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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Dec 09. 2022

건축사사무소 5년 차

위기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사업을 하고 있으니 경기의 흐름이 직접적으로 체감된다. 일단 회사 전화가 울리는 횟수 자체가 줄어드는 것으로 바로 체감하게 된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관리를 잘하는 것이라고 앞선 선배들이 자주 말해왔다. 그래서 위기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체감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코로나에 이어 더 깊은 경기침체의 골이 시작된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H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하였다.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5년 즈음 지났을 때 처음으로 200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건축은 10년 주기로 부동산, 건설과 같이 위기가 온다고 정설처럼 있었기 때문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 정설과 같이 위기가 왔다. 그때 직원의 입장에서 위기가 체감되고 연봉이 동결되고 회사에서 업무상 통상적으로 쓰던 비용 영수증이 처리되지 않는 상황에 처했었다. IMF는 대학생 때 맞이하였기 때문에 몸소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직장인으로 바로 체감되었다. 첫 번째 위기는 약간은 어안이 벙벙한 그런 느낌이었다. ‘위기가 이런 것이고, 이렇게 다가오는구나.’ 더 깊게는 이렇게 내 회사생활이 끝나나 하는 위기감도 있었다.


그때 회사는 100명이 넘는 인원을 가진 설계사무소였는데, 위기를 아주 잘 넘겼다. 이전까지 민간 설계일로 수주의 대부분을 채우며 먹고살던 회사가 갑자기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아파트 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규모가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LH에서 고위급 임원을 모셔오고 다른 설계사무소에서 유능한 LH 아파트 관련 인원들을 스카우트하고 회사 내의 타 본부에서 잉여인력을 모아서 대대적으로 LH 아파트 현상설계를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금융위기 이후 1~2년 정도 감소한 회사의 매출을 이쪽에서 채워줄 수 있었다. 민간시장은 심각하게 냉각되어 있었지만, 공공기관의 설계업무는 체감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보통 때 보다 더 많은 일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감소한 매출을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부터 다시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회사는 다시 정상괘도에 올라섰다. LH 아파트 설계본부를 10년 정도 활성화하여 운영하다가 최근에는 다시 축소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물을 담아두는 저수지의 수문 Ⓒ권이철

위기는 사전에 말하고 오지 않는다. 어느 때 갑자기 온다. 그렇다면 언젠가 다가올 위기를 어떻게 넘어갈지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언젠가 올 예정인 위기를 무엇으로 넘을지 리스트를 준비해서 어떻게 할지 준비하고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17년 말에 회사를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2020년 초에 코로나 위기가 왔다. 개업 이후 민간 일과 공공시장을 모두 두드렸었는데, 민간건축설계과 공공미술이 매출의 두 축을 형성하였다. 코로나 위기는 심각하였지만, 나라에서도 돈을 많이 풀고 설계 일감을 만들어내서 경기를 떠 받들었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공공일을 받아서 하게 되다 보니 민간시장에서 부족한 매출이 채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도 회사와 집을 하나로 합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어 그 시기를 잘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2022년에는 코로나 위기를 넘기 위해 했던 일들이 더 큰 문제를 촉발하여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2000년 코로나 위기로 풀린 돈이 2021년 아파트 값을 끌어올리다 보니 전체적인 경제상황과 다르게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건설경기도 덩달아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파트 설계일도 많았지만, 아파트 값이 오르니 돈이 부족한 사람들이 단독주택으로 몰려들어 단독주택을 짓거나 리모델링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일 또한 많았다. 그러나 이것이 좋은 것인 줄만 알았는데, 코로나 위기가 사라지고 나니 시중에 풀린 돈은 독이 되었다. 풍부한 유동성이 촉발한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금리가 오르고, 공사비도 인플레이션에 올라타서 오르니 건설경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고 금리가 오르니 아파트 값도 떨어지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니 단독주택으로 눈을 돌렸던 사람들의 집을 짓고자 하는 욕구도 사라졌다. 당연히 건축설계 일도 급격하게 사라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항상 오르고 나면 내리막길도 있기 마련이다. 올해 초에는 올해만 넘기면 내년이 되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지금이 벌써 11월인데 계속 위기는 커져만 가고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강 자전거길. 달려가다 보면 언젠가 하늘이 보이겠지. Ⓒ권이철

얼마 전에 H사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이번에 H사는 CM 업역으로 확대를 하여 이 위기를 넘길 모양새이다. 항상 위기를 어떻게 넘을지 준비하고 기회를 보다가 그 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의 위기는 무엇으로 넘을 수 있을까.


첫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에 회사를 만들고 500만 원짜리 부산 프로젝트를 수주했을 때의 기쁨을 느끼던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의미가 있다면 시도해보고 기회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디자인하고 싶은지, 어떤 건축물을 설계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 만큼 중요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필수적인 것은 없다.


셋째는 위기가 지나고 다시 경기 활황이 왔을 때 많아진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회사의 기틀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다수의 인원이 근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언제라도 바로 가동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오래된 나무처럼 뻗어 나가자. Ⓒ권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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