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Sep 28. 2022

그중에 제일은 수박

여름 과일 하면 수박, 참외, 복숭아, 포도 등이 떠오르겠지만 내게 그중 제일은 단연 수박이다. 내가 수박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단지 우리 집이 수박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수박 농사를 지으셨다. 처음엔 밭에 노지수박을 하셨는데, 조금씩 땅을 늘어갈수록 밭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거기에 수박을 기르셨다. 일은 점점 늘었다. 노지수박에서 하우스 수박으로 바뀌었고, 하우스 동이 점점 늘었다. 그걸 초여름에 한  번, 추석 즈음에 또 한 번 따서 팔도록 꼭 두 번씩 심으셨다.


한여름 수박 하우스에 들어가면 숨이 턱 막힌다. 몇 도쯤 됐을까? 40도는 족히 넘었겠지. 한 해 여름 동안 두 번 수박을 기르셨지만, 나는 수박 일을 도운 기억이 별로 없다. 하우스에 들어갔다가 덮다며 금방 다시 나온 기억뿐이다. 가끔 일손이 부족하면 도왔던 것도 같지만 사실 그 정도는 일도 아니다.


수박씨와 호박씨의 접목을 하고, 수박 꽃의 수정을 하고, 하나에  수박 하나만 남기고 열매를 골라주고, 수박 순도 따줘야 한다. 엄마는 한 번 들어가면 하우스 끝에 닿을 때까지 나오지를 않았다. 엄마의 온몸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평생 지은 수박 농사를 하지 않기로 한 건 지난해부터다. 하우스를 그냥 한철 놀렸다. 올해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끼던 수박하우스를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아빠 없이 혼자 수박 농사짓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래도 매년 하던 게 있으니 집 옆 하우스에 딱 60개만 심었다. 팔 것도 아니라 듬성듬성 심었더니, 올해 수박은 어느 때보다 컸다. 손자들과 따려고 따지 않고 버티다 더 기다릴 수 없어 혼자 그걸 다 따서 저온창고에 옮기셨다. 허리도 아픈 사람이 그 무거운 걸.


우리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지 왜 혼자 다 땄냐고 한소리 하자, 엄마는 말했다. 2600개도 했는데, 60개는 일도 아니라고. 그 얘기를 듣자 우리 엄마 아빠 그동안 진짜 힘드셨겠다 싶어 참 미안하고 미안했다.


한 해 첫 수박은 꼭 부모님 수박으로 먹곤 했다. 수박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름이 되면 시원하고 달달한 수박이 생각난다. 꼭 그게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첫여름, 동네 슈퍼마켓의 수박을 보면 나는 여전히 우리 엄마 아빠 생각이 났다. 엄마 혼자 길러내서 더 아빠 생각이 나는 우리 집 수박이 먹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어제 친정에서 수박을 먹는데 수박이 참 달고 맛있다. 엄마는 너무 커서 혼자는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아예 자르지도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나 와야 수박을 드시는 거다. 엄마는 우리들 주려고 수박을 기르신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시원한 수박을 맛있게 베어 무는 일.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