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커피의 시대
“시장이 이렇게 변해가는게 맞나요?”
“이건 진짜 너무 거품이다”
“1kg 300만원이요? 저는 못합니다”
어제 파나마 에스메랄다 옥션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번달에는 BoP옥션이 진행되었습니다.
둘 모두에서 제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바로 “박탈감”이었습니다. 가격이 매년 제 예상보다 훨씬 올라갑니다. 올라갈것을 예상하고 예산을 책정하는데 늘 그 이상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이 “그만할까”
일본과 대만, 중국은 그런 시장이 있으니까 저렇게 비싼 커피를 구매하는 것이지. 한국은 안돼.
1잔에 10만원?
커피 하는 사람들끼리 마시는 것 뿐이지 않을까?
결국 우리끼리만 즐길 뿐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이것도 어느정도는 맞는 사실이지만, 올해 저는 성수점에 쇼룸을 오픈하면서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옥션의 뒤에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들도 있습니다. 저도 깊이 연루되면서 알게된 사실들이 있습니다.
먼저 파나마 옥션의 흐름 중 인상적인 것은 Lot 사이즈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사이즈를 줄이고 다양하게 하면 사람들은 각 Lot들에 애정을 가지게 되고 구매하기가 쉬워집니다.
옥션은 Lot별로 한 사람이 비딩을 하는 방식인데 1kg의 가격으로 비딩은 하지만 총 금액이 비싸지면 부담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1kg에 10만원인데 총 Lot사이즈가 300kg라면 바이어는 지불해야하는 돈이 3000만원입니다. 그리고 수입해왔을때 1kg에 10만원짜리 커피 300kg를 판매해야하는 부담감도 생깁니다.
반면에 1kg에 100만원인데 Lot사이즈가 10kg라면 총 금액이 1000만원이고 1킬로씩 나누면 부담감도 줄어들죠.
파나마는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기가막히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반영해버립니다.
솔직히 정말 특출난 몇가지 커피를 제외하면 올해 에스메랄다 옥션랏은 다 맛있었습니다. 사람의 취향에따라서 순위는 얼마든지 바뀔만큼 전체적인 퀄리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 미묘한 약간의 차이로 가격이 어떤 커피는 1kg에 100만원이고, 어떤 커피는 1kg에 1000만원이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게 맛으로 설득이 될 가격인가요?
예전에는 커피의 퀄리티로 납득이 되었습니다.
5000원짜리 커피 한잔이 있고 10000원짜리 커피가 있는데 만원짜리 커피가 훨씬 맛있다면, 한번쯤 드셔보실만하지 않으세요?
원래 이런 시장이었습니다. 근데 조금 더 맛있다고 커피의 가격이 100배 차이가 난다는게 설득이 되시느냐 말이죠.
이 커피들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구매한다고 해도 그 내면에 다른것들이 이제 존재하게 되는것입니다. 그 내면에는 수많은 심리와 증명들이 존재할겁니다.
”난 이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다.”
”일반인들이 마시는 커피와 내가 마시는 커피는 구별되었으면 한다.”
”맛이 궁금한데, 이 정도 돈은 쓸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소비자들도 파나마 게이샤를 마시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눠질수밖에 없습니다. 그전까지의 시장은 소득의 격차와 관계없이 조금 무리하면 누구나 마실수 있는 커피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니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커피를 마시냐구요?
“1잔에 10만원이요? 와… 진짜 싼데요?”
할수 있는 분들이 있더군요. 서울에는.
돈을 충분히 많이 벌면서, 문화에 관심이 많고 취향이 고급스러운 사람들은 때로는 스스로의 경험에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그들에게 돈은 퀄리티와 효율의 영역이 아니라, 나에게 만족감을 주고 배움을 줄수 있는지에 더욱 큰 의미를 가집니다.
하이앤드커피들은 마시는 목적이 카페인이 아니라, 경험에 있게 되는것입니다. 마시 고급 와인이 술에 취하기 위해 마시는게 아닌것 처럼.
그리고 이 옥션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시나요?
작년 BoP에서 롱보드 게이샤를 1kg에 500만원넘는 가격에 구매한 그 업체가 올해 에스메랄다에서 “니도”라는 커피를 1kg에 1000만원에 가깝게 낙찰 받아갔습니다.
”조지 하웰”이라는 미국 스페셜티 커피 회사이고, 그들의 뒤에는 억만장자가 스폰서로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마실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매년 찾는다고 합니다.
하이앤드 시장은 양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질적으로의 성장을 더욱 추구합니다.
커피의 맛을 아주 미세하게 좋게하더라도 해야하는 것이 이쪽 시장인것이죠.
이미 중국, 일본, 미국까지 “스폰서”들이 붙었습니다. 작은 로스터리들이 그 비싼 커피를 단독으로 낙찰 받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들이 그 자체로 부자가 아닌 이상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스폰서가 낙찰받는 사람들 뒤에 모두 붙어있습니다.
근데 이것이 기업들이 투자해서 수익률을 얼마를 만들어 달라는 식의 스폰서가 아니라. 고급 커피를 믿고 마실수 있는 로스터리에 부탁을 하는 느낌입니다.
”내가 돈은 얼마든지 낼테니 최고의 커피를 나에게 줄수 있겠어?” 라는 마인드로 돈을 씁니다.
로스터리가 낙찰을 받을수 있다는 의미는 내가 돈이 많다가 아니라, 나에게는 이 커피를 구매해줄 고객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는 길이 달라졌습니다. 카페인을 위해, 공간을 위해 마시는 커피가 아니라. 오로지 커피 한잔의 경험을 위해 마시는 커피
하이앤드 커피를 취급하는 사람들이 저가형커피를 굳이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브랜드도 하이앤드를 욕할 필요가 없다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가고자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죠.
저는 한잔의 효율을 생각하기보다 한잔의 질적 성장을 더욱 즐깁니다.
하루에 500잔커피를 만들수 있는 바리스타나 로스터가 아니라, 한잔에 100만원짜리 커피를 최상의 경험으로 만들어 줄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올해 에스메랄다에서 저는 두번째로 비싼 가격의 커피를 중국 업체와 함께 낙찰 받았습니다. ”바예”라는 2000m높이의 고도에서 생산된 커피입니다. 1kg에 400만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내추럴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기간테”도 한국 업체들과 함께 낙찰 받았습니다. 1kg에 200만원정도 됩니다.
누가 마셔줄지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됩니다. 여느 일본과 중국업체들처럼 스폰서가 없는 한국의 브랜드에게는 온전히 내가 나의 스폰서가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다시 대출을 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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