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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pr 23. 2024

헌 집 줄게, 새 휴대폰 다오

마침내 헌 집을 보내고 새 집을 받았다.


만 5년 만이다. 최근 1년간 특히나 조카들에게 원성(?)을 들었다.

"이모 이러다 눈 나빠져."

"이모, 제발 좀 바꿔."

"이모, 손가락에도 안 좋아."


다 알지만 이왕 살 거라면 최신형을 사고 싶었고 그러지 못할 바에야 그냥 쓰고 싶었다. 게다가 휴대폰에 관한 내 절대적(?) 신조는 이것이었다.


망가질 때까지 쓰자.


그런데 이 녀석이 도통 망가지지를 않았다. 물론 남들 보기엔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이었겠지만 겉모습과 달리 그럭저럭 혹은 겨우겨우 작동은 되었다. (배터리가 반나절이 채 되기도 전에 다 나가 버렸고, 휴대폰이 배터리 노후화를 나 대신 자꾸 걱정해 주며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긴 하였지만...)


문득 이 일화가 떠오른다.



둘째 조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할아버지와 나에게 '되도록 늦게 데리러 오라'고 당부를 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할아버지의 차 때문. 자기네 차가 새로 생기고 보니 우리 집 할아버지 차가 낡디낡은 차라는 것을 슬슬 깨닫게 된 것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을 향해) 핫. 저희 할아버지 차가 좀 낡았는데요 '작동'은 돼요."


하원하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어린이집 선생님께 이리 고백(?)할 정도였다. 할아버지의 차가 자랑스럽지 않았던 것처럼 조카들은 혹 이모의 휴대폰이 추레해 보였던 것일까? 만날 때마다 휴대폰 바꾸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물론 조카들의 잔소리는 내게 사랑이지만.)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너희가 이모 휴대폰 좀 새것으로 바꿔 주지 그래?"

자기네 엄마가 이리 말하자 한참 고민을 하더니 돈이 없다고 안 된다고 한다. 그러던 조카 하나가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모, 이모 생일이 언제지?"

"생일? ○월 ○○일."

"아, 그럼 내가 이모 생일 때 휴대폰 사 줄게."

"응? 정말정말?"


그 약속을 고이 받아 챙기며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다 양심상 나는 내 돈으로 휴대폰을 직접 사기로 하였다. (마음만 받았는데도 어찌나 따뜻하고 몽글몽글한지 그 순간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배터리 성능이 노후하니 서비스센터를 방문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계속해서 받고, 저장 공간이 부족하니 지우고 지우라는 조언을 듣고(외장 메모리가 있었는데도 그런다.) 한 번 깨친 모니터 액정이라 떨어트릴 때마다 더 금이 가고 급기야 패턴을 인식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래,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T-world 앱에서 개인 맞춤형으로 살 수 있다고 해서 매장에 방문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손쉽게 휴대폰을 구매하였다. (좋은 세상이다. 우체국 택배로 2~3일 만에 도착.) 기종 및 요금제 고르기 등은 유경험자인 동생과 제부 씨에게 부탁을 했다. (동생 내외가 꼭 휴대폰 매장 주인들 같이 꼼꼼하게 내게 물어봐 주었다.) 가족 할인이 있어 2만 5천 원이나 매달 할인받을 수 있으니 휴대폰 값과 요금을 다 합하여 11만 원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최신형인데도 넉넉히 그 정도면 가능하단다. 그건 지금 내가 내는 돈보다도 사실 적은 돈이었다. 5월이면 할부가 끝나는 아버지 휴대폰 값과 매달 내는 내 통신비는 도합 13~14만 원가량. 알고 보니 그보다 적은 돈으로 무려 최신형도 가능하였다. (비록 24개월 할부지만.)


10만 원이 그간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니면 헌 휴대폰과 헤어지는 일이 그렇게 아쉬웠을까?


여전히 지금도 헌 집을 종종 쓴다. 새 집(새 휴대폰)은 신줏단지 모시듯 모시느라 집 안에서도 제대로 가지고 다니지를 않는다. 전화와 카톡만 빼고 헌 휴대폰이 동일하게 작동하니 헌 집도 꽤 쓸 만하다. (전화, 메시지, 카톡 백업만 빼고 다른 것은 일부러 다 안 옮겼다. 그랬더니 헌 집이 편하다;;)



"낡아도 작동은 돼요."



둘째 조카의 이 말이 떠오른다. '작동'은 되는데 왜 난 헌 집에게 진즉 잘해 주지 못했을까. 헌 집을 지금의 새 집처럼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면 이리 망가질 일은 없었을까?



문득 이런 노래가 떠오른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하지만 언젠가는 헌 집과도 이별해야겠지. 그래도 고마웠어요, 5~6년간 나의 수족이 되어 누구보다도 나의 시간을 가득 채워 주었던 나의 헌 집, 갤럭시 노트8, 그리고 과거의 나.



어딜 가서든 잘 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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