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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Nov 16. 2024

김치 담그는 K-아줌마

어디, 김치 없이 되나요

김치의 위상이 우리 집 식탁에서 날로 오르는 중이다. 


미국집에 처음 도착한 날, 우리는 냉장고 한쪽 날개에서 반쯤 남은 김치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질렀었다. 며칠 만에 그것이 동나고 나서는 당장 H마트(한인마트)로 달려가 매대에 오른 김치 가격부터 확인했다. 슬프게도 그것은 두 번은 사 먹기 힘든 가격이었다. 통을 개봉하고 얼마 안 가 김치가 쉽게 물러버린 일또한 예상치 못한 일이기도 했다.



중학교 아들은 김치에 무슨 결핍이라도 든 애처럼 시종 김치를 노래했다. 도시락은 무조건 김치볶음밥이어야 했고, 매 끼니 밥상에서 김치를 찾았다. 노릇하게 구운 빵 위에 아무리 근사한 토핑을 올려줘도 결국 내뱉는 말이란 '김치 없어?'였다. 애나 어른이나 김치가 하루이틀 떨어지면 큰 일나는 줄로 알고 호들갑을 떤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따져보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워낙에 김치를 잘 먹는 가족이었으니까. 다만 김치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 건, 이곳에선 입에 맞는 김치를 수월하게 구할 수 없다자각 때문일 게다. 한식의 대전제이자 터줏대감으로 매일의 밥상에 오르던 김치, 그 당연함 너머에 있는 소중함을 미처 깨닫게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김치에 대한 과한 애정은 비단 우리 집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같은 명목으로 미국에 건너온 한국인 지인 가정은 김치가 많이 들어가는 찌개나, 김치볶음밥은 사치라 여겨 금한다 했다. 구운 고기에 김치 한 쪽 얹어먹는 정도만 겨우 허용한다고.



어쩌다 보니 미주 한인과 김치의 가치를 논할 일이 많았다. 거기서 내린 결론은 김치란 단순한 음식이 아니요, 우리의 목숨과 직결된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 이국땅에서 김치의 주가가 상상초월로 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미국에서 김치 담그기는 나의 숙명이었다. 노상 친정엄마 김치만 얻어먹고 살던 반쪽짜리 주부가 드디어 제 힘으로 김치를 담가보겠다고 나섰다. 처음엔 소심하게 배추를 딱 한 포기만 샀다. 어찌어찌 고수의 레시피를 따라만든 김치는 제법 먹을만했다. 식구들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배추 두 포기에 도전했다. '포기라는 말은 배추 포기 셀 때나 하는 말'이라 하지 않았나. 말 그대로 나는 포기를 모르고 계속해서 배추 포기를 늘려나갔다.



그러다 급기야 한 박스에 이르렀다. 배추 10포기들이 한 박스에 $20 하는 세일가에 잠시 눈이 멀었던 것인데, 집에 돌아와 보니 우리 집엔 김치냉장고가 없다. 이국땅에 겨우 1년 사러 온 비지팅 주제에 김장 비슷한 걸 하겠다고 겁없이 달려들다니. 그 미련과 무모함을 통렬히 반성하며 이웃과 배추 파티를 벌였다. 여기도 나누고, 저기도 나누어 주고.



그러고도 배추가 남아돌았다. 김치에 쓸 배추 몇 포기만 제하고 나는 배추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요리에 도전했다. 한국에선 배추 한 포기가 2만 원에 육박하는 시기, 나는 배춧국도 끓이고, 배추전도 부치고, 배추만두도 빚어가며,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로만으로 배추 대 호강의 시절을 실컷 누렸다.   





여기까지만 쓰면 집김치가 온전히 나의 공로로 돌아가는 듯하다. 오해 불식을 위해 옆지기 이야기를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직장도 뭣도 없는 우리 부부는 세상 가장 바쁜 사람이 되어 밖으로 자주 나돌았는데, 배추를 절이려면 최소 대여섯 시간은 집을 지켜야 할 일이었다.



'배추를 한 번씩 뒤집어줘야 소금간이 고루 배는데, 차에 싣고 다닐까?' 김치에 진심인 남자, 내가 농 삼아 던진 말을 그토록 진지하게 받아낼 줄이야. 그는 그 길로 소금 끼얹은 배추 대야를 뒷 드렁크에 척 얹었고, 반나절이나 되는 오후시간을 꼬박 차에 싣고 다니며 그렇게도 정성스럽게 배추를 절였다.




주부 된 나의 특급 사명이란 김치를 집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었건만 그 와중에 위기가 찾아왔다. 전 세입자가 고이 남겨두고 간 고춧가루가 3개월 만에 동이 난 것이었다. 비록 육쪽마늘도 없고, 질좋은 소금도 없어도 고춧가루만은 믿을만한 것을 써야 하는데.



마침 친정에서 직접 농사지으신 고추를 말려 햇 고춧가루를 빻을 시기였다. 간혹 고춧가루는 배송우려 상품으로 분류되지만 반송되는 일이 크게 없다는 걸 여러 사례로 확인했다. 몇 날 며칠 걸려 친정으로부터 보따리택배로 받은 고춧가루 3kg의 운임은 무려 8만 원. 그것은 9개월 남은 우리의 미국생활, 그리고 매일의 식탁을 책임질 그 이상의 가치였다.



고춧가루를 배송받은 날 남편은 마이 프레셔스(My Precious)를 품에 꼭 고 사진을 남겼다. '이 귀한 걸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그는 장모님께 사진과 함께 진심 어린 카톡을 보냈다. 그 문구가 내겐 이렇게 읽혔다. '제게 명의 동앗줄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셔서 거듭 감사합니, K-장모님.'




<김치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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