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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Jun 22. 2020

세대교체를 본다

골목에서 한 남자를 봤다. 바퀴 달린 끌차에 낡은 통돌이 세탁기 한 대가 실려있다. 한쪽 팔로는 세탁기, 다른 팔로는 끌차 손잡이를 밀고 있었다. 전자제품 회사의 것으로 보이는 유니폼과 상황으로 보아 아마도 새 제품을 누군가 주문했고 헌 제품을 수거하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 참 어려 보이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그냥 지나칠법한 일상에서 문득, 그 주인공이 어려 보인 다는 것을 두드러지게 느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서 마주쳤던 택배 기사나 편의점 점장. 크고 작은 가게와 중소기업의 대표까지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훨씬 어린 사람들로 바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 가게를 하나둘 차려서 창업하거나 회사에서 진급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등, 나름대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며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나이 많은 사람들의 이미지들이 이제는 나와 비슷하거나 어린 사람들로 어느새 바뀌고 있었다. 나는,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주요한 자리를 우리 세대가 꿰차기 시작한 것을 보고 있었다.


단단한 옹벽처럼 느껴지던 ‘세대’의 ‘교체’를 목격하고 있구나 실감하면서, 어릴 적 생각했던 더 나은 시대로 바뀌지 않을까 싶던 저항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환경을 고스란히 겪는 세대라서 그런지 예전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사실이 있다.


인터넷이 이렇게 자리 잡기 이전에는 ‘문자’의 권위가 막강했었다. 그런 주장을 적은 글들을 학교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정확하게 출처를 기억하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대체로 그런 사실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인터넷이 보급된 후로, 초창기 웹에서 만난 텍스트들에는 가짜와 진짜가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신뢰를 하는 바람에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났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팩트체크’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성숙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교체되고 있는 내 세대는 그런 과도기를 겪으면서, 누구는 이전의 ‘떠먹여 주는 미디어’에 편안함을 느끼고, 다른 누군가는 ‘직접 찾아내는 미디어’에 익숙하기도 하다. 나이가 어려질수록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 재미를 직접 찾아내는 경우가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새로운 세대는 지금 내가 느끼는 내 또래들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디지털 분별력이 일상이 된 다음 세대가, 기존 세대와는 또 다른 ‘세대교체’를 이어갈 수도 있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 저항하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 그것이 극단적인 폭발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성숙해가는 저항도 있는 것이다. 단순하게 내가 느끼는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접한 부분 말고도,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취향과 큰 유행의 축소 같은 것들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한답시고 머리를 싸매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는 알아서, 충분히,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세대교체 물결에 무임승차한 것 같은 기분이다. 자신의 성공 방법을 최선으로 여기는 ‘경화되어가는 간부들의 뇌’를 보면서 ‘내 주변과 다음 세대는 잘하고 있구나’ 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BGM♪ Red Velvet ‘So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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