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국 집은 '청소 안 된 집'이 아닌 '덜 비워진 집'이라 부르는 편이 옳았다. 아니, 어쩌면 둘의 합작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과 몇 시간 전 집 현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몸과 마음이 촛농같이 녹아내린 상태였는데, 집안 꼴을 마주한 뒤론 오히려 정신이 또록해졌다. 잠의 늪에 이미 빠져버린 아이야 어쩔 수 없고, 나머지 생존한 가족들은 일단 배를 채우기로 했다.
사방이 죽은 듯 적막한 속에서 덩치 큰 메탈 몸체는 꿋꿋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냉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허옇게 피어오르는 냉기 사이, 빼곡히 들어찬 식재료를 뚫고 새빨간 플라스틱 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종갓집' 브랜드 마크가 선명히 새겨진 한국식 배추김치였다. '냉장고를 싹 다 비우고 갈까요?' 물었던 전 세입자에게, '음식이야 저희가 먹으면 되니 편히 남겨두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한 일은 무척 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냉장고 속 빨간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뼛속 깊이 새겨진 민족적 정체가 살아났다. 이거면 됐다! 극한에 몰리고 나면 반드시 김치를 찾게 되는 우리는 조금은 특별한 민족이었지. 김치를 별미 삼아 밥을 지어먹고 나면 없던 힘이 불끈 솟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냉동실 한쪽 구석에서는 그 이상의 소중한 식재료를 발견했다. 몇 겹이나 꽁꽁 둘린 비닐 위로는 '고춧가루'라는 네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자식 집에 음식을 보내며 단도리를 하신 우리네 친정엄마의 필체가 틀림없었다. 아마도 이전 세입자가 어머니가 챙겨주신 것을 개봉도 못 한 모양이었다. 미국에 올 때 고춧가루를 챙겨 오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정도 양이면 몇 번이고 신나게 김치를 담가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습관대로 김치를 불에 올려 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남겨진 백미로는 뽀얀 밥을 지었다. 뒤늦게 발견한 멸치와 참치도 끓는 찌개에 더했다. 막 끓어 나온 김치찌개를 식탁 위에 올리니 한동안 집 나가 있던 정신이 저 멀리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익히 아는 그 짭조롬하고 개운한 맛이 당장의 고통을 잊게 했다. 호록 호록, 찌개 국물 넘어가는 소리 사이로 굳었던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이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라이프스타일의 문제인 거지."
나는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이국땅에 건너온 나는 설렘과 기대감일랑 잠시 내려놓고 생활전선에 먼저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인정해야 했다.
찌개 국물을 홀짝이며 나는 조금씩 비장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