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 자신을 신기해하면서.


왜냐하면 미국은 내가 잠시 머물다 갈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영원히 살지 않는다. 기껏해야 10개월 정도밖에 안 되는 생활을 마치고 나면 나는 다시 평생 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면서 굽신거리는 입장이라 해도 이것은 나의 영구적인 지위가 아니다. 내가 평생 살 곳에서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굽신거릴 필요도 없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 나는 (아마도) 동네에서 가장 싼 아파트에서 별 세간살이도 없이 살고 있지만, 집에 손님 초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가 와서 내 집을 보고 '왜 이렇게 허름해? 왜 이렇게 가진 게 없어?'라고 생각한다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여기는 잠시 머물다 갈 곳이기에. 한국에 옷과 화장품들을 다 두고 오는 바람에 거지꼴로 밖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럽거나 남의 시선이 의식되지도 않는다. 이 모습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곳에서의 짧은 삶을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기고 대충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매일 나를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내게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120% 만끽하며 산다. 나는 여기서 이십여 년만에 다시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한국에서보다 훨씬 싼 값에 매주 필드에 나가고 있으며, 여러 인연으로 만난 좋은 분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현재를 즐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고,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 이후 계속될 나의 평생에 귀중한 자양분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내가 돌아갈 곳, 영원한 본향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사는 존재로 지으셨다.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유한한 삶은 죽음 이후에 이어질 영생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마치 나의 미국생활 10개월처럼.


내가 미국에서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존귀한 대접을 받든, 누추한 집에 살고 기운 옷을 입고 남의 눈치를 보며 굽신거리든 이 생활은 얼마 안 가 끝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은 덧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의 것들 때문에 기뻐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천국이라는 본향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이후의 영생을 결정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이루었냐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했는가, 얼마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였는가, 얼마나 예수님의 성품을 닮았는가일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자. 이 땅에서 우리의 모습이 어떻든,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왕의 자녀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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