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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Oct 14. 2019

끝나지 않는 전쟁, <더 킹:헨리5세>

진흙탕 속의 군주, 넷플릭스 제작 (The King, 2019)


영화 <더 킹: 헨리5세>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최초 상영되었다.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 4000여석을 꽉 채운 열기. 10월에 국내 일부 극장에서 상영되며, 넷플릭스에는 11월에 공개된다.

< 더 킹 : 헨리 5세 > 한국공식포스터


당대 잉글랜드는 오랜 원수 와도 같은 프랑스와 백 년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잉글랜드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는 반란군에 진퇴 양난의 상황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혼란스러운 나라에서 방탕하게 살아오던 왕자 할이 점차 군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헨리 5세의 즉위를 기점으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초반부는 조금 갈피를 못 잡는 전개였다고 본다. 일단 부자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할의 방탕한 삶의 이유나,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 등에서 더 구체적인 표현이 필요했다. 영화에서는 헨리 4세의 무능한 통치 정도를 이유로 드러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골은 무엇이 시작이었는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일대일 전투를 하는 상황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역사적 고증을 실현하는 방식에서 각본의 섬세함이 떨어졌다. 그러나 헨리 4세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시퀀스에서는 감탄을 멈출 수 없다. 영화에서 대사로 말하듯, 그는 믿을 수 없는 신하들의 자문에 의지해 일들을 헤쳐 나가야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헨리 5세에 이입해 함께 결정장애를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완벽한 전쟁영화도, 영웅담도, 정치영화도 아니므로 그저 한 사람의 고뇌와 끝없는 발걸음만이 있을 뿐이다.

영화 스틸컷

이 때 존 폴스타프의 등장이 숨통을 트이게 한다. 조엘 에저튼이 유쾌하고 듬직한 왕의 친구 폴스타프를 연기한다. 폴스타프는 유일하게 왕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와 함께 프랑스에서 치른 아쟁쿠르 전투는 백년전쟁 중 손에 꼽히는 잉글랜드 대승의 역사를 만든다. 영화의 명장면이기도 하다.

젊은 왕은 군사들의 앞에서 포효하며 사기를 돋우고, 진흙탕 한가운데에서 구르며 처절하게 싸운다. 아쟁쿠르 전투 전날 폴스타프와 대화를 나누던 할은 “이제 와서야, 나는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 라고 말한다. 참담한 내면이 드러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왜 서로에게 칼을 들이미는지. 갑옷과 투구를 벗은 진흙탕 속의 군주. 이긴 전장을 돌아보는 것이 가장 기분이 더럽다고 말하던 폴스타프의 말을 떠올리며 그는 전쟁터를 둘러본다. 잉글랜드로 돌아온 헨리 5세는 프랑스의 왕녀 까트린과 혼인한다.


이미 과거는 아득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걸어왔는데, 그의 앞에는 그보다 더한 길만이 남아 있다. 사람을 죽이고 몇 날 며칠을 토악질을 하던 할은 그것이 참혹할지언정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영화는 두사람의 혼인으로 끝이 나지만, 후반부에 드러나는 진실은 강한 여운을 남긴다. 전쟁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더 킹 8일 영화의 전당 GV

아마도 많은 이들이 주연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보기 위하여 이 영화를 접할 거라고 생각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역시 연기다. 그간 티모시 샬라메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연기를 떠올려 본다. 수많은 팬을 만들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그는 첫사랑의 열병을 겪는 소년 엘리오를 연기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 특유의 섬세한 감정연기와 방황하는 내면을 그려냈다. 이후 작인 <뷰티풀 보이>와, 제작시기는 더 이르지만 최근 국내 개봉한 <미스 스티븐스>에서는 격렬한 감정 표현으로 관중을 압도한다. 미스 스티븐스 개봉 당시 영화 번역가 황석희 분이 티모시 샬라메의 필모그래피가 전부 비슷한 색을 띠는 것 같아 아쉽다고 밝힌 적이 있다. 지브이를 관람하면서 어느정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는데, 이번 더 킹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 감정을 토해내는 데에 통달한 듯했던 20대의 젊은 배우는 군주가 되어 끊임없이 감정을 삼켜낸다. 애절했던 눈은 아주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시기적으로 아주 영리했고, 이 배우가 CMBYN이후 우리를 또 한번 놀라게 할 수 있었다는 점에 찬사를 보낸다.

더 킹 9일 중극장 GV

티모시 샬라메와 호흡을 맞춘 조엘 에저튼은 어린 왕이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든든하게 해낸다. 폴스타프가 전투 전 작전을 만류하는 할에게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며 볼을 쓰다듬는 장면은, 이후에 대법관이 왕에게 ‘친구’라고 칭하며 기만하는 것에 더욱 분노를 일으킨다. 로버트 패틴슨의 변모도 대단하다. 티모시 샬라메와 로버트 패틴슨의 대면이 영화의 킬링 포인트 중 하나인데, 아둔한 프랑스의 왕세자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낸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흥미로운 장면으로, 꼭 영화관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릴리 로즈 뎁 과의 후반부 대화장면 역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더 킹: 헨리 5세>, 배우의 앞날을 기대하게 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두 번 정도 본다면,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말에 담긴 뉘앙스를 더 잘 이해해 볼 수 있다. 압도적인 아쟁쿠르 전투는 꼭 스크린에서 보는 것이 좋겠다. 무려 4500석의 야외상영이 매진이 되었다. 8일, 9일 biff가 티모시 샬라메와 더 킹의 열기로 가득했다. 10월 말 전국 일부 극장으로 찾아온다. 모두 이참에 티모시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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