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보니 누가 내 방 창문 앞에 '눈 나뭇가지들'을 놓고 갔다. 장을 떠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있는 날이었지만 눈 덕분에 마음이 하얗게 차분해진다. 그래, (좀 귀찮지만) 한번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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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2월 6일에 고이 담가 두었던 장을 뜨는 날. 우리는 손 없는 날을 택하여 장을 뜨기로 하였다.
잊어버릴까 봐 다이어리에도 일정을 붙여 놓았다.
때깔이 참 좋아 보이는 된장. 사부작사부작 2.5개의 메주로만 장을 담갔더랬다. 부지런한 우리 어무니는 아침을 먹자마자 벌써 장독애서 된장을 퍼 올리신다.
된장을 거르고 남은 물은 팔팔 끓여 간장을 만들 예정이다.
콩을 갈아 섞은 후, 멸치 우린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된장을 고루고루 뭉개고 뒤엎는다. 점점 고슬고슬 보드랍게 으깨지는 된장이다. (소금 끓인 물을 부어도 된다.)
-장독 가져와 봐라~
-예, 마님.
아부지는 모녀 옆에서 마님의 심부름에 5분 대기조로 대기 중이다.
된장에 행여 이물질이라도 낄까 봐 비닐을 두르고 소금을 부어 '도독도독' 두들겨 둔다.
"봄봄(=나)이랑 친하게 지내라~"
친구 어머니가 친구에게 전하신 말씀. 친구 어머니에게도 소문난 우리 집 된장. 그러나 이건 우리 혼자 만든 된장이 아니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생기지 아니한다. 메주를 쑤어 주신 금산의 어느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를 통해 매년 메주 주문을 넣어 주시고 바닷소금을 선물로도 보내 주신 친척 언니, 우리의 메주를 무사히 배달해 주었을 택배 기사님, 또... 된장 담글 장독을 만들어 주었을 누군가, 콩 농사를 지었을 또 다른 누군가... 이 밖에 내가 알아내지 못한 누군가들..
이런 된장!
세상을 살아 내다 보면 종종 속이 시끄러워진다. 그럴 때면 '이런 뎬장(젠장)' 같은 말을 외칠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오늘 뜬 '이런 된장'에 물을 붓고 두부 큼직하게 던져 넣고, 거기다 양파나 파를 송송 썰어 넣으며 속을 달래야지.
내 입으로 들어오려는 모든 것에 무수한 이들의 노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내 배부른 된장찌개 한 숟갈에도 고된 사랑과 귀한 발걸음이 있었음을 꼭 기억해야지!
이런 된장!
내년에도 엄마랑 또 담가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