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그리고 박완서
한국 근현대사에 길이 남을 보석같은 작품들을 그렇게나 많이 남긴 작가 박완서는 아이 다섯을 키우는 엄마로 살다, 40세가 되어서야 첫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어쩌면 인생에 가장 젊고 빛나는 시절일 지도 모르는 지금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불안감이 들때면 나는 박완서 작가의 등단일화를 한 번씩 떠올린다. ‘나도 40대가 되면, 박완서 작가같은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지.’ 혹은 ‘될거야.’ 따위의 기가 찬 꿈을 꾼다는 것이 아니라, 40세에 등단한 박완서가 아이 다섯을 키우며 보냈을 그 수많은 밤을, 젊은 나날을, 그녀가 꾸었을 꿈을 헤아려 본다는 것이다.
40세의 그녀가 등단할 수 있었던 건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격변기 속에 모든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20대 언저리부터 언젠가 내가 꼭 이 이야기를 쓰겠다는 꿈을 하루도 잊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스스로를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쌓아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겨 나갔고 어느 날, 그저 때가 되었을 때 다 토해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생각한다.
40대의 나는 박완서는 되지 않을 지 몰라도, 나는 내가 무엇이 되었을 지 분명히 안다고.
나는 한치의 의심 없이 내가 되어있을 거라고. 오늘의 꿈이, 노력이, 시도가, 좌절이, 실패가, 생각이, 움직임이, 부지런함이 또 때로는 게으름이. 그 모든 것들이 내 몸과 마음에 얄짤없이 치열하게 새겨져 나는 아마 40세의 내가 될 것이다. 정말로 온전히 40세의 내가 되기 위해선 매순간 온전히 나로 살아야 하겠지. 내가 바라고 꿈꾸는 나. 내가 그리는 나.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선 말이다.
그때의 나를 만났을 때, ‘넌 누구야?’하고 도망치고 싶어지지 않으려면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멀리 가지 않아도, 높이 오르지 못해도, 빨리 뛰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 다 괜찮다. 그게 나의 길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평생을 가 닿아도 닿지 못할 만큼 느린 속도라 해도, 옳은 길로 가고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닐까? 그러니 타인의 속도에는 신경 끄고 나는 꾸준히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그냥 내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 하고, 할 수 없는 일 혹은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집착하지 않으리. 지금의 시간들이 나를 나답게 만들 거란 것을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