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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Dec 08. 2023

나의 첫 알바 여행

남의 집을 청소합니다

주소지를 따라 찾아간 집은 신림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신림 특유의 번잡스러움에서 살짝 비켜선 거리. 골목은 1인가구가 모여 살법한 고만고만한 크기의 원룸과 빌라들로 한적해 보였다. OO빌딩 302호, 문 앞에 당도하니 살짝 긴장감이 돌았다. 상대의 허락 하에 그의 사적 공간을 들여다볼 입장이 된 것이 야릇하면서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원룸 거주인은 어떤 사람이길래 자신의 내밀한 공간을 생면부지 타인의 손에 내어 맡길 용기를 낸 걸까. 보나 마나 손바닥만 한 방에 그보다 훨씬 작은 화장실이 겨우 달려있는 집일 텐데. 순간 나는 대학시절 인연을 맺었던 자취방 몇 곳을 떠올렸다. 반년, 혹은 일 년을 주기로 계약을 맺고 스치듯 머물렀던 고시원과 원룸들. 가구라곤 고작해야 간신히 제 한 몸 누일만한 침대와 책걸상 하나, 작은 옷장이 전부였다. 그러고 보면 그땐 밖으로 나돌기 바빠 매일 집을 치우기는커녕 청소의 개념조차 없는 철부지였는데. 



똑 똑. 

"문 열려 있어요.." 

빼꼼 문을 열자 육중한 몸매를 가진 한 젊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손님, 아니 고용인을 맞느라 그녀는 걸터앉았던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제 몸 하나 가누기만도 버거워 보이는데 품에는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있다. 별안간 강아지를 받치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졌다. 그걸 줍겠노라 허리를 바닥까지 굽혔다 들어올리는데 별안간 그녀의 하앻던 얼굴이 새빨개진다. '아고고고' 하는 신음이 절로 새 나온다. 그 짧은 장면만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제 힘으로 자신의 공간을 갈무리할 위인이 못 된다는 것을. 부득불 남의 손을 빌어 집 청소를 맡길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인 것을. 

 


"제가 지금 출근할 거라서요. 세탁물은 세탁기에 넣어 두었고요, 배달음식 쓰레기 위주로 치워주시면 돼요. 빨래 다 되면 널어주세요."

"네, 어제 톡으로 요청하신 목록대로 해 드리면 되죠?"

"네, 맞아요. 참 이건 강아지 CCTV인데 그냥 확인용이고 감시용은 아니에요."

"상관없어요."

그녀의 당부사항이란 사실 별 게 없었다. 배달음식 및 생활쓰레기 치우기, 약간의 설거지와 배수망청소, 그리고 청소기 돌리기, 그뿐이었다. 마지막 문구로는 '작고 작은 원룸이라 한 시간 컷 될 거예요.'라는 말을 덧붙였었다.  

"끝나고 집 사진 찍어서 보내주시면 되요."

"네, 알겠어요."

초면이라 어색했던 우리는 사무적인 말들만 빠르게 주고받았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계약관계. 그건 때론 보통의 인간관계보다 훨씬 쉽고 편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제가 지금 출근하는데 일 들어가면 1시가 점심시간이거든요. 돈은 그때 넣어드릴게요."



그녀가 방안을 빠져나가자 비로소 주변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룸은 1.5평이나 될까. 좁디좁은 공간은 비워진 생수병과 먹다 남긴 배달음식 잔해물, 각종 강아지 용품과 생활 쓰레기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싱크대 한편 1구짜리 인덕션은 각종 플라스틱 용기와 인스턴트식품들로 점령된 지 이미 오래였다.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가 섞인 정체 모를 향이 기분 나쁘게 코를 찔렸다. 저것들을 당장 담아 가둘 쓰레기봉투가 어디있나 본능적으로 방안을 훑었다. 종량제봉투와 재활용품을 처리할 봉투는 보이는데 음식물쓰레기봉투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톡을 던져 물었다.   

'이웃님, 음식물쓰레기봉투는요?'

'아, 음쓰는요, 국물 쫙 빼서 검정 비닐봉지에 넣고 일반(종량제봉투)에 넣으면 돼요.'

'아, 그런가요. 아..알겠습니다.'

헛, 남의 집 살림 돌본답시고 본의 아니게 작은 범법을 저지르게 생겼군.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요구했던 선에서라면 청소는 20여 분만에 끝이 났다. 그러나 여기도 눈에 밟히고, 저기도 치워야겠고, 주부의 양심상 그 상태로 문을 박차고 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침구 정리를 했고, 화장실도 말끔하게 만들고, 시키지도 않은 일 서너 가지를 처리하고 사진을 찍었다. 

  


'헉 너무 깨끗해요! 다른 지저분한 곳도 해 주셔서 넘 감사해요!'


정확히 오후 1시, 감사의 메시지와 함께 원래 예정된 금액보다 5천 원 많은 2만 5천 원이 입금되었다. 그때의 감정이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하면서도 씁쓸한 양가감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의미있는 무언가를 생산해 낼 때의 기분 좋은 감각이 깨어난 점이 고무적이었다. 그것은 너무 오래도록 잊고 지낸, 그래서 더욱 절실히 그려오던 감각이었는지 모른다. 한편 '이렇게 몸을 조금만 놀려도 돈 2만 원은 버는 것을'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나는 정말로 좁고 힘든 길을 가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첫 알바는 그렇게 순조롭게 끝이 났다. 어느 낯선 곳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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