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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시 세끼

Dave Solo Piano와 고백의 참맛

리 릿나워 & 데이브 그루신 with 이반 린스와 브라질 친구들

by 김이도

일 년이 지났어도 선명하다. 당시 한 프로젝트에 푹삭 절어있었던 나는 심신이 탈탈 털린 채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공연 예매 당시의 흥분은 어딜 갔는지,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오랜 사랑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마음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너 좀 너무한데,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며 스스로에게 감각을 더 열길 종용하길 절반, 다 됐고 피곤해서 얼른 집에 가 드러눕고 싶은 마음 절반이 치열하게 힘을 겨루다 보니 어느새 공연 중반쯤에 다다랐다.


데이브 그루신이 홀로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공연 시작 직전, 제작사 대표님께서 그의 건강 소식을 전해주셨던 게 기억이 났다. “데이브의 실연을 들으실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옆에 가족분들께서 와 계시는데요. 그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힘찬 박수와 환호를 주신다면 가족분들께도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커다란 대강당 무대 위 단독 조명을 받은 그의 체구가 더욱더 가녀려보였다. 데이브 그루신이 재즈사에서 얼마나 위대한 연주자인지 몰랐다면 그 모습은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할아버지가 그랜드 피아노 앞에 덩그러니 앉아 계신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날 내겐 그런 인상이었다. 첫 노트가 울리기 직전까지.


잠시 그간 들었던 조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아티스트는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이다.


“네가 보컬 전공처럼 노래를 잘할 수 있어? 피아노 전공처럼 연주를 잘할 수 있어?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서 마냥 테크니컬한 연주를 잘한다고 좋은 음악이 아니라는 거야. 그럼 뭐냐? 무대 위에 선 사람들은 청중에게 분위기를 선사할 줄 알아야 해. 공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바꿀 힘이 있다면 좋은 뮤지션이지.“


그건 바로 데이브를 말하는 문장이었다. 그가 첫 노트를 울린 순간, 내내 섞이지 못하고 겉돌던 정신이 한순간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순식간에 그가 만든 시공간 속에 빨려 들어갔다. 공기가 순식간에 묵직해진 걸로 보아 그렇게 된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하나로 합쳐진 거대한 시공간이 그의 연주를 타고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반짝이며 흘러가기 시작했다. 면허 딴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도로 위의 모든 자동차가 깜빡- 깜빡- 하는 비상등을 켜고 제한속도를 지키며 서로를 배려하며 달리던, 도로 위의 반딧불이 떼와 같은 풍경을 마주했던 순간. 매일 오가는 길 위, ‘정말 누구도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는다’며 아쉬워하던 차에 그런 일심동체의 풍경을 마주했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울렸다. 그날 그의 연주가 그랬다. 저마다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바쁜 그들을 한순간에 자신의 품으로 데려와 함께 흐르게 만든, 블랙홀처럼 강한 중력장을 가진 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무대 위 어르신은 더 이상 백발의 왜소한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재즈 피아노의 거장 데이브 그루신이 거기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힘에 영원히 끌려갈 수 있다면 생에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아. 나는 겨우 만나게 된 이 파장이 깨질세라 숨을 죽였다.


흐르는 연주 속에 푹 파묻혀 영원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그의 페달이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다. 하, 여기저기서 참아왔던 숨을 뱉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의 옆자리엔 공연 시작부터 틈날 때마다 무대 위 데이브를 향해 사랑을 고백하시던 아저씨가 계셨는데, 그는 이 연주가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탓인지, 아니면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깊은 인상을 넘치게 받아 고통스러운 것인지 온몸을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지진과도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곤 고함과도 같은 고백을 내지르는 것이다.


“으아아악!!!!!!!!! 데이브!!!!!!!(뼉뼉뼉뼉) 형아!!!!!!! 형!!!!!!!!! 사랑해요!!!!!!!!!!(뼉뼉뼉뼉) 알러뷰 데이브!!!!!!!! 알럽유!!!!!!!!!!!!!!!(뼉뼉뼉뼉) 돈 폴게릿 데이브!!!!!!!!!!!!!!!!!!(뼉뼉뼉뼉) 아이!!!!!!!!!! 러브!!!!!!!!! 유!!!!!!!!!!!!(뼉뼉뼉뼉)” 아이!!!!!!!!! 러브!!!!!!!!!!! 유!!!!!!!!!!!!!(뼉뼉뼉뼉)”


그는 마치 그날 하루 데이브만을 위한 사랑의 전사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압도적인 기백에 살짝 눌림과 동시에 자신의 감정에 그토록 솔직할 힘과 이를 거침없이 전달할 용기에 감명받았다. 나도... 나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손바닥 두 개를 끝없이 부딪치는 것만으로는 방금 전 당신의 연주가 나에게 무엇을 선사해주고 갔는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열렬한 박수를 치며 고백과도 같은 마음을 나직이 내질렀다.


“호우~!...(짝짝짝짝) 아이 러브 유 투 데이브~...(짝짝짝짝) 아이 러브 유~!...(짝짝짝짝)...“


잠시나마 삶의 외로움을 덜어준 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빌려 진한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동시에 묻고 싶었다. 그동안 음악과 함께한 삶은 어떠셨냐고. 나도 언젠가 당신처럼 품이 넓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살면서 이만큼의 인상을 선사해 준 연주가 몇 없었다. 기회가 닿은 김에 이 기억을 글로 남겨 사진첩처럼 열어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 년 전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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