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맘 Oct 18. 2020

그것 좀 안 해주면 안 돼? vs Poopy pants

외국에서 자라는 아들의 말, 말, 말.

어제 아침, 식탁에 모여 앉은 가족들 풍경. 



라군은 미처 끝내지 못한 게임을 마무리하고 있었고 라양과 나머지 식구들은 식빵을 구워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있었다. 


라양이 나이프로 피넛버터를 빵에 바르며 나이프로 식탁을 툭- 툭- 툭- 리듬타며 긁어대기 시작. 


안그래도 나도 소리가 조금씩 거슬리는가 싶었는데 라군이 한 마디 꺼내었다. 


"그것 좀 안 해주면 안 돼?" 


라양은 바로 "오케이~" 하며 멈춤. 


별 것 아닌 평범한 일상의 대화였지만 잠시 마음에 남았다. 


동생을 대하는 아들의 대화체가 내가 아이들 양육하며 노력했던 그 말투와 꼭 같아서였다. 


'하지마' 혹은 '안돼' 대신 '안 하면 좋겠는데-' 혹은 '그것 좀 그만하면 안될까?' 처럼 덜 감정적인 부드러운 표현을 쓰려고 노력해왔다. 

때로는 부정적인 지침대신 원하는 지침을 가져와 긍정문으로 문장을 가져와 전달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라거나 '그거 대신 이걸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처럼. 


물론 당연히 늘 저렇게 교과서적으로(-_-) 얘기해왔다는 건 정말 정말 아니고, 짜증이 치솟아 욱할 때도 많지만 여전히 나와 남편의 노력은 ing다. 


아이들 역시 늘 저렇게 착하게만(?) 대화하지 않는다. 특히 신나게 놀다보면 흥분하기 마련이고 행동이 격해지면 덩달아 감정도 격해지기에 서로에게 소리를 치는 일도 잦다. 커가면서 더 심해서 요즘은 부쩍 아이들이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 약간 주시를 하게 되긴 한다. 


더군다나 저들끼리 신나게 놀 땐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내가 샘플을 줄 수 있는 대화체도 아니고 학교 또래집단 사이에서 활동하며 배워온 표현들을 그대로 쓰곤 하는데 주로 이런 것들.


'Hey stop!!!!'

'Stop doing it!!!!!' 

'You're a meanie!' (직역하면 쩨쩨한 사람, 인색한 사람, 성질 더러운 사람, 짓궂은 사람 뭐 이런 건데 대충 이 못된 치사빤스야! 뭐 이런 느낌인가...;;) 


분위기가 최고로 고조되면 이런 말도 하는데... 

'Poopy pants!!!' (직역하면 똥싼 바지야 이런 거니까 대충 야이 방구똥꼬야 뭐 이런 거냐-_-;;)  


흥분하기 전에 첫 시작엔 얌전하게 'Can you stop doing this?' 라거나 'Would you do this for me?' 라고 하기도 하는데 암튼 저들끼리는 please는 거의 안 붙이는 것 같다. 하긴 나도 어디 나가서 애들한테 영어로 말해야 할 때 please 까진 솔직히 안 나오니까. 


아이들을 낳기 전 나의 언어습관을 돌이켜보면 정말 온갖 욕설과 신조어가 난무했던 나날들이었다. 지금도 솔직히 한국의 또래 친구들이랑 따로 만나서 몇시간만 어울리고 돌아와도 입에는 거친 말들이 바로 붙어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원래 남의 말투와 억양을 무의식적으로 캐치 잘하는 타입. 사실 그래서 영어공부할 땐 도움이 많이 됨. ^^)


하지만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주로 나와 남편 밖에 없는 아이들의 현재 일상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어깨가 꽤 무겁다. 유일한 샘플이라니......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곧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요, 유일한 input 공급처라는 걸 잊어선 안 되겠다. 


재미난 신조어를 배우고 센스있게 사용하여 재미있게 대화를 하는 것, 그 자체가 일상의 자연스러운 문화이고 활력이 되기도 하겠지만 내가 아이들 입에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사용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지. 


명령조로 이야기하지 말아야지. 


짜증섞어 이야기하지 말아야지. 


사랑이 담긴 긍정적인 말들을 오늘도 더 많이 해주어야지. 


나를 돌아보고 다짐하는 아침이다. 


며칠전 아이가 절친에게 쓴 편지. 'Poop'이 빠지면 도대체 농담이란 게 안되는 (만)8세 남아들의 대화 세계......하.....                          

한편, 또래문화만을 그대로 흡수해오는 영어는 어쩔 것인가;

적어도 한국욕은 배워올 데가 없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것인가 =_=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쉬어 가는 비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