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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Oct 10. 2023

휴버트 로스와 인생은 보물찾기

[The Laws of Jazz/Flute by Laws], 1964

어제 새벽엔 엄청 오랜만에 누워서 영화를 봤다. 조금 쉬는 것 같으면 마음이 괜히 불편해서 볼까 말까 여러 번 마음을 접었던 영화였다. 어제는 한껏 바람을 쐬어 기분이 좋았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맥주를 마셔서 그랬는지 될 대로 되라 싶었다.


마음이 편할 땐 세상에서 제일 천국 같은 침대 위에서 제일 익숙하고 편한 자세로 느근느근 영화를 봤다. 플룻 앨범 감상문에 왜 이 얘길 먼저 하고 있냐면 본 앨범의 최애 트랙인 2번 <All Soul>의 바이브가 그 시간과 참 잘 어울렸기 때문이고 어젯밤 이번에 다시 학교를 다니면서, 또 저번주 수요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휴버트 로스의 앨범을 들으면서 올라오던 감정의 정체를 찾아서다.


  ‘아 내가 이래서 예술을 하기로 했었지!’


그러니까... 보통 너무 좋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될 정도로 좋으면 지구를 부셔버리고 싶거나(a.k.a. 지구뿌셔) 어린아이처럼 우왕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은가? 요즘 종종 드는 기분이 그렇다. 모국어여서 크게 애를 쓰지 않아도 말이 통하는 세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감각과 직관을 주된 언어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곁에 있다니. 이런 세상에선 더 솔직하고 깊게 느끼며 살아갈수록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창 상담을 받던 시절에 선생님이 그랬다. 직관보다 이성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회에 훨씬 많은 건 사실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정은씨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타고 태어난 기질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어요. 그런 사람들 만이 세상에 줄 수 있는 분명한 가치가 있거든요. 그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짚어주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성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선생님 같은 앨범이어서 고마웠다.


나는 변덕도 심하고 욕심도 많고 세상에 궁금한 것도 많다. 그래서 삼십을 코앞에 둔 시점에도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삶의 확실함과 불확실함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듯 이십대를 보내고 나서야 스스로에 대한 분명한 퍼즐 하나를 겨우 주울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음악과 예술을 근간으로 내 삶을 확장해 나가리라는 사실이다. 이를 잃어버린 내가 얼마나 무채색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을 보낸 덕분이다. 휴버트 로스와 같은 사람들이 제 표현을 통해 남겨놓은 에너지를 들으며 나는 조금 덜 외로이 세상을 살아간다. 이런 작품들을 계속 만날 수만 있다면 앞으로 내 삶은 얼마나 더 충만해질까? 편의점에서 처음 먹어보는 까까나 맥주를 샀는데 취향에 딱 맞아 떨어졌을 때의 기쁨 정도를 가끔 선물처럼 받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귀한 보물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탐험가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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