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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맘 Jun 18. 2020

오늘은 쉬어 가는 비요일

그저 좋다는 말 밖엔 생각 안 나는.

임산부라 잠이 부족하면 혹여 태아한테 안 좋을까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포기한 요즘. (음?) 

가끔 컨디션 좋은 날은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거실 벽난로를 켜두고 명상, 스트레칭, 아침 준비를 하며 부스스 잠이 깨 나오는 아이들에게 '굿모닝' 맞이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아 7시 반쯤 되면 아이들이 안방으로 건너와 '7시 38분이에요' 전하며 나를 깨워주곤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이미 잠이 깨어있을 때가 많은데 그냥 춥고 귀찮아 모른척 비몽사몽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늘 '7시 38분이에요' 아니면 '7시 36분이에요' 하며 보통 하루의 첫 마디를 시작하는 아들내미가 오늘의 아침인사는 조금 달랐다. 


"나 머리가 좀 Dizzy해요. (어지럽단 뜻) 무서운 꿈을 많이 꿔서 잠도 잘 못 잤어요."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아이 이마를 짚어보니 아주 아주 약간의 미열. 엊그제부터 둘째가 맑은 콧물이 아주 살짝 나는 듯 싶어 지켜보는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첫째까지 감기 기운이 있는 듯 하다. 흐르는 콧물은 없지만 목소리가 살짝 답답한 것이.. 열이 내리면 내일이나 모레부터 콧물 좀씩 나올 각. (엄마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딱 안다.) 둘째는 외려 상태가 좋아진 것 같지만 그래도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한 놈이 시원 찮으면 한 놈 마저 셋트로 데리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두 아이 다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 


잔병치레가 별로 없는 아이들이라 단순 감기로 학교에 가지 않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때마침 이번주 날씨도 내내 비비비 비소식이니 오늘은 쉬어가는 비요일이 된 기분. 밥보다는 시리얼이나 빵인 딸에겐 요거트+우유+시리얼+바나나+블루베리 조합으로 아침을 차려주고 나는 사과+오렌지+바나나+케일 가루+헴프 씨드를 가열차게 갈아 그린 스무디를 마셨다. 요즘 아침은 가볍게 스무디로 시작하는 편. 눈 뜨자마자 밥 한 그릇씩 뚝딱하던 나는 어디로 갔나......  임산부는 임산부로구나...... 


"엄마 배고파요."


좀 누워 있으라고 남편이 데리고 있던 첫째가 차마 못 누워 있고 배고프다며 나온다. 날 닮은 첫째는 역시나 눈뜨자마자 밥 한 그릇씩(때론 두 그릇씩) 뚝딱하는 타입이라 때마침 어제 닭백숙을 해먹고 남은 국물에 닭고기살을 찢어넣고 야채를 다져넣어 죽을 끓여주었다. 보글 보글 뜨끈하게 끓여주니 좀 많다 싶은데도 두 대접을 싹싹 비우는 아들. 


"아~ 맛있다! 맛있어요 엄마."

"잘 먹는 걸 보니 금방 낫겠다. ^^" 


창밖으로는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좋을 만큼 비가 내린다. 얇은 물줄기가 샤워기에서 흩뿌리듯 바람 따라 흩날리며 내리는 비. 초록 잔디와 옆집 정원에 핀 빨간 동백꽃 나무가 배경이 되어 눈을 잡아 끈다. 벽난로 앞 소파에 나란히 앉은 가족들은 다함께 하지만 각자의 책을 읽고 있다. 책 읽다가 맘을 뺏긴 아이들은 종이와 연필을 가져다 책 속의 그림을 따라 그려보기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나도 맘이 바빠져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오늘은 나도 간만에 쉬어가는 비요일을 해야겠다. 

그동안 해주고 싶었는데 미뤄뒀던 간식이나 몇 가지 만들어주면서 이렇게 짧지만 맘을 돌보는 글도 끄적 거리면서. 보고 싶은 친구에게 안부인사도 한 번 건네면서. 


그렇게 오늘은 우리 가족 모두 조금은 쉬어가는 비요일. 

아이들 떠드는 소리, 피아노 치는 소리, 나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남편이 중얼 중얼 뭔가를 읽는 소리..... 끊임없이 일상의 자잘한 소음들로 가득한 집안이지만 그 마저도 왠지 고요한 비요일. 


그저 좋다.

는 말 밖엔 생각 안 나는.

오늘은 비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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