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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시 세끼

진실게임

by 김이도

어렸을 적엔 종종 진실게임을 했다. 초등학교 수련회 때, 소등 후 선생님의 눈과 귀를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소곤소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던 시간들을 기억하시는지. 그렇다면 당신은 제 또래 세대시군요. 아무튼 점심 먹고 학교 운동장을 돌다 심심할 때, 쉬는 시간 반복해서 하던 공기놀이가 지겨울 때, 한 친구를 대하는 친구의 태도가 묘하다는 것을 당사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하나둘씩 수긍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한데 모여 진실게임을 열었다. 쉬는 시간 10분을 최대로 활용하겠다는 듯 긴박한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지던 수많은 진실게임들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진실을 듣기 위해서는 나의 진실도 함께 털어놓아야 했는데, 서로 털어놓은 진실에는 사건의 크기와 솔직함의 밀도에 따른 나름의 경중이 느껴졌다. 우리는 진실의 무게를 주고받으며 직관과 직감을 연마하고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 속 관계성과 벌어지는 사건들을 유추하는 추리력과 우리가 속한 사회를 조망하는 힘을 키워갔다.


가장 재미난 진실의 순간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 털어놓는 걸 들은 직후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어떻게 이렇게 늘 짜릿할까? 친구의 눈에 비친 상대의 매력적이고 멋진 면에 대해 듣는 시간은 아마 여든이 되어도 흥미로워서, 그쯤 되면 자연적으로 충분히 노화되었을 인간의 청각 세포도 팔팔한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다. 아무튼 서로의 좋음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떤 감각의 바운더리 속에 있는지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각 감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확장되었다. 잘못짚었다 다시 수정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감정들에 대한 내성과 근력도 함께. 솔직한 감정을 공유하는 공동체는 인간 성장의 측면에서 실로 다양한 이점이 있다.


어른이 된 뒤엔 진실게임을 하지 않는다. 서로의 진실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이 서로의 삶의 방향성과 현재 닿아있는 삶의 구간에 따라 자연스레 나뉘어서다. 대신 사회가 말하는 보편적인 어른으로서의 기대를 다하여 적응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적당한 진실의 지점을 상대와 상황에 따라 바꿔나가야 함을 깨닫는다. 어떤 사람들과는 이런 대화를, 저떤 사람들과는 저런 대화를 원만히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텐데 쉽지가 않다. 물에 띄우면 동동 뜰 것만 같은 적당한 시간들을 보내고 돌아오면 분명 유쾌한 시간을 보낸 것만 같은데도 실제로 밥을 며칠 굶었을 때보다도 더한 정서적 허기감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꼬르륵 소리가 날 기운도 없는 영혼에 좋은 힘을 불어넣기 위해 예리하게 포착된 감각들이 모여진 글을 허겁지겁 찾아 읽는다. 그럼에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거나 어딘가에 오늘의 심정을 토로하고 싶은 날에는 종이로 된 다이어리를 열어 혼자만의 진실게임을 연다. 허기감이 클수록 글자 하나하나를 힘주어 눌러쓴다. 진실의 경중을 따질 새랴 마구 토해놓은 단어들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적당히 잊어야만 살아낼 수 있었던 시간 새로 잊힌 나를 다시금 짐작해본다. 굵고 짙은 연필자국을 따라 쓰인 마음들을 속으로 따라 읽으며 생각한다. 아 맞다, 나 이런 애였지. 해가 갈수록 더한 것만 같은 이런저런 홍수 속에서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전에 스스로를 기억하는 방법도 연습해야 한다니. 어렸을 적엔 이 모든 게 누워서 떡먹기였는데. 어른이라는 단어를 붙인 뒤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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