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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02. 2024

다디달고 다디단 '감양갱'

일곱 살도 되기 전에 '인생 단짝'을 만났다. (웃음소리가 화통한 우리였다.) 태어나 7년을 함께한 사이였다. 바로 우리 외할머니, 봉순 씨.



할머니는 공을 굴리는 재주가 있었다. 사과 공. 순전히 손녀들을 위해 개발한 재주였다. 숟가락을 사과 안으로 넣어 긁고 또 긁었다. 껍질만 남을 때까지, 사과가 속이 텅 빈 공 모양으로 남을 때까지 아낌없이 남김없이...  우리는 봉순 할머니에게서 그렇게 사과를, 사과즙을 얻어먹었다. (그래서일까,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사과만은 여전히 좋아한다.)

  

그러던 내가 몇십 년 만에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가 버린 봉순 씨를, 아니 내 할머니 봉순 씨를 닮은 누군가를 목격했다. 올겨울 창밖을 내다보다가 생긴 일이다. 그들은 우리 봉순 처럼 공 굴리는 재주가 뛰어난 녀석들이었다.



내 방 앞 감나무는 다른 감나무들과 달리 지대가 높은 곳에 매달린 나무다. 비바람이 올 때마다 감이 우두둑 떨어졌고 누구보다도 더 먼저 나뭇잎을 벗어던져야만 했다. 겨울을 빨리 맞이해야 했던 나의 감나무. 그러나 첫눈이 '광폭 행보'를 보이며 내리는데도 의외로 단단히 버텼다. 감 스무 알이 기어이 살아남았고, 주변의 씩씩하던 감나무들이 모든 감을 잃은 후에도 나의 감나무만큼은 한동안 듬성듬성 끝까지 알알의 감을 놓치지 않았다.



몇 알을 붙잡고 있다 보니 까치들이 우리 감나무에만 매달렸다. 먹을 것이 줄어든 겨울, 까치들은 그 감나무 가지에 앉아 서로 티격태격, 가끔은 우격다짐으로 싸우며 감을 쟁취해 가곤 했다. 감들은 까치들의 공격(?)에 꼭지만 남기고 떨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끝까지 버티며 감나무에 매달렸다. 까치들이 부리로 쪼아 놓은 감들을 보고 있노라면 쪼이고 긁히고 헤집어 모습들은 예술 작품인 것만 다.


마치, 나의 유일한 할머니, 봉순 씨. 그녀가 어릴 적 내게 공을 굴려 먹여 주던 그 '사과 공'처럼. 


속이 파인 감을 보니 사과 속을 박박 긁어 내게 떠먹여 주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가 혹 지금이라도 내 곁에 계신다면, 우리 봉순 할머니는 내게 감 껍질로 된 빈 공을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양갱은 그 어떤 감양갱보다 다디달 테지.


까치들은 다디달고 다디단 감양갱을 맛있게 먹으며 이 겨울을 시작한다. 부디 이 계절이 그들에게 조금만 더 따뜻한 겨울이길...


어쩐지 까치들에게 직접 감 속을 박박 긁어 입에 떠먹여 주고 싶어지는, 그런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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