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발견하는 순간, 드디어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너무 기뻤다. 열 달 동안 기쁜 마음이 그래, 절반 정도였다고는 생각한다. 나머지 절반은 불안과 불안과 불안. 음식을 하나 먹을 때도, 걸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아기는 괜찮나? 이거 먹어도 될까? 끝없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불안은 물론,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대학까지 16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운이 좋게 바로 학교로 가게 되었다. 학생으로 다니던 16년의 학교 생활, 교사로 다니던 11년의 학교 생활까지 나의 생활은 쉼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고, 또 한 명의 아이를 더 낳고... 그렇게 5년을 연달아 휴직하게 되었다.
5년이나 휴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안정적인 직장 덕분이었다. 하지만 기어코 5년을 연달아 쉬었던 것은 나의 성장과정 때문이었다. 맞벌이 부모님의 셋째 딸로 태어난 나는, 넷째인 동생과 함께 한동안은 어떤 할머니에게, 또 한동안은 어떤 아주머니에게 맡겨지거나 몇 개의 학원을 맴돌면서 엄마가 마치는 시간까지 떠돌아다니는 게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가! 나는 비록, 내 새끼라 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하루'라는 낱알이 끝없이 놓인 '매일'이라는 길고도 광활한 그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쏟기에 부족한 사람이었다. 육아휴직의 5년 동안, 나는 출산의 후유증 말고도 여러 가지 것들로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제 좀 숨 쉴만해서 그런가. 나는 카카오스토리에 기록해 두었던 그때의 기억들을 꺼내 놓고 싶어졌다. 이제 닫힌 공간이 아닌 여기, 브런치에 꺼내놓고 싶었다.
여기는, 나만의 호시우 역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